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26회) 사람이 먼저 사라지는 노동운동

by 사무처 posted Oct 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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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전 에스케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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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이 잔인해졌다. 사람을 위한 운동이 이렇게 무자비해도 되는가?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온다.

 

요즈음 민주노총의 현장은 너무나 비인간적이다. 노조의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택배대리점 소장에게 2차가해를 했다. 빚, 고소득, 골프 등 사실관계 조사라고 내놓은 것들은 모두 허위였다. 유족들을 또 한번 울리고 가슴을 후벼팠다. 언어의 폭력을 넘어선 테러나 다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책임의 일단을 고백하고 자숙하는 게 사람의 도리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왜 조끼를 입고 머리띠를 두르고 운동가를 떼창하면 인간의 얼굴이 없어지는가?

3주째 접어든 민주노총 화물연대 소속 파리바게뜨 배송기사들의 불법파업은 점입가경이다. 노노갈등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비노조원 배송기사, 파리바게뜨 점주를 겨냥한 무차별 파업이 벌어지고 있다. 모이면 술판이고 대체기사를 집단린치하는 일도 속출했다.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을 면제해 달라는 것도 파업의 조건으로 추가됐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통제센터를 점거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조는 법원의 퇴거명령에도 불법점거를 풀지 않고 있다. 급기야 현대제철의 고객인 현대중공업의 울산 현장에는 쇠(후판)가 모자라게 됐다. 배를 만드는 데 차질이 생기자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후판을 나르기도 했다. 파리바게뜨 가게에 빵이 없어진 것도 같은 이유다.

법의 통제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 백주에 이 땅에 생겨났다. 민주노총 출범의 산파 역할을 했던 노동운동가들조차 민주노총 지도부를 비판했다. 현재의 지도부는 비정규직 보호를 내세우지만 실제는 상위 10% 노동귀족을 대변하고 있을 뿐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깨기 위한 어떠한 양보나 타협도 거부하고 있다는 것. 사회 전 분야에서 적폐 청산을 한다고 떠들었지만 노동 분야만 예외로 해 준 현 정부의 편향된 정책이 이들의 치외법권적 행태를 조장했다고 비판했다.

“가슴이 알고 있는 이유를 머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철학자 파스칼의 말이다. 그러나 나는 싸움판이 돼 버린 한국 노동운동의 현장을 보면서 “머리는 알고 있는 이유를 가슴은 전혀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고 싶다. 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운동이 그 혜택은 누리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다. 법치는 노동자도 경영자도 아우르는 공동체를 위한 것인데 폭력으로 어찌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을까. 정부는 어디에 가 있는가? 앞서 택배대리점주의 극단적 행동에 대한 허위사실이 테러라면 불법에 대한 정부의 수수방관 역시 국민에 대한 테러나 다름없다. 내 머리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데 가슴은 답답할 뿐이다.

노동권이 있으면 경영권도 있다. 이는 회사를 굴러가게 하는 두 개의 수레바퀴다. 그런데 노동자는 많고 경영자는 적다. 정치의 계절에는 많은 표만 보인다. 보이지 않는 표는 갈라쳐서 날려 버린다. 한국의 경영권이 처한 현실이다. 고립무원이다. 경영권은 과잉진압되고 노동권은 과잉보호되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합법적 집회는 봉쇄되고 민주노총의 불법집회는 보호해 준다. 이 틈새를 이용해 민주노총이 그림자 정부로 권력의 정점에 올라탔다. 회사라는 수레는 멈출 수밖에 없다.

빵이 없으면 빵가게가 망하고 쇠가 없으면 조선회사가 망한다. 그러면 노동하는 사람이 사라진다. 얼마 전 명동의 세종호텔 앞을 지나갔다. 그 앞에는 텐트를 쳐 놓고 회사를 규탄하는 농성이 몇 년 째 이어졌었다. 그런데 조용했다. 농성도 보이지 않았고 텐트도 없어졌다. 알고 보니 회사가 없어졌다. 그러자 사람이 먼저 사라졌다.

매년 스위스에서 열리는 다보스포럼에서 세계적 석학들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 따뜻한 시장경제를 주창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노동운동에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아예 사람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노동의 현장에 사람이 돌아와야 한다. 정부도, 선거를 앞둔 정치권도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운동의 지도자들도 이를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사람이 없어진 세종호텔의 전철을 밟지 않고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다.

출처: 이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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