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소식

동문소식

조회 수 4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여덟 시 반에 멈춘 벽시계

 

서울 사대부고 25회  김 보미

 

침대 머리 너머로 아침이 다가오고 있다. 아직 실내는 어둡다. 아침은 복도 끝 거실의 버티컬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는 소리로 시작한다.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서서히 의식이 깨어난다. 눈을 떠 보아도 방안은 한밤중이다. 귀는 밖의 소리를 쫓는다.

이제 곧 이 방의 커튼이 걷히고 내 팔에는 정맥 주사기가 꽂힐 것이다. 당직 요양사가 슬리퍼를 끌면서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잰 걸음 소리로 보아 A 요양사이다.

 

요양사가 내 방에 들어와 커튼을 열고 우리를 한 바퀴 휘둘러 본 후 코를 킁킁거리며 내게 다가온다. 싫다.

내 기저귀를 들여다 본 후 재빨리 다른 침대로 옮겨간다. 간호사가 들어와 정맥을 찾아 주사기를 꽂는다.

정맥 주사는 왜 이렇게 일찌감치 놓는지 모르겠다. 포도당 주사는 허기를 느끼지 않게 해준다. 그러나 씹고 싶은 욕구까지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금요일. 주말을 맞이해 대청소를 하는 날이다. 이른 아침부터 당직 요양사의 발걸음이 바쁘고 어수선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채 소리로 모든 것을 더듬는다.

“왜 기저귀를 뺐어요?”

요양사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있다. 내 머리 너머 대각선 침대에 누워있는 여든한 살의 봉순 할머니에게 하는 말이다.

나는 목을 왼쪽으로 힘겹게 비틀면서 눈자위를 굴려야 봉순 할머니를 볼 수 있다. 봉순 할머니가 밤새 시트를 적신 모양이다.

시트를 더럽히거나 옷을 흠뻑 적시는 것은 기저귀를 빼내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옷을 갈아입히고 시트를 가는 움직임이 바쁘다.

 

나는 복도에서 가장 가까운 침대에 누워있다. 내 머리맡에는 가끔씩 냄새를 풍기는 박 할머니가 누워있다.

그러나 난 할머니를 볼 수 없다. 시야는 봉순 할머니를 경계로 나누어진다. 창밖을 내다볼 수가 없으니 계절을 모르고 지낸다.

방문객들의 옷차림에서 계절을 읽는다.

 

가끔은 창문 밖의 풍광을 보고 싶다. 그동안 여러 차례 고개를 비틀고 꿈틀거려 보았다.

그러나 요양사는 비스듬히 누워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내 꼴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잽싸게 반듯이 눕히며 얌전히 있으라고 면박을 준다.

진땀을 흘리면서 창문으로 돌진하던 나의 시선은 번번이 허물어진다.

몇 번의 시도가 실패로 끝나버린 경험은 더 이상 창문 밖에 관심을 두지 않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하늘을 보고 싶고 창밖의 바람을 느끼고 싶다. 여명의 빛이 스며든다. 요양사가 따스한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을 익숙하게 닦아낸다.

 

내 옆 침대의 지숙 씨는 이제 겨우 예순두 살이다. 나보다 아홉 살이나 어리다. 피부도 뽀얗고 잡티 하나 없다.

커다란 눈망울은 사슴 같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그 커다란 눈에 굵은 눈물방울이 맺히면 나까지 울먹거려진다.

내가 유일하게 고개를 돌려 편하게 건너다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며칠 전, 지숙 씨의 다섯 살 난 손녀가 다가와 나에게 초콜릿을 내밀었다.

터질 듯한 볼살에 방긋방긋 웃는 손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가 손을 내밀어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손녀의 재롱을 보고 있는 지숙 씨의 얼굴은 보름 달덩이처럼 환하게 빛났다.

요양사는 가족들이 너무 큰소리로 떠들거나 여러 내방객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어수선할 때는 침대 방에서 면회실로 퇴장을 시킨다.

지숙 씨네 가족은 면회실보다는 침대 방을 더 편안해한다. 나는 요양사가 나타나 지숙 씨의 가족을 내몰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숙 씨의 가족이 특별하게 시끄럽거나 번잡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지숙 씨가 육 개월 전,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는 코에 호스를 달고 있었다.

하루에 다섯 번의 경관식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좋아져서 호스를 빼고 연동식을 한다. 아마 나이가 어린 탓에 회복이 빠른 모양이다.

머지않아 밥도 먹고 멸치조림이나 매운 김치까지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단 한번도 요양사에게 반말을 하지 않는다. 고맙다는 말도 잘 한다.

그러나 나는 밤늦게 잠들지 못하고 눈물을 찍어내는 지숙씨를 여러 번 보았다. 어깨를 들먹이며 숨죽여 흐느끼는 등을 도닥거려주고 싶었다.

S대 경영 학부를 졸업했다는 지숙 씨는 한때 S회계 법인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다가 바람에 휩싸여 착지를 잘못하는 사고가 났었다고 한다. 4번과 5번 요추의 고장으로 하체를 못쓰게 되었다.

