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포럼] 11회 김필규 이사 관련 기사_중앙일보 11/24字

by 선농문화포럼 posted Nov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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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어부 추도사’ 김필규 회장 “엘베까지 배웅나오던 이재용,

아버지 답습 말고 새 길 개척하길” [삼성연구]

중앙일보 / 입력 2021.11.24 09:00 / 최은경 기자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 [사진 김필규 회장]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 [사진 김필규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역대 최대 규모의 해외 투자인 ‘미국 20조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프로젝트’ 확정, 대대적인 인사제도 개편 등을 통해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8월 가석방으로 풀려난 후 코로나19 백신 확보, 고용·투자 확대를 밝힌 ‘물밑 조율’ 이후 지난 14일 북미 출장을 떠나면서 정·재계 거물을 만나면서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 부회장 앞에 놓인 화두가 있다.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뜻의 ‘승어부(勝於父)’다. 지난해 10월 28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영결식 때, 고인의 서울대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2년 선배인 김필규(80) 전 KPK통상 회장이 추모사에서 언급한 말이다.

아버지를 능가하다는 뜻의 ‘승어부(勝於父)’ 

당시 김 회장은 “세계 어느나라를 둘러봐도 이건희 회장만큼 크게 승어부해 효도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며 “흔히 사람들은 이 회장이 삼성을 100배·1000배 키웠다고 얘기하지만, 그 성취의 크기를 수량으로만 가늠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승어부는 두 달여 뒤인 지난해 12월 30일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결심 공판에서 이 부회장의 다짐을 통해 다시 세간의 입길에 올랐다. 이 부회장은 재판 최후진술 말미에 “제가 꿈꾸는 승어부는 회사의 성장, 신사업 발굴보다 더 큰 의미를 담아야 한다”며 “촘촘한 준법제도를 만들고, 모든 사람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기업(삼성)을 만들 때 제 나름으로 승어부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격에 맞는 새 삼성을 만들어 너무나 존경하는 아버지께 효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승어부-. 김필규 회장은 왜 이런 표현을 꺼냈을까. 최근 중앙일보와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한 김 회장은 “야구선수 이종범씨 아들(이정후)이 야구를 잘한다고 하니 거기나 그럴까. 재계는 물론 여러 분야를 둘러봐도 아버지를 능가한 자녀를 찾기 어렵다”며 “특히 기업을 물려받아 승어부를 이루려면 조건이 까다로운데 이건희 회장은 진정한 승어부를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회장은 그러면서 “그래서 영결식에서 ‘편히 쉬어라. 이제 재용이(이재용 부회장)가 승어부를 할 것이다’ 라고 덕담을 해준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김 회장과 일문일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28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열린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영결식을 마치고 장례식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28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열린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영결식을 마치고 장례식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Q. 승어부의 조건이 무엇인가요. 
 
A. 우선 선대가 어느 정도 일가를 이룬 분이어야 해요. 그래야 그걸 능가한다는 의미가 있지요. 근데 그게 어느 정도면 능가할 수 있지만, 삼성처럼 거대한 산맥을 이룬 것을 또 능가한다는 건 정말 힘들지요. 평소에 이 회장은, 속에 뭐가 있길래 승어부를 이룰 수 있었는가 하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Q. ‘승어부’ 라는 단어 자체도 화제가 됐습니다.
 
A. 저도 놀랐어요(웃음). 공부를 많이 한 친구들도 추도사를 한 후에 ‘그게 무슨 뜻이냐’고 여기저기서 물어오더군요. 언론에서도 출전(出典)이 뭐냐고 연락 오고요. 예부터 부모끼리 만나 ‘자네 아들 공부 잘하나’ 물었을 때 ‘에미애비 업신여길 만하다’ 하면 그게 잘한다는 얘기지요. 내가 아버지를 이기겠다고 다짐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볼 때 아버지를 능가한다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릴 때 제 할아버지께서 ‘공부 잘해라’ 하시면서 가르쳐주신 말입니다. 공부나 인격이나 모든 면에서 부모를 능가하도록 애쓰라는 말씀이셨지요. 그게 효도의 첫걸음이라 하시면서요. 

효도 첫걸음’이라며 할아버지께 배운 말”

김 회장은 이 회장과 서울사대부고 레슬링부 활동을 하면서 함께 뒹굴었다. 김 회장이 고교 3학년일 때 ‘신입생’ 이 회장이 레슬링부에 들어왔다. 김 회장은 서울사대부고 동문들의 수필 모음집 『우리들의 이야기』에서 이런 말을 했다.

