Basket of fruits and pineapples, Chagall
<題李凝幽居 이응의 시골 집>
閑居少隣幷(한거소린병) 한적한 집, 근처에 같이 사는 이웃도 별로 없고
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 풀밭 오솔 길은 가꾸지 않아 황량한 정원으로 들어가네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새는 연못 가 나뭇 가지에 잠들고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스님은 달빛아래 문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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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橋分野色(과교분야색) (발걸음 돌려) 다리를 지나니 들빛이 둘로 나뉘는 듯
移石動雲根(이석동운근) 흐르는 구름 따라 돌도 자리 옮기네
暫去還來此(잠거환래차) 내 잠시 갔다가 다시 돌아와
幽期不負言(유기불부언) 함께 지내자한 약속 저버리지 않으리
** 교외 한적한 곳에 은거하는 벗 이응(李凝)을 찾았다가 주인의 출타로 헛걸음을 하고 돌아오며 승(僧), 가도(賈島)는 그 섭섭한 정을 시로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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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 일요일 (3/10) 다시 Summer time이 시작하던 날, 눈을 떠보니 아침 8시였다.
대개 아침 7시에 일어나 음식 만드느라 3시간을 난리 법석 치고, 30분 씻고 바르고, 10시반에 집을 나서는데 그날은 한시간이나 늦어버렸다.
버섯을 따뜻한 물에 담갔다가 썰어 양념에 재고, 피망을 채치고, 바쁘게 돌아갔다.
그러나 엄마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건 뱃장인지, 오랜 연륜으로 얻은 경험인지 하여튼 "Everything will be OK. Don't worry."
속이 타는건 엄마도 마찬가지이지만 나처럼 발만 동동 구르는건 하나도 도움이 안된다는 식이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헤까닥 정신을 놓치말고 줏대있게 꿋꿋이 밀고 나가야 한다는 걸 나는 그때 엄마에게서 배웠다.
사람이 많으니 0.5 파운드 짜리 마른 당면 다섯 뭉텅이에 야채도 넣어 커다란 대야만한 양푼으로 하나 가득 만들어 가도 넉넉치 않다.
브라질, 페루, 베네주엘라 등지에서 온 사람들은 먹고나서 어머니에게까지 맛보인다고 가능하면 집에 조금씩 가지고 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교당에도 좀 남으면 좋아한다.
남들 하는것도 보고 배워서 나쁠것 하나 없다. 무엇이든 항상 개량의 여지 (room for improvement)는 있는 법이다.
어디 요즘 한국의 신식, 젊은 사람들은 또 어떻게 만드나 들어보자.
들통만큼이나 커다란 냄비로 물이 절반이 넘어 한강수인데 거기다 그냥 간장과 기름을 쏟아붓다니... 이게 뭣하는 짓인가?
당면은 이미 잔뜩 불어 부들부들, 수양버들처럼 유연하기 짝이 없는데 아뭏튼 하라는데로 간장 두어 숟갈, 기름은 작은 술 하나로 넣는 시늉만 했다.
버섯은 간장 양념에 재어 놓았고 당근, 양파, 피망등도 볶을때마다 소금 간을 대충 해서 양념은 거의 다 되었다.
잡채에 설탕 넣으면 그렇잖아도 익은 양파때문에 좀 들큰한데 더 들큰해질꺼다. 못 들은척 넘어간다.
뜨거우니 조심하라면서. 하긴 물에 씼어버리면 간장과 기름 넣고 삶은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할일없이 볶아낸 야채나 조금씩 슬슬 얹으면서 비로서 후회했다.
괜히 더 잘해본다고 긁어 부스럼으로 이 사람 식을 따랐구나. 지금껏 내가 만들던 방법도 하나 나쁘지 않았다.
익으면 건져서 찬물에 헹구어 물을 쭉 빼면 야들야들, 끈기있고 유연하다. 불어터진 당면이란 옛말이다.
냉장고에 두고 한 이틀 먹어도 당면이 불지도 않고, 딱딱해지지도 않고 ... 맛이 있다.
옛날 궁중 요리책엔 물에 불렸다가 볶는다고 했는데 그러면 팬에 붙기도 하고 또 기름이 들어가니까 느끼하다.
엄마는 한번도 잡채를 만들지 않았는데 내 생각에 어렸을때 너무나 많이 보아 아주 질리고 물리신 것 같았다.
그때 외가는 먹는 것이 넉넉한 부잣집이라 엄마가 친정에 다니러 갈때면 꼬마 시동생들까지 온 식구가 사돈댁에서 가져오는 음식을 기다렸단다.
먹는것뿐 아니라 신랑 신부가 따로 거처할 방도 없었다.
시부모님은 벌써 돌아가셨고, 시할아버지, 할머니, 시아주버니 식구들, 다 함께 사는데 어른들 진지를 푸고 나면 며느리들에겐 남는 밥이 없었단다.
언니는 지금도 이 이야기만 나오면 화를 막 낸다.
그래서 집에서 엄마하는 것은 한번도 못보고 미국에 와서야 책을 보고 배웠다.
절 음식처럼 고기 하나 없이 야채만 넣은 내 잡채는 맨끝에 가서 소금으로 간을 살짝 맞추면 갑자기 그윽한 풍미가 살아난다.
투명하게 가느다란 국수에 느끼하지 않게 살짝 볶은 야채를 섞고, 볶은 통깨와 후추, 소금으로 맛을 낸 잡채는 Diet Food 같아 더 인기다.
사람들은 인사 치례인지 몰라도 더 맛있다고 했다.
그렇게나 흐믈거리던 것이 하룻밤 냉장고에 있는 사이에 벌써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내 식으로 만든것 보다도 더 딱딱했다.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니라. 다시는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것이다.
La Rencontre (The Encounter, the meeting, 뜻밖의 만남 ), Marc Chag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