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범(19회) 산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by 사무처 posted Dec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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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산행] 이희범 전 산자부 장관 “산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 출처: 월간 산 박정원선임기자,  2020.12.08

캠핑 등이 호텔보다 더 안전하고 편리해야… 등산은 만병통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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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범 전 산자부 장관이 도봉산 여성봉 정상에서 오봉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산을 좋아한다. 이 말은 기업 CEO나 저명인사들에게 보편적으로 통한다. 그렇다면 성공한 사람들이 왜 산을 좋아할까? 산의 어떤 면이 이들을 성공으로 이끌었을까? 
“제 고향 안동은 소백산 자락의 끝으로 청량산과 일월산, 학가산, 계명산 등 주변 사방이 산이었습니다. 대부분 시골 출신들은 경험했겠지만 저도 초등학교 때 집에서 20리, 약 8km 떨어진 거리를 매일 걸어서 통학했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은 S자로 꺾인 낙동강을 두 번 건너든지, 아니면 크고 작은 산을 세 번이나 넘어야 했지요. 당시엔 왜 그리 늑대가 많았던지, 같은 동네 학생 한 명은 등굣길에 늑대에게 물려가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군부대가 나서 늑대를 쫓아내기도 했지요. 
학교 가는 길목에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가을엔 산소에서 제사 지내는 분들이 많아 쪼그려 앉아 기다렸다가 떡을 얻어먹고 가느라 지각도 다반사였습니다. 겨울에는 나무다리를 놓아 강을 건넜는데, 하루는 겨울 장마가 들어 강 한가운데에서 다리가 끊어졌지요. 할 수 없이 옷을 훌훌 벗어 책보자기를 싸매서 머리에 이고 강물에 뛰어 내렸는데, 발이 강바닥에 닿지 않았습니다. 한 손으로 머리에 인 책보자기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개헤엄을 치며 물을 건넜죠. 강물에 얼음이 둥둥 떠내려가면서 몸에 예리한 상처를 여러 군데 내곤 했지요. 어디서 칼 맞은 상처 같았어요. 피도 많이 흘렀죠. 산이 험악해 초등학생이 다니기에는 무척 힘든 코스였지만 그때 단련된 체력이 오늘날 건강의 원천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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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범 전 장관이 일행들과 산행에 나섰다.
초등학교 매일 16km 통학이 체력의 원천

어린 시절 산과 강을 건너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등하교하면서 단련된 체력과 정신력이 오늘날 성공과 건강의 원천이라는 주장이다. 
이희범(71) 전 산자부 장관의 말이다. 그를 성공한 인물로 평가하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이공계 출신 최초 행시 수석으로 공무원에 입문한 뒤 차관과 장관까지 오르고,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서울산업대 총장, 한국무역협회 회장, 산학협동재단 이사장, 해비치사회공헌재단 이사장,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 한-아랍소사이어티 이사장Korea-Arab Society, STX에너지·중공업 총괄 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서울대 총동창회 회장과 한국정신문화재단 이사장, 경북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일흔을 훌쩍 넘긴 세월에 고향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낙향해서 안동문화를 알리고 활성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전 장관과 서울과학종합대 CEO 과정 동기생 15명이 지난 11월 14일 도봉산 여성봉을 거쳐 오봉~송추계곡으로 이어지는 산행을 함께했다. 다들 사회적으로 한 가닥 하셨던 분들로 평균 연령은 70에 육박하는 듯했다. 그래도 이 산행모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라는 구호로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매달 산을 즐긴다. 최고령 히말라야 등반을 목표로 체력을 연마하고 있다고 한다. 산행대장은 스패드코리아 강위동 대표이사 회장. 강 회장의 인도로 다들 가뿐하게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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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범 전 장관이 설악산 대청봉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맡는 조직마다 산악회 만들어 정기산행
늦가을 송추계곡은 울긋불긋 물든 단풍과 함께 많은 사람들을 산으로 유혹했다. 나름 호젓한 숲길을 선택하느라 서울에서 다소 접근거리가 먼 북한산국립공원 뒷자락 송추계곡을 선택했지만 이곳도 입추의 여지없이 등산객들로 붐볐다. 그들과 함께 한 발자국씩 도봉산 속으로 들어간다. 
이 전 장관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걷는다. 70세를 훌쩍 넘겼지만 산행체력은 아직 충분하다고 장담한다. 그는 지금 한 달에 최소 4번 산행을 한다. 그가 많은 조직에 몸담았던 만큼 가는 곳마다 산악회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서울대 총동창회 회장을 맡은 게 지난 2020년 6월이다. 바로 총동창회 산악회를 조직해서 매달 산행을 시작했다. 10월에는 90세를 넘긴 동문도 참가, 화제가 된 동시에 관악산 종주를 해서 다들 부러워하기도 했다. 
또 고향 안동의 중학교 동기들과는 30년 넘게 매주 일요일 청계산이나 관악산 등 서울 근교 산을 즐긴다. 각자 집에서 준비해 온 밥과 반찬을 정상에 모여 나눠 먹고 고향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매년 3월 18일 일요일에 시산제를 지낸다고 해서 ‘318산악회’라고 부른다. 
산자부 장관 시절에 창립한 현직 공무원과 산업부 출신 OB들의 합동 등산회는 봄·가을 두 차례 산행하는 전통을 아직 이어오고 있다. 한국생산성본부 회장을 맡았을 때도 산악회를 조직해서 정기적으로 산행했다. 얼마 전 대표로 취임한 경북문화재단은 그가 고문으로 있는 한국대학산악연맹과 공동으로 소백산에서 텐트 치고 야영을 하면서 도내 초중고생들과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전 장관은 가는 곳마다 산악회나 산과 관련한 활동을 빠지지 않고 실천한다. 이는 그가 자연에 대한 무한한 긍정효과를 믿기 때문이다. 
 
