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학상 대상, 신현숙(26회) 유칼립투스 나무로부터 온 편지

by 사무처 posted Oct 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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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칼립투스* 나무로부터 온 편지

 

                                               신현숙

 

당신의 어깨를 걸치고 몇 십 년 함께 살고 있지요

잔설 앉은 귀밑머리 쓸어 올리면

민들레 뿌리로 몸살을 앓고 있는 마당이 보여요

 

초저녁 집으로 들어 온 노을을 안고

당신이 문득 내게로 시선을 던지면,

알고 있나요

나의 손이 파르르 떨고 있는 것을

 

들리지 않는 질문을 당신에게 던져 놓고

불 켜진 저녁을 봅니다

 

어릴 적 딸의 비누방울 물놀이와

당신의 발이 늙어 가는 모습 사이로

밤하늘의 별들이 사라지고,

 

시간이 익어가는 바람이

먼저 풀꽃을 뉘이면

늙은 여자의 손 같은 잎들이 마당 가득합니다

 

어제는 마당에서 비질하는 당신을 보았지요

나의 그늘로 당신이 살아 내듯

당신의 비질로 나 역시 한 계절을 살아냅니다

 

관절이 힘을 잃어 당신은 나의 마당에 누웠지요

나는 그저 당신의 울타리이지만

어느 날

내가 만든 풍경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유칼립투스 ; 호주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나무로 코알라의 먹이로 잠이 들게 하는 성분이 있다.

                       이 나무 아래에서 키스하며 고백하면 사랑이 이루어 지고 그  사랑이 오래 간다는 전설이 있다

캡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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