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백신을 맞고 많은 접종자들이 사망한 사례는 예년에 없던 현상이다. 특히 백신 '상온 노출' 과 '백색 입자 검출'에 이어 사망 사고까지 잇따르면서 백신 안전성에 대한 국민들의 공포와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대규모 접종 예약 취소나 연기 등의 혼란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독감백신을 맞고서 죽으나, 안 맞고 독감에 걸려서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냉소적인 농담이 등장, 유료백신 접종자가 확연히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한 신고 건수는 총 25건으로 한해 평균 2건을 약간 웃돈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올해는 23일 9시 현재 벌써 29건이나 되고 있다. 발열, 구토 등 이상 반응 신고자도 예년의 2~4배 수준이다. 사망자 대부분이 접종 후 수 시간에서 사흘 사이에 숨진 것도 예년에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현상이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백신은 안전성이 입증된 것으로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면서 과도한 공포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충고한다. 다만 사람에 따라 과민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접종 후 급성 과민반응을 보일 경우 신속히 대처하고, 기저질환자는 증상이 호전될 때까지 백신 접종을 미루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이나 고령자들은 또 다른 위험에 처할 수 있으니 독감백신 주사를 맞는 게 좋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안정성 입증을 위해 독감 국가 예방접종사업을 일주일간 중단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등 전문가 집단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 시점에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보다도 사망과 백신 간의 인과관계를 신속하게 밝혀내는 것이다. 당국은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이같은 사망사고가 왜 잇따르고 있는지 명확하게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망자의 부검을 해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숨진 고교생에 대한 1차 부검을 마친 뒤에는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아 사인이 미상”이라면서 2차 부검을 해 보아야 알 수 있다고 했다. 다시 2차 부검을 한 뒤 이 학생의 사인이 백신과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것은 질병관리청이나 부검을 담당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아닌 경찰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정보공개가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정부가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인위적인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공개만이 국민의 불안을 씻어낼 수 있다. 당국은 지난 9월 백신 상온 노출 당시에도 “48만명 분을 수거했고 상온 노출 백신을 맞은 국민은 한 명도 없다"고 했지만 수천명이 상온 노출 백신을 접종한 것으로 드러났다. 백색 침전물이 발견됐을 때도 이미 1만8000명이 접종을 한 뒤에야 뒤늦게 발표를 해 빈축을 샀다. 이번에도 10대 청소년 첫 사망 사실을 사흘 뒤에야 공개했고 백신의 종류가 무엇인지는 다시 이틀 뒤에 공개했다. 사건 관련 브리핑을 고집스레 미루기도 했다.
백신에 대한 불신은 접종 기피로 이어진다. 이는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창궐하는 ‘트윈데믹’(twindemic)을 유발할 수 있다. 지금이 기로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면피성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백신 제조나 유통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 지 철저히 조사해 모든 것을 사실대로 공개해야 한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