-가시는 곳마다 산악회를 조직하시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나아가 등산이 주는 긍정효과는 무엇입니까? 
 
“생산성본부 회장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생산성본부는 컨설팅 부서와 교육부서, 그리고 생산성 지수개발 등 연구를 주로 하는 부서로 나뉘어져 평소 구성원들 간에 소통이 적은 편이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산을 선택했지요. 12월 31일 전 직원들은 종무식을 마치고 청량리역에 집결했습니다. 밤 열차를 타고 새벽 태백에 도착해서 해장국으로 허기를 채운 뒤 천제단에 올라 체감온도 영하 30℃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와 싸우며 일출을 보며 새해 소망을 빌었습니다. 다시 청량리역에 도착해서 순두부와 술로 시무식을 했습니다. 조직원들은 더욱 단결했고, 그해 생산성본부 수익은 전년보다 40% 이상 올랐습니다. 이와 같이 등산은 조직원들을 단합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등산을 즐기시는 이유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공무원 초기부터 시간이 나는 대로 산을 즐겨 찾았습니다. 물론 첫째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지요. 매일 1만 보씩 걸으면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산은 만병통치약입니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거나 소화가 잘 되지 않을 때 가까운 야산이라도 다녀오면 완쾌됩니다. 둘째, 등산은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고 돈도 들지 않습니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또는 1박2일 등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에 따라 마음대로 코스를 정할 수 있습니다. 또 김밥 한 줄과 음료수 하나면 하루 종일 산을 즐길 수 있습니다. 셋째, 등산은 인원수에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골프는 4명이 모여야 하고, 대부분의 운동도 상대방이 있어야 하지만 등산은 혼자서도 가능하고 10명, 100명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산업부 과장 재직 당시 모셨던 상사 중에 ‘나홀로 산악회’ 회장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언제나 혼자서 산을 다녔습니다. 전국의 명산은 물론 히말라야, 킬리만자로도 혼자서 다녔습니다. 이사를 가던 날도 혼자서 산을 즐길 정도였지요. 
넷째, 등산은 무엇보다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운동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누군가를 넘어뜨려야 합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이 울어야 내가 웃을 수 있지요. 등산은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모두가 승자지요. 정상에서 바라보는 세상에는 고통도 없고 미움도 없습니다. 고지를 점령하고 내려와 일행들과 마시는 소주나 막걸리는 최고의 보약이고, 목욕탕으로 가서 샤워를 하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지요. 그날 밤은 호랑이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숙면을 하게 됩니다.” 
그도 나홀로 산행을 가끔 한다. 산업부 장관 시절 청계산을 나홀로 산행하면서 마찬가지로 나홀로 산행에 나선 당시 문재인 청와대 수석을 만난 것도 잘 알려진 일화다. 문재인 대통령의 <운명>이라는 책에 소개될 정도로 인연이 깊다. 
이 전 장관은 이 날도 허름한 등산복에 배낭을 메고 와 ‘수십 년간 여러 조직의 수장을 했으면 돈도 꽤 벌었을 텐데 이런 복장을 할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수십 년간 산을 다녔으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을 법했다. 소개를 부탁했다.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사우디 알 나이미 석유장관이 방한했습니다. 그는 산을 무척 좋아해서, 특히 한국의 산을 찾기 위해 1년에 몇 차례 오곤 했죠. 그는 일요일에 당시 반기문 외무장관과 북한산을 등산한 후 월요일 신라호텔에서 오찬을 했습니다. 나는 당시 배럴당 50달러를 오가는 석유값이 석유파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했고, 그는 북한산 예찬론을 펼쳤습니다. 나는 사우디 유전 하나와 우리나라 산 하나를 바꾸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도 좋다고 화답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곧 유전을 가질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죠. 그러나 그는 ‘산을 사우디에 옮기더라도 나무와 풀, 꽃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우리는 파안대소하면서 끝냈지만 그 정도였지요. OPEC 의장인 그의 기자회견으로 이후 국제유가는 잠시 안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들과 함께 여러 차례 방한해서 북한산을 오를 정도로 북한산 예찬론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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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여성봉에서 이희범 전 장관이 일행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고향이 퇴계로 대표되는 양반고장 안동입니다. 등산을 좋아하시는데 퇴계가 말한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인 줄 알았는데 유산여독서遊山如讀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등산미반이지자有登山未半而止者, 유력편이미지기취자有歷遍而未知其趣者, 필야지기산수지취必也知其山水之趣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산을 오름에 반도 오르지 못하고 그치는 자가 있고, 산을 두루 다니면서도 그 정취를 알지 못하는 자가 있다. 반드시 그 산수의 정취를 알아야만 비로소 산을 유람했다고 하리라’는 말입니다. 퇴계는 자연을 벗하며 산속을 거니는 것은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음미하며 깨우침을 얻는 것과 같다는 의미를 몸소 실천하셨지요. 인생도 ‘유산여인생인 줄 알았는데 인생여유산이더라’는 말과 같이 산에는 삶의 모든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사회의 여러 중요한 자리를 두루 경험한 그는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레저와 문화욕구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정부의 정책도 주5일 근무나 대체휴일 같이 휴일을 늘리는 데 그치지 말고 사람들이 휴일을 어떻게 보내게 할 것인가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이나 이탈리아의 산에 가면 호텔보다 캠핑이 안전할 정도로 시설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단순히 등산만 즐길 게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며 힐링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산이 국토의 70% 가까이 됩니다. 천혜의 자원인 산을 보호하고 즐기는 것이야말로 하늘이 우리에게 준 행복입니다. 나의 힘의 원천도 여기서 나왔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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