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코로나19 사태 장기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물가란 물가는 다 오르고 있다. 가정에선 생필품 가격과 전.월셋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고 난리고, 산업 현장에선 원료 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고 아우성이다. 사실 밥상물가는 물론이고 주택 매맷값과 전셋값, 서비스 물가, 원자재 값 등 오르지 않은 게 없다. 전파력이 무척 강한 변이바이러스 출현으로 집단면역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마당에 물가까지 끝없이 오로고 있으니 서민들의 앞날이 잘 보이지 않는다.
 
국내 밥상물가는 올여름 폭염으로 30년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농축수산물 물가는 올해 2분기에만 11.9% 뛰어올라 1991년 12.5%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가장 최근 통계인 7월 소비자물가 동향에서도 농축수산물은 1년 전보다 9.6% 오르며 상승세가 이어졌다. 특히 사과는 60.7%, 계란은 57.0%나 급등했다. 배, 포도 등 과일과 돼지고기, 국산 쇠고기, 닭고기 등 고기류, 마늘, 고춧가루, 부추, 미나리 등 각종 채소류 가격이 예외 없이 큰 폭으로 올랐다. 이러한 농축산물 가격 상승은 재료비 인상으로 이어지며 외식비도 상승 폭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또한 국제곡물과 원자재 가격에 크게 좌우되는 가공식품은 부침가루, 국수, 식용유, 빵(5.9%) 가격이 오르면서 1.9% 상승했고 석유류 가격도 19.7%나 뛰어올라 휘발유, 경유, 자동차용 LPG 등이 일제히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였다. 집세는 2017년 11월(1.4%) 이후 가장 높은 1.4%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체감 물가를 나타내는 생활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3.4% 상승해 2017년 8월(3.5%) 이후 3년 11개월 만에 가장 크게 올랐다.
 
특히 국제곡물 가격 상승은 통상 4~6개월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에 반영되는데 이미 반영된 것도 있지만 앞으로 추가 반영이 예상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곡물·유지류·육류 등 주요 식량 품목의 국제 가격을 지수화한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지난 7월 기준 123.0포인트(2014~2016년 평균 가격=100)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우리나라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는 1년 전보다 7.3% 상승했다. 이는 OECD 전체 평균(1.6%)의 4.5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38개 회원국 가운데 터키와 호주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작년 2분기에는 우리나라 식품물가 상승률이 OECD 국가 중 26위에 그쳤으나 1년 만에 상승률 순위가 23계단이나 뛰어올랐다.
 
하반기에도 식품물가 상승률이 진정되기가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치사율이 높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석달 만에 다시 등장한데다 코로나 재난지원금이 이르면 이달 말부터 지급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세계 각국의 금리가 본격적으로 오름세를 보일 경우 수입물가 상승으로 서민들의 생계는 더욱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과거에도 폭염이 길었던 해에는 식품 물가가 크게 오르긴 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이 대거 도산하고 실업자가 늘고 있는 가운데 물가가 이처럼 오르니 서민 생활이 무척 걱정된다. 소득감소와 크게 치솟은 장바구니 물가로 이미 서민들의 삶의 질이 크게 낮아져 있는 상태인데 앞으로 경기가 좋아진다 하더라도 K자형 회복으로 서민층의 삶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니 더욱 그렇다.
 
이 같은 상황이면 물가 비상이 걸릴 듯도 하다. 그러나 올해는 정부도 지자체도 온통 코로나19와 내년 대선전의 정치 이슈에 매몰돼 서민 물가는 안중에 없다. 일부 상품 가격만 오른다면 가격이 싼 대체재를 소비하면 된다. 하지만 식료품에서 가공식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품목의 물가가 무차별적으로 오르고 외식 물가와 전.월세, 유류가까지 크게 상승하고 있으니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미래를 담보하는 보험과 적금 등을 깨거나 전세나 월세가 비싼 서울을 떠나 경기도 등지로 이주하는 방법 이외에 달리 길이 없다. 이른바 '탈서울족'이 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는 생활 물가를 잡는 것이 코로나 방역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