배우고 잘난 것들은 취향도 참 가지가지다. 고급스럽다. 그렇다고 해도 육십이 넘은 나이에 패러글라이딩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어쩌면 텔레비전에 인간 세상이나 뭐 그렇고 그런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과 같은 부류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요양사들은 하루에 두 번씩 지숙 씨를 휠체어에 태워 식당으로 데려간다. 점심과 저녁에 식당에 가는 것이 유일한 운동이자 나들이인 셈이다.

특별한 보살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족의 부탁으로 이뤄진 이동은 요양사들의 불평을 자아낸다.

 

침대에서 지숙씨를 끄집어내 휠체어에 태우고 또 다시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겨 눕히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반신만 못쓰니 나보다는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게다가 딸이 다섯이나 되니 하루가 멀다 하고 번갈아가면서 면회를 온다.

딸들의 각별한 보살핌과 가끔씩 나타나는 품격 있어 보이는 세련된 남편의 부탁 때문인지 원장이나 요양사들이 좀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오늘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춰 일찌감치 면회를 온 셋째 딸은 대학 교수라고 한다. 예쁘고 차분하다.

 

침대에 바싹 붙어 앉아 전복죽을 나누어 먹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학회 때문에 해외출장을 떠나기 전에 들렀다고 한다.

셋째 딸의 집이 이곳 성북동, 한 동네에 있으니 참 편하게 오고간다. 내 딸도 이렇게 가까이 살고 있다면 좋겠다.

 

아침 요양사 팀이 유리창을 닦는다. 점심 이후에는 청소기로 밀고 대걸레자루를 휘두르며 다른 날보다 정성들여서 마루를 닦아낸다.

검지로 유리 창문 틈 모서리의 먼지를 찍어내거나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주워 올리는 원장을 보면서 요양사들은 서로 눈치를 살핀다.

화장실 거울에 튄 물방울 자국을 지적받기라도 하는 날이면 요양사들 간에는 찬바람이 돈다. 연대 책임을 묻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원장은 지나가는 요양사 중 아무나 불러 세워 묻는다.

 

“거울 닦으신 거예요? 여러 사람이 보는 거울인 만큼 신경 써서 닦아주세요.”

원장이 복도를 빠져 나간 후 요양사들은 누가 거울을 닦은 거냐면서 책임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수군거린다.

“오늘 아침 팀이 누구 누구였어요?”

 

아마 아침 팀의 누군가가 거울을 제대로 닦아 놓지 않아 오후 팀이 지적을 받게 된 모양이다.

가족이나 반가운 친지들이 모여든다는 기다림과 기대감에 앞서 한차례 긴장감이 할머니들 사이에 감돈다.

때론 요양사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높게 오고가기도 한다. 불똥은 으레 할머니들에게 튀기 마련이다.

 

온종일 봉순 할머니는 보행기를 밀고 다닌다. 건물 전체를 종종 거리며 헤집고 다닌다. 매일 여의도 한 바퀴 정도의 거리를 걷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다리가 튼튼하다. 그 괴력의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요양사들은 질색을 한다.

봉순 할머니로 인해 정신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행여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걱정을 한다. 노인들이 넘어지는 사고는 대부분 대퇴부의 손상을 가져온다. 수술을 하기도 하지만 회복되는 경우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다. 경관식을 준비하면서 말을 주고받는 요양사들의 목소리가 복도를 타고 방으로 흘러든다.

“선생님은 만약 어머니가 넘어져 고관절을 다쳤다면 수술을 해 드릴 거예요?”

 

“노인네가 원한다면 해 드려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난 수술은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명을 재촉할 뿐이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너무 오래 사는 것도 요즈음은 욕이지만, 다른 형제들의 입이 무서워 어쩔 수 없이 수술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질 것 같아요.”

저건 B와 C 요양사의 목소리다. 아마 가족 중 한 어르신에게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나지막이 말하고 있지만 내 귀에는 선명하게 다 들린다.

 

저녁 식사로 죽을 들고 들어온 A 요양사가 침대 옆으로 의자를 끌어당겨 앉는다. 죽을 떠먹이는 손이 짧고 두툼하다. 저런 손을 가진 사람은 재주가 많다.

A 요양사는 무슨 재주를 가지고 있을까. 죽을 천천히 삼키려고 하는 것은 맛과 향을 음미하고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고 들어오는 숟가락에 입 속에 있던 죽은 저절로 삼켜져버린다. 점심에 나왔던 녹두죽 보다 저녁에 나온 야채죽이 더 맛있다.

아마 내일 부터는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을 먹거나 밥을 먹거나 요양사가 입 속으로 밀어 넣는 속도는 똑같다.

침을 음식물에 골고루 묻혀 맛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은 딸아이가 먹여줄 때뿐이다. 야간 근무 요양사들은 저녁 식사 시간 이후에 재빨리 침대보와 이불을 교체한다. 그러나 밤사이 문제를 일으킬 여지가 있는 할머니들의 침구는 손대지 않는다.

