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에 상처… 중국에 더 단호했어야
세심한 메시지로 국민 상처 치유 필요
27일 오후 대구 수성우체국 앞에서 시민들이 정부가 공급하는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대구=연합뉴스

나는 공포를 느낀다. 나와 내 가족, 내 동료가 혹시라도 감염될까 하루하루 불안의 연속이다. 보통 사람에겐 독감 정도라니까 치명성을 걱정하지는 않지만, 아파트와 회사 건물이 셧다운되고 주변 사람들이 격리되고 심지어 무심코 갔던 식당 편의점마저 피해를 주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끔찍하기만 하다.

약속도 행사도 다 취소하니까 집과 회사만 오가는데 사무실에서도 가급적 대면 접촉은 피한다. 자연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SNS만 보게 된다. 운동마저 게을리 하게 되면서 점점 무기력해짐을 느낀다. 나만 그런 건 아닐 테고, 사회 전체가 활동 의지를 상실하는 집단적 무력감에 빠져드는 듯하다. 이대로 가면 노점상과 식당, 특히 관광에 의존하는 지방도시들과 상인들은 얼마 못 버틸 것이다. 장기침체가 오면 난 괜찮을까.

 

공포와 무력감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모멸감이다. 오스카의 기적을 본 게 2월 10일, 31번 확진자와 신천지가 드러난 게 18일이다. 다들 부러워했던 ‘기생충’의 나라에서, 모두가 기피하는 ‘바이러스’의 나라로 추락하기까지 열흘이 걸리지 않았다. 나라의 서열을 매겨선 안되지만, 절대 우리한테 그래선 안될 것 같은 나라들조차 한국인 입국을 거부하는 모습에서 울분을 넘어 허망함마저 느낀다.

난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대응 시스템이 세계 최고라 확신한다. 추적 검진 격리 치료까지 모든 과정이 이렇게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대구 상황을 두고 중국 언론이 한국 정부를 훈계했다고 하던데, 정말 웃기는 소리다. 국민들이 정권에 대한 생각은 달라도 정부(방역당국)만큼은 믿는다고 본다.

결국 바이러스는 잡을 것이다. 하지만 공포와 무기력, 모멸감은 첨단 방역시스템만으론 치유되지 않는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섬세함이 필요한데, 정부엔 그런 게 없다. 마스크 문제를 보자. 마스크의 바이러스 차단 효과에 대해선 논란이 많지만, 어쨌든 마스크가 없으면 불안과 공포는 배가된다. 그런데 세계 최고의 의료시설과 방역체계를 가진 나라에서, 정작 국민 개별방역의 1차 수단인 마스크조차 구할 수 없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신천지의 악몽을 본 일반 비기독교인들에겐 교회들의 주일예배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뒤늦게 문체부장관이 나서긴 했지만, 이미 지난주부터 움직였어야 했다. 기독교에 예배 중단이란 말을 꺼내는 게 쉽진 않겠지만, 초유의 재난상황인 이상 대형 교회들을 개별 접촉해서라도 각종 모임 중단을 강력하게 촉구했어야 했다.

우리나라의 코로나 상황은 신천지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만약 신천지 집단 감염만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중국인 입국을 완전 차단하지 않고도 코로나 방역에 성공하는, 그래서 국민안전과 대중국 지렛대를 동시에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게 변했고, 이제 와서 중국인을 왜 진작 막지 않았느냐고 비난하는 건 정치공세 차원이면 모를까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남는 건 중국인 유학생이다. 여전히 국민들은 이들을 막아 줄 걸 원하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한국인들이 중국 공항에서 격리되고, 한국인 거주자들이 중국 공안에게 차별 당한다고 하는데도, 정부는 중국 당국에 즉각 항의하지 않았다. 다 이유는 있고 명분과 실효 사이에서 합리적 고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받은 모멸감, 더구나 공포심과 무력감에 더한 모욕감을 헤아린다면 정부는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얘기만 할 게 아니라, 중국인 유학생 입국 봉쇄를 위해, 만약 전면 차단이 어렵다면 입국 최소화를 위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니 찾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했다. 다른 나라도 아닌 바이러스 진원지인 중국이 한국인 입국을 막고 감시하는 걸 알았다면, 오히려 더 거칠게 어필했어야 했다.

국민들은 지치고, 두렵고, 상처받았다. 방역과 의료만으론 해결되지 않는다. 핵심은 정부의 말과 행동이 주는 메시지다. 더 세심해지고 더 단호해야 한다.

콘텐츠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