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 확정된 이상
재정 집착보다 원래 취지 충실해야
기부가 ‘배려와 연대’의 표현되기를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4월초 남대문시장의 썰렁한 노점골목 모습. 정준희 인턴기자

재난지원금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세 가지가 이뤄져야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첫째 신속하게 지원할 것, 둘째 충분하게 지원할 것, 셋째 여유가 있거나 마음이 있는 사람은 이 돈을 자기가 쓰지 말고 기부하면 좋을 것. 이중 ‘신속한 지원’은 이미 물거품이 됐다. 총선 탓도 있지만 기획재정부가 너무 오래 고집(70% 가구만 지급)을 피우면서 가뭄의 단비 효과는 반감되고 말았다. 대신 지급 대상이 100%로 넓어져 ‘충분한 지원’은 어느 정도 충족됐다.

마지막으로 기부는 약 3개월 시효가 지나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국민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정부 여당은 10~20% 예상). 다만 기부는 잘못 접근하면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어, 정부도 국민도 절대로 선을 넘어선 안 된다. 전례 없는 전국민 대상 재난지원금을 기부 프로그램과 매치 시킨 이 전례 없는 시도가 실패하지 않도록, 나름 몇 가지 수칙을 정리해봤다.

 

1. 정부는 기부 얘기를 더 이상 꺼내선 안 된다. ‘70% 대 100%’의 교착 상태를 풀기 위해 기부 아이디어를 삽입시킨 건 좋았지만 자꾸 독려하면 돈을 줬다가 뺏는다는, 주기 싫은 돈 억지로 준다는 인상을 심는다. 기부하고 싶은 마음도 달아나게 할 수 있다.

 

2.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이나 장관들의 기부 사실도 알리지 않았으면 한다. 재난지원금 기부가 정부 캠페인이 되면 대통령→국무위원→전 부처→공기업 및 정부 산하기관→금융기관 및 대기업으로 확대되는 패턴을 밟을 텐데, 자발성이 사라지면 기부는 그저 준조세가 되고 만다.

 

3. 대신 정부는 다양한 기부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재정 부담을 의식해 기부 방식으로 재난지원금 신청 포기를 선호하는 듯한데, 이건 옳은 방법이 아니다. 애초 정부가 돈을 풀기로 한 건 소비 촉진 때문이지 소득 보전 목적이 아니었다. 국민들이 어떻게든 돈을 써서 시장 상인과 식당 주인들에게 도움이 되고 그럼으로써 경제에 돈이 돌게 하자는 취지였다. 소득 보전 목적이었다면 상품권으로 줄 이유도, 상위 30%까지 확대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면 정부는 기부희망자들이 재난지원금 신청을 포기하는 걸 기대할 게 아니라, 일단 카드나 지역상품권을 수령한 다음 더 어려운 사람이나 단체가 쓸 수 있게 기여토록 유도하는 것이 맞다. 이왕 시작한 이상 이번 지원금만큼은 재정 집착을 접어야 한다. 아울러 부분 기부의 길도 터줘야 한다. 받은 지원금 중 절반 혹은 10만원만 기부하고 싶은 사람도 분명 있을 텐데, 부분 신청포기든 부분 기부든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좋겠다.

 

4. 기부 독려는 민간 레벨에서 이뤄져야 한다. SNS 해시태그(#재난지원금 기부) 같은 것도 좋겠지만 ‘아이스버킷 챌린지’처럼 다음 대상을 지목해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드는 건 곤란하다.

 

5. 개인끼리, 술자리에서라도 ‘나는 했다, 너는 했니’ 하는 식의 기부 얘기는 피했으면 한다. 기부는 선(善)이지만, 기부하지 않는 게 악(惡)은 아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뜻밖의 수혜자가 된 상위 30% 소득계층을 겨냥해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상당 부분 기부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기부하지 않는 고소득자를 성숙하지 않은 시민으로 규정해버렸다. 뒤끝을 넘어 오만, 편가르기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통합과 조화의 매개가 되어야 할 기부가 갈등과 분열을 더 부추길 수도 있다.

우리가 코로나 방역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대구로 달려갔던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자로 상징되는 ‘배려와 연대’ 덕분이었다. 재난지원금 기부에 주목해야 하는 건, 방역에서 시민들이 보여줬던 배려와 연대의 힘이 경제위기 극복에도 작동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재난지원금이 경제성장률을 얼마나 개선시킬 지, 반대로 국가채무 비율은 얼마나 악화시킬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수치적 효과를 뛰어 넘어, 결코 %로 환산할 수 없는 위대한 힘이 기부를 통해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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