원래는 토요일 아침에 모든 침구를 갈아야 하지만 일손이 모자란 요양사들이 요령을 피우는 것이다.

온종일 누워있어도 시간은 흘러간다. 나는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옆 침대의 지숙 씨와 무성음으로 켜져 있는 텔레비전을 본다.

 

십일 년 전, 남편과 나는 가평에 집을 짓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겨 놓은 산 중턱에 집을 짓자고 말을 꺼낸 것은 나였다.

남편은 자상한 성격이지만 나와 뜻이 맞는 사람은 아니었다. 등산과 야외 나들이를 좋아하고 초록 빛깔에 흠뻑 취하는 나와는 달랐다.

남편은 서로의 어깨를 부딪혀가면서 바삐 걸어야 하는 거리와 새벽 두 시가 되어도 올림픽대로에서 꼬리를 물고 달리는 헤드라이트의 불빛에 어떠한 거부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가평에 집을 짓자는 의견이 일치한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세 군데 지하수를 팠지만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업자가 협의를 보자고 했다.

“물이 부족하니까 두 군데에서 물을 퍼 올려서 쓰면 어떨까요?”

업자는 두 손을 비비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말했다.

“물이 나올 때 까지 파서 제대로 쓸 수 있게 해줘야지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남편의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그렇긴 하지만 물이 이렇게 부족한 경우도 드물어요. 한 개를 파면 괜찮지만 두 개를 파면 본전인데……, 이렇게 되면 우리는 남는 게 없어서…….”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계약서는 괜히 있는 겁니까.”

남편의 목에 핏줄이 섰다.

“쓸데없는 말 말고 지하수나 제대로 파요. 사업을 하다보면 손해를 볼 때도 있고 수익이 날 때도 있는 걸 가지고.”

옥신각신 하는 사이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더 올라갔다. 남편이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은 미간을 좁히면서 굳은 표정으로 처음부터 여지없이 잘라 말하는 사람이다. 사람들과 크고 작은 일들로 종종 다투었다.

나중에는 문제의 원인은 사라지고 웬 삿대질이냐, 반말이냐로 번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집을 지으면서 벌어질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집에 돌아와 배낭을 메고 집 뒤 북한산에 올랐다. 오후의 햇살은 따사롭게 5월의 신록을 빛내주고 있었다.

 

해가 기울고 있었지만 익숙한 산길을 따라 발걸음을 내딛었다. 어느새 가벼워지기 시작한 발걸음이 체한 듯이 답답하던 가슴에 시원한 공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시가지는 늘 낯설었다. 탁하고 뿌연 공기에 갇힌 건물들에 하나둘 불이 켜지고 있었다.

산에는 어둠이 일찍 드리워진다. 어슴푸레한 산길을 내려오면서 랜턴을 챙길 걸 그랬구나 싶었다. 핸드폰의 불빛으로 앞을 밝혔다.

짧은 구간의 바위투성이 산자락만 돌면 곧 오솔길이 나오는 지점이었다. 한 손으로 바위를 짚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순간 핸드폰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몸이 기울면서 바위로 굴러 떨어졌다.

 

내가 의식을 찾은 것은 병원 침상에서였다. 머리에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나는 말을 잃었다.

뒤틀린 오른쪽 손과 안짱다리 모양으로 뻣뻣해진 오른발이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왼손이나 왼발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내 나이 쉰아홉인 때였다. 지금도 나는 바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꿈을 꾸면서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곤 한다.

 

어둠이 드리워진다. 벌써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 이곳은 9시면 소등을 한다. 밤에만 잠을 잔다는 것은 그래도 뭔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온종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잠을 자는 것이니 밤과 낮의 의미가 없다. 그래도 밤에 수면을 방해 받는다는 것은 짜증스럽다.

요양사는 네 시간 간격으로 나의 체위를 바꾸어 놓는다. 밤 열한 시와 세 시에 체위를 바꾸는 것이 제일 고약스럽다.

 

욕창이 생기지 않게 보살펴 주는 것이 조금도 고맙지 않다. 베개를 빼고 다리 한 쪽을 옆으로 밀어 제치면서 몸통을 돌려 눕히는 솜씨는 D 요양사가 최고다. D 요양사가 체위를 바꿔 주는 밤에는 곤한 잠에서 깨어나던 의식도 잠깐이다. 곧 이어 편안하게 잠이 든다.

내 체위를 바꾼 후, 요양사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지숙 씨에게 다가간다.

 

이불을 걷어내고 체위를 바꾸는 중에도 지숙씨는 아랑곳없이 코까지 골면서 잠을 잔다. 그런 무신경이 부럽다. 그리고 얄밉기도 하다.

토요일 아침. 소리가 들려온다. 버티컬 블라인드 젖히는 소리는 자명종처럼 다섯 시면 어김없이 들려온다.

마치 점호를 기다리는 훈련병처럼 나는 내 방의 불이 켜지면서 들이닥칠 요양사를 기다린다. 간밤에는 봉순 할머니가 조용히 잠을 잤다.