“1958년 봄이었어요. 주소가 서울시 중구 을지로 6가 서울사대부고 강당 한 구석에 있는 레슬링반에서 (이 회장을) 처음 만났습니다. 유난히 피부가 희고, 눈이 깊으면서 귀티가 났더랬습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인연을 풀어냈다. 김 회장은 고교 시절 레슬링 대회 출전 준비를 하면서 서울 장충동에 있던 이 회장의 집에 드나들었다. 고교를 졸업한 뒤로는 60대 후반에야 다시 인연을 이어갔다.

서울사대부고 수필집.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이 고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쓴 글이 실렸다. [사진 서울사대부고 동창회 웹사이트]

서울사대부고 수필집.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이 고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쓴 글이 실렸다. [사진 서울사대부고 동창회 웹사이트]

Q. 기억에 남는 만남이 있나요.
 
A. 한참 못 보다가 말년에 이 회장과 몇 번 저녁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이 회장은 와인을 포함해 술을 잘하지 못해요. 하지만 ‘(와인이) 꼭 필요한 때가 온다’면서 문화로 받아들였습니다. 참 특이해요. 저도 사업하느라 외국을 자주 드나들다 보니 와인을 자주 접했는데 와인에 대해 너무 몰라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그걸 이 회장은 훨씬 먼저 알고서 직원들에게 와인을 가르친 거지요. 한국에 와인 문화가 퍼지지 않았을 때 이 회장이 임원이 된 삼성맨들에게 와인을 한 병씩 선물했어요. 그 와인 종류에 따라 와인 시장이 들썩일 정도였지요. 2004년 리움미술관이 개관할 때 세계에서 유명한 미술계 인사들이 많이 왔는데, 1982년산 샤토 라투르를 수백 병 준비했다고 해요. 그렇게 삼성 사람들에게 와인을 가르친 거지요. 외국 사업 파트너와 대화에서 와인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완전히 다르거든요. 저도 술은 많이 못 해요. 이 회장과 제가 와인을 앞에 두고 있으면 주위에서 ‘비주(酒)류 두 사람이 와인 얘기하는 것이 우습다’고들 했어요. 
Q. 미술도 공통의 관심사였지요.
 
A. 제가 은퇴한 뒤 명지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석사 학위를 받고, 2012년엔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명화 101』이라는 책을 썼어요. 해외 출장을 가면, 이 사람들(외국 기업인)은 대개 가족 중심이라 주말에는 아무도 못 만나요. 그래서 혼자 박물관·미술관을 다니면서 보는 눈이 생긴 거예요. 저도 국내·외 화랑에서 그림도 많이 사봤지만 이 회장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지요. 
Q. 이건희 회장은 자동차 마니아로도 유명한데요. 
 
A.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교통박물관에 가면 귀한 스포츠카를 비롯해 자동차가 많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이걸 돈으로 계산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박물관 옆에 작은 건물에 가면 일반 승용차가 스무 대쯤 있어요. 아버지(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타던 차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모셔둔 거지요. 이 회장이 가끔 올라가서 봤다고 해요. 선대회장이 타시던 승용차를 수집한 것은 이 회장의 깊은 효심을 보여줍니다. 

와인·미술·자동차 일화 기억에 남아 

1982년도 세계 주니어 아마 레슬링 선수권대회에 참가한 한국 대표선수단이 귀국해 이건희 당시 대한레슬링협회 회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1982년도 세계 주니어 아마 레슬링 선수권대회에 참가한 한국 대표선수단이 귀국해 이건희 당시 대한레슬링협회 회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김 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회고하며 하고 싶었다는 말이다. “이건희 회장은 거대한 느티나무 같은 사람입니다. 느티나무가 동구 밖에서 마을의 표식이 되듯이 세계인이 삼성을 보고 한국을 알아봅니다. 이 회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휴먼 랜드마크(human landmark)’입니다. 말 그대로 아낌없이 주고 간 느티나무였습니다.”

 

김 회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성장 과정을 옆에서 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이 부회장은) 복장이나 자세를 보면 단순히 돈 많은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라 잘 교육 받은 ‘양갓집 아들’ 같다”며 “배웅할 때도 엘리베이터까지 따라 나온다. 그런 건 몸에 배는 것”이라고 말했다.

 
Q. 이재용 부회장이 최근 적극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습니다. 경영인 선배로서 조언해 준다면.
 
A. 삼성이 계속 잘됐으면 하지요. 다만 요즘 보면 변화가 워낙 빨라 그 길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사실 메모리 반도체가 뭔지도 모를 때, 이 회장이 미래를 보는 안목으로 그 길을 갔잖아요. 조심스럽게 말하면, 이재용 부회장은 아버지가 하던 걸 답습하고 유지해서는 안 돼요. 전혀 다른 분야가 되더라도 자신의 안목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또 한 번 승어부를 보여주길 바랍니다.
 
 

※ 중앙일보 11/24字 기사 바로가기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26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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