봉순 할머니는 때때로 한밤중에도 일어나 움직인다. 모두가 잠든 정적 속에서 슬리퍼를 끌면서 보행기를 미는 소리는 나의 머리를 뒤흔들어 놓는다.

요양사가 낮은 소리로 호통을 쳐 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어떤 때는 쪽잠에서 깨어난 요양사가 봉순 할머니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후려치는 소리가 들린다. 맞아도 싸다. 잠시 조용한가 싶다가도 어느 사이 봉순 할머니는 다시 움직인다.

 

아무리 슬리퍼 끌리는 소리와 중얼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려도 요양사는 더 이상 봉순 할머니의 등짝을 후려치지는 못한다.

이방 저방에서 시끄럽다고 간헐적으로 투덜거리는 소리가 더 시끄럽다. 복도가 술렁인다. 어느 방인가로 흘러드는 가족의 수가 많은 모양이다.

남자 아이 소리로 보아 유치원생 정도 되는 것 같다. 온 가족이 일찌감치 이곳을 방문한 후 어디론가 서둘러 가야하는 모양이다.

의무감으로 찾아오는 경우라도 반가움은 한결같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침 식사를 한 것이 얼추 한 시간은 된 것 같은데 시계는 여덟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딸아이가 오려면 아직도 두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딸아이가 이곳을 찾아온다. 지난 주 토요일에는 딸이 들고 온 떡과 과일, 단팥죽으로 과식을 한 탓에 일주일을 고생했다.

옆 침대의 지숙 씨 가족이 건네준 오렌지까지 먹었다. 지숙 씨네 가족은 늘 인심이 후한 사람들이다. 딸아이가 나의 입에 단팥죽을 밀어 넣었다.

그 맛이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달콤함이었다. 몇 숟가락 먹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달싹이는 고갯짓을 알아차린 딸아이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엄마 단팥죽 좋아하잖아. 조금만 더 먹어봐. 응?”

난 또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의 힘겨운 의지를 알 까닭이 없는 딸아이는 단팥죽을 담은 숟가락을 나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난 그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입에서 우물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딸아이의 눈가에 웃음이 깃들었다.

“엄마. 맛있지?”

“그래 너무 맛있구나.”

그러나 나의 말은 딸의 귀에 닿을 수 없다. 담백하게 먹고 소식을 해야 하는 내게 간식은 설사와 곧바로 연결된다.

기저귀에 묻어나는 변을 보면서 요양사가‘또 쌌어’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멸스러운지 딸아이는 모를 것이다.

딸아이가 주는 대로 다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딸아이가 이젠 알아서 양을 조절하지만 요즈음도 가끔은 실수를 한다.

나는 딸아이가 뭘 모르고 내미는 대로 받아먹으면서도 갈등하고 저항했던 오래 전의 기억을 더듬곤 한다.

이번 주에도 설사로 기진해 있다는 전화를 받은 딸아이의 부탁으로 포도당 주사를 몇 차례 맞아야만 했다.

난 이제 딸아이가 나를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근황을 모른 채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일주일에 한 번 나를 들여다보러 온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다.

 

집이 가까운 것도 아니고 도곡동에서 이곳 성북동 까지는 한 시간은 족히 차를 몰아야할 것이다.

중학교 일 학년과 이 학년인 손녀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터였다.

아무리 무던한 사위라곤 하지만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나를 찾아 나서는 마누라가 달가울 리 없을 것이다.

딸아이가 그렇게 달려와 본들 나와 의사소통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의사소통이 된다고 해도 나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해도 내가 딸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엄마라는 이유로 딸아이의 시간을 묶어놓고 축내고 있을 뿐이다. 딸아이는 다음 주에는 사위와 여행을 간다고 말했다.

결혼 이십 주년 기념으로 유럽을 다녀오겠다고 했었다. 가야지. 엄마에게 빼앗기는 그 많은 시간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다녀오너라.

드디어 내가 간절히 바라던 대로 딸아이는 다음 주말에 이곳에 오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딸아이가 나타날 것이다. 보고 싶다. 기다려진다. 아니다. 기다리지 말아야한다.

나도 딸아이가 없는 주말에 익숙하기 위해서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니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 것인가. 밥을 먹는 것 외에 다른 간식을 먹는다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환희스럽다.

딸아이는 오늘은 무엇을 나에게 먹일까 벌써 궁금해진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복도 끝에서 들려온다.

누군가의 가족이 왔나보다. 딸아이는 아니다. 보통 딸아이는 열 시나 열한 시 사이에 온다. 오늘 따라 딸아이가 더 보고 싶다.

“엄마.”

딸아이가 들어선다. 반갑다. 딸아이의 모습이 눈부시다. 체리핑크 셔츠에 하얀 카디건이 썩 잘 어울린다.

봄기운이 배어나온다. 딸아이가 치즈 케이크를 떼어내 입에 넣어준다. 치즈 케이크가 입 속에서 녹는다.

아 이 맛!……. 감미롭다. 어느 사이 한 조각을 다 먹었다.

 

“엄마 딸기 냄새 싱그럽지?"

딸아이가 딸기를 두 조각으로 나누어 포크에 찍어 코에 가져다 댄다. 입안에 침이 고인다. 치즈 케이크 뒤에 먹는 딸기의 맛은 산뜻하다. 오늘 들고 온 간식은 두 가지 뿐이다. 양도 적다.

“엄마! 집에 갔더니 세입자가 정원을 가꾸지 않아 잔디밭이 엉망이 되었더라.”

내 집은 아파트였는데 무슨 정원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렇다. 잊고 있었다. 나의 기억에 정원이 딸린 집의 그림은 저장되어있지 않다.

내가 이곳에 들어와서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새 준공 검사를 마치고 정원에 꽃나무와 과실수들을 심었겠지. 그 집에는 누가 살고 있는 것일까.

딸아이의 나이 마흔 다섯. 앞머리를 내린 단발머리가 잘 어울린다.

갓 서른을 넘긴 듯한 앳된 모습의 딸아이도 차츰 늙어가고 있다. 그동안 집 이야기를 하지 않던 딸아이였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은 느슨해지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집을 짓다가 벌어진 이야기가 많을 터인데도 딸은 아빠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 이곳까지 오는 데는 일 년이면 충분했다. 상주하는 아줌마가 일주일을 견뎌내지 못했다.

남편의 자상함을 견딜 만큼 무딘 도우미 아줌마는 없었다.

입을 앙당그레 물고 요플레를 먹지 않겠다고 하는 나에게 남편은 억지로라도 먹여야 한다고 아줌마를 다그쳤다.

남편은 장어를 고아 먹여야 한다고 팔뚝 보다 굵은 장어를 사들고 들어오기 일쑤였다.

달궈진 냄비에서 꿈틀거리던 장어가 튀어나와 부엌에서 거실로 방으로 사방을 휘젓고 다녔다.

온 집안에 참기름 냄새가 진동 했다. 남편은 기암을 하는 아줌마를 나무랐다.

그렇게 자상하던 남편을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상한 만큼 나 아닌 다른 여자에게 자상할 것을 생각하면서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남편과의 이별이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백신이라 여기고 모든 것을 받아드리고 견디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상시 절에 다니면서 백팔 배를 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딸아이도 나를 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딸이 이제까지 내게 새집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그저 성경책을 읽어주거나 영화 팸플릿을 가지고 와서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불경이면 어떻고 성경이면 어떠냐 싶어 나는 귀 기울여 듣는다. 때론 노트북을 들고 와 내 배위에 올려놓고 같이 영화 감상을 하기도 한다.

노트북 화면을 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을 느낀 딸이 나의 눈물을 휴지로 찍어내준 적도 여러 번이다. 딸 덕분에 이제까지 버티어온 것 같다.

딸은 점심 식사를 돌봐준 후 다른 때와는 달리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딘가 가야 할 일이 있는 모양이다. 다시 일주일 뒤에야 볼 수 있다.

일주일. 아니지 다음 주에는 유럽을 다녀온다고 했다.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이젠 안 와도 된다고 결단력있게 소리쳐 보고 싶다.

말은 나의 입 속에서 맴돈다. 나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온몸이 소름이 돋듯 피부가 들고 일어나는 것 같다.

하루하루 간절하게 딸을 기다리는 마음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가슴이 아려온다.

 

“엄마 좀 어때?”

봉순 할머니 딸이 방안을 들어서면서 묻는다. 아마 이 곳을 다녀간 지 두 달은 될 것이다. 딸의 손에 뻥튀기 과자가 들려있다.

“좀 어떠세요?”

사위가 침대 가까이로 다가가며 고개 숙여 인사 한다. 실따라 바늘이 왔을 뿐이란 무심한 표정이다.

보호자가 온다는 연락을 받는 날이면 봉순 할머니는 보행기를 압수당한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 봉순 할머니는 거실에서 넘어져 엉치뼈를 다쳤다.

그 후부터 보행기를 사용해야만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배회하면서 중얼거리는 것도 그때부터 생긴 버릇이라고 한다.

노인들이 이곳 시니어 센터에 의탁되는 이유는 한가지다. 가족들이 어르신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봉순 할머니 딸이 어느 날 봉순 할머니가 보행기를 끌고 뒤뚱거리며 재빠르게 복도를 가로질러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봉순 할머니 딸은 봉순 할머니의 버릇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지하지 않는다고 원장을 다그쳤다.

“못 움직이게 묶어 놓을 수도 없는 것이고……. 저희도 신경을 쓰고 있으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원장의 목소리가 메말랐다. 그런 실랑이가 몇 차례 거듭되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고개를 한껏 비틀어 원장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원장의 뒷모습만 보일 뿐 내가 궁금해 하는 표정은 볼 수 없었다. 원장은 결국 봉순 할머니를 모시고 퇴소해 달라는 말을 꺼냈다.

그런 말을 들은 이후부터 봉순 할머니 딸은 뭐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양사들은 딸이 오는 날이면 보행기를 압수한다. 그러면 봉순 할머니는 악을 쓰고 욕을 퍼붓기 시작한다.

한 번도 들어 본적이 없는 욕들은 서낭당에서 펄럭거리는 천 조각처럼 허공에서 너불거린다. 어떤 욕은 그게 욕인지 뭔지를 못 알아듣는다.

그러나 침을 꼴깍 삼키는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고약스럽고 끔찍스런 말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도 나는 속으로 따라서 되뇌어 본다.

나도 저렇게 욕이라도 하면 속이 후련해질지 모른다. 오늘도 요양사는 생과자를 하나 들고 와 봉순 할머니에게 내밀면서 가족이 곧 온다고 달랜다.

그러나 봉순 할머니는 딸의 이야기에 눈에 생기가 도는 다른 할머니들과는 다르다.

 

가족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인 적이 없다. 생과자를 먹어치우는 시간은 항상 너무 짧다. 그러면 이번에는 간식을 더 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한다.

“나 좀 줘. 나 좀 줘. 나 좀 줘.”

두세 번 과자나 과일 조각이 봉순 할머니 손에 들려진다. 그러나 때론 가족의 도착 예정 시각이 늦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건물이 떠나갈 듯이 외쳐대는 욕 때문에 욕지기가 난다. 할머니들이 듣기 싫다는 거부 반응과 봉순 할머니를 나무라는 소리가 난무하면서

결국 말다툼으로 번져버린다. 소란스럽다. 몇 달에 한 번 딸과 사위가 와서는 조용히 삼십 분 정도 앉아 있다가 돌아간다.

뻥튀기 과자를 우적거리며 먹는 소리가 들린다. 봉순 할머니의 표정은 아마 무덤덤할 것이다.

나는 고개를 비틀면서까지 봉순 할머니를 관찰하고 싶지는 않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가 여전히 여덟시 반이다. 시계가 멈췄던 것이다. 아마 건전지가 다 된 모양이다.

언제 건전지를 갈아 끼워줄지 알 수 없다. 해가 기울어가고 있다. 방안에 스며든 공기의 느낌만으로도 가늠이 된다.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다. 어수선했던 각 방의 두런거림도 한참 전에 사라졌다. 오늘은 지숙씨 막내딸이 안 올 모양이다.

막내딸은 생긋거리며 엄마의 뺨에 얼굴을 비비기도하고 칭얼대는 어린아이처럼 엄마 손을 잡고 흔들기도 한다.

 

막내 딸 특유의 어리광이 유별나게 살갑게 느껴진다. 내 딸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구석이라 마냥 좋게만 보인다.

방안으로 들어선 요양사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내게 다가온다. 내가 점점 더 심통스러워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전에는 요양사에게 미안했었다. 그러나 이젠 엉덩이 가까이에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는 요양사의 얼굴을 발로 걷어차고 싶다.

“비켜 이년아.”

그러나 나는 걷어찰 수도 소리를 낼 수도 없다. 가슴 가득히 들어찬 돌덩이들이 부딪히는 마찰음을 들으며 깊은 날숨 들숨을 반복할 뿐이다.

마침 지숙씨 막내딸이 방으로 들어서고 있다. 미쳐버릴 것 같다.

“엄마 나 화장실부터 먼저 갔다가 올게. 잠깐만 기다려요.”

지숙씨 딸이 재빨리 방을 나간다. 커튼이라도 치고 기저귀를 갈아주면 좋겠다.

지숙씨 딸이 사라진 방 밖 복도를 바라본다. 요양사가 재빨리 기저귀를 갈아줘도 신통치 않을 판에 다른 요양사에게 뭔가를 이야기하면서 낄낄 거린다.

봉순 할머니가 흘린 과자 부스러기를 쓸어내던 요양사가 말한다.

 

“봉순이 할머니 딸은 사 와봐야 뻥튀기야. 과일은커녕 제대로 된 과자 한번 사오는 꼴을 못 봤어.”

고스란히 드러난 사타구니에서 젖은 기저귀를 빼내면서 요양사가 대꾸한다.

“그러게 말이야. 처음에 나는 봉순 할머니가 뻥튀기 과자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줄 알았다니까.”

“야 이년아 빨리 내 기저귀나 채워.”

사타구니에 시원한 느낌이 드는 순간 보송보송한 새 기저귀가 채워진다. 그래도 한결 개운해진 것 때문에 요양사에게 괘씸했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뭐라 해도 요양사의 손길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지숙 씨와 막내딸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만나는 남자가 서른일곱의 내과 의사라고 했다.

막내딸 나이는 서른 둘. 궁합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나이 차이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들어보니 이혼남인 모양이다. 막내딸은 회계사라고 했었다. 요즈음은 서른둘이 노처녀라고 할 수도 없다고 하던데 왜 이혼남을 만나는 것일까 물어보고 싶다. 요양사가 들어와 묻는다.

“어르신 저녁 식사를 방에서 드시게 해드릴까요? 아니면 식당에서 식사를 드시겠어요?”

“여기서 먹을게요.”

지숙씨의 목소리가 경쾌하다. 갑자기 복도 한 쪽에서 다급하고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온다. 발자국 소리가 한 곳으로 내닫고 있다.

“괜찮으세요? 괜찮으세요?”

“나 죽는다. 나 죽어.”

D 요양사와 숨 가쁜 봉순 할머니의 목소리다.

“움직이지 마시고 숨을 크게 쉬어 보세요. 다리를 이쪽으로 움직여 보세요.”

간호사도 봉순 할머니를 재촉해 보지만 봉순 할머니의 힘겨운 신음 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아마도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원장이 구급차를 부르며 통화하는 사이에 D 요양사가 방으로 들어와 봉순 할머니의 겉옷을 챙겨들고 나간다.

지숙씨 딸이 나갔다 들어오면서 말한다

“봉순 할머니가 주저앉아서 일어나지를 못하세요.”

지숙씨가 혀를 찬다. 평소에 말 한 마디 없던 사람이 혀를 찰 줄은 알고 있었다.

 

오늘 밤부터 봉순 할머니가 병원에서 돌아올 때까지는 잠을 편히 잘 수 있다. 봉순 할머니도 이젠 끝장이다.

더 이상 걸어 다닐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팔십이 넘어 병원에 다녀온 사람치고 차도를 보인 사람을 보지 못했다.

다만 이곳을 그렇게라도 빠져나가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은 나의 바람일 뿐이다. 묵직한 바퀴 소리와 동시에 바리톤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구급차가 도착을 한 모양이다.

 

침샘에 침이 고인다. 십 년 동안 어김없었던 정확한 식사 시간이 몸을 자동화 시켰다.

식당으로 이동할 사람이 모두 빠져나간 복도의 정적이 반갑다. 요양사가 스테인리스 식판을 받쳐 들고 들어온다.

오늘 저녁 반찬은 고등어 졸임과 무국, 김, 호박 나물과 야채샐러드이다. 나의 밥을 떠먹여주는 요양사가 고등어 살을 발라 입에 넣어준다.

작은 가시가 입 속에서 까끌까끌하게 혀를 자극한다. 영양사는 통조림으로 반찬을 해야지 어쩌자고 생물로 반찬을 만드는지 모르겠다.

내가 제대로 우물거릴 사이도 없이 밥알이 수북한 숟가락이 입 속을 밀고 들어온다. 와상 환우들의 식사를 돌본 뒤 밥을 먹어야 하는 요양사의 바쁜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요양사들은 식사를 마치고 양치를 하면서 밥을 너무 급하게 먹어서 체할 것 같다고 투덜거리곤 한다.

그래도 좀 천천히 식사를 하면서 맛을 음미해보고 싶다.

 

지숙 씨와 막내딸도 나란히 식사를 하고 있다. 식탁에 펼쳐진 생선 초밥이 나의 눈을 파고든다. 나는 지금도 와사비의 매콤한 맛을 기억하고 있다.

생선 초밥에서 생선을 걷어내 지숙 씨 입에 넣어주던 막내딸이 내 쪽의 요양사를 흘끔거린다. 지숙씨도 나와 눈이 마주친다.

보통 나에게 한두 개는 권하던 막내딸도 요양사 앞에서는 조심스럽다.

지숙 씨 조차도 아직은 연동식을 하고 있고 나 또한 설사를 자주 하고 있어 요양사의 눈총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오늘은 생선 초밥은 물 건너 간 것이다.

 

“엄마 이번 생일은 둘째 언니가 엄마를 모시고 야외로 나가자고 했어.”

지숙 씨 막내딸의 말에 내 귀가 번쩍 뜨인다.

“나를 어떻게 감당하려구?”

지숙 씨의 걱정스런 말과는 달리 표정에 생기가 돈다. 발그레 붉어진 얼굴에 눈물이 고인다.

혹 상견례를 하려는 것은 아닐까 두서없는 나의 생각이 사방으로 튕겨나간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청평 호수가 내다보이고 베고니아가 베란다 둘레를 감싸고 있던 어느 레스토랑의 모습이 떠오른다.

검은 조끼에 분홍 나비넥타이를 맨 종업원들의 소리 없는 움직임이 격조를 더해 주던 곳이다. 이 주일 후면 지숙 씨 생일이다.

“엄마 돌아오는 일요일에는 지훈 씨와 같이 올게요.”

 

막내딸이 만나는 남자가 지훈이구나. 어떤 사람일까. 난 입 속으로 사위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러고 보니 무던한 나의 사위를 본지도 두 달이 지났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의 소리가 복도를 메운다. 이제 거실의 텔레비전 소리와 각 방의 크고 작은 소음들이 뭉치는 시각이다.

소리 속에 “곧바로 수술을 했대”라는 말이 도드라진다.

봉순 할머니가 이곳에서 생활한 것은 나보다 짧은 기간이다. 여든 한 살의 나이에도 건강했던 것은 운동 탓이었던 모양이다.

요즈음 텔레비전에서는 운동이 만병의 통치법이라고 떠들어댄다. 그러나 정신만은 운동으로도 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 다행이다.

일주일에 세 번 물리치료가 전부인 나에게 운동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 둘 거실을 떠나 복도를 지나쳐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니 소등 시각이 가까워진 것 같다. 지숙씨 딸이 무심코 벽시계를 바라본다.

“어머 벌써 여덟 시 반이네.”

주섬주섬 핸드백과 재킷을 챙기며 일어선다.

“아니야 그 시계는 멈춰있는 거야. 지금 시각이 아니야.”

나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거실의 버티컬 블라인드가 드리워지는 소리가 들린다. 정말 여덟 시 반인가 보다.

이제 곧 아홉 시. 소등시각이다. 봉순 할머니가 없고 D 요양사가 당직 근무하는 오늘 같은 날은 아주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은 노인네들이 면회실과 각 방으로 흩어져 가족들과 해후하는 일요일이다.

내 딸은 오지 않겠지만 다른 가족들을 바라본다는 것은 즐겁다.

교회에 모시고 가려고 이른 아침 서둘러 오는 앞 방 한 할머니의 아들을 보면 경건한 마음까지 든다. 그런데 벽시계 건전지는 언제 갈아 끼워질까.

벽시계가 멈춘 날 봉순 할머니에게 사고가 났다. 나에게도 그런 사고의 기회가 와 준다면 좋겠다.

 

바람의 냄새가 어둠 속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는 것 같다.

D 요양사가 방으로 들어선다.

“안녕히 주무세요.”

D 요양사가 다가와 나의 머리를 베개에 반듯하게 눕힌 후 비상등만 남기고 모든 불을 끄고 나간다.

지금은 졸음이 오지 않지만 오늘 밤은 편하게 아침 까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캡처.JPG

 


  1. 장덕상(30회) - 르끌레도 국제 클럽 명예 회원 등제

    Date2022.02.24 By사무처 Views141
    Read More
  2. 강창희(18회) 화려한 싱글 꿈꾸지만 얇은 지갑만

    Date2022.02.22 By사무처 Views163
    Read More
  3. 양혜숙(7회) 우리에게 조국이란 무엇인가?

    Date2022.02.22 By사무처 Views102
    Read More
  4. 20김종량 동문 관련기사_한양대

    Date2022.02.21 By선농문화포럼 Views109
    Read More
  5. 이광형(25회) 어릴적부터 코딩가르치고 의사과학자 키워야

    Date2022.02.21 By사무처 Views54
    Read More
  6. 이강년(25회) 총동창회장 사재 털어 국가 키웠더니 토사구팽

    Date2022.02.17 By사무처 Views151
    Read More
  7. 한국의 자랑 한글 - 이화여대 명예교수 아이코리아 이사장 김 태 련(8회)

    Date2022.02.17 By사무처 Views83
    Read More
  8. 33회장 노용오 - 중앙농협 사외이사 재선임 소식

    Date2022.02.16 By사무처 Views189
    Read More
  9. #17성기학 (주)영원무역 노스페이스_대한민국 1위 브랜드

    Date2022.02.16 By선농문화포럼 Views67
    Read More
  10. 이광형(25회) 취임 1주년 연구중심 과학의 전원 만들 것

    Date2022.02.16 By사무처 Views67
    Read More
  11. 박현채(18회) 한국경제의 최대화두로 등장한 공급망 다변화

    Date2022.02.15 By사무처 Views48
    Read More
  12. 김해은(31회) 호밀밭의 파수꾼 -20대의 표심과 상무정신

    Date2022.02.15 By사무처 Views112
    Read More
  13. 김옥찬(27회) 협력사와 상생하는 것이 지속가능 성장의 원동력

    Date2022.02.13 By사무처 Views78
    Read More
  14. 차두원(41회) 자율주행 레벨 3 성공가능성

    Date2022.02.13 By사무처 Views121
    Read More
  15. 최준표(24회) 덴마크식 첨단 바이오가스화 시설 도입된다

    Date2022.02.11 By사무처 Views86
    Read More
  16. 30회 조남재 동문 (한양대 교수) - IC-PBL Frontier (대학원)상 수상

    Date2022.02.11 By사무처 Views108
    Read More
  17. 31김성한 前 외교부차관 칼럼_2/4(字) 시사저널

    Date2022.02.08 By선농문화포럼 Views100
    Read More
  18. (18회)강창희_행복100세 인생설계&자산설계

    Date2022.02.07 By선농문화포럼 Views107
    Read More
  19. 이광형(25회) 1일 1억원 기부금 유치

    Date2022.02.07 By사무처 Views123
    Read More
  20. 홍사성(22회) 신간 안내, 정치 이렇게 하면 초일류된다

    Date2022.02.05 By사무처 Views14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142 Next
/ 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