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코로나 사태 와중에 독감 백신을 맞고 숨진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제조번호가 같은 백신을 맞고 사망한 경우가 확인돼 백신 접종이 중대기로에 서게 됐다. 이에 앞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같은 제조번호 백신을 맞고 복수의 사망자가 나올 경우 해당 제조번호 백신을 폐기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보건당국은 오늘(23일) 예방접종 피해조사반 회의를 열고 복수 사망 사례가 발생한 독감 백신에 대한 사용 중단 조치를 논의하는 등 앞으로의 대응 방향을 검토하기로 했다.
 
독감 백신을 맞고 많은 접종자들이 사망한 사례는 예년에 없던 현상이다. 특히 백신 '상온 노출' 과 '백색 입자 검출'에 이어 사망 사고까지 잇따르면서 백신 안전성에 대한 국민들의 공포와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대규모 접종 예약 취소나 연기 등의 혼란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독감백신을 맞고서 죽으나, 안 맞고 독감에 걸려서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냉소적인 농담이 등장, 유료백신 접종자가 확연히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한 신고 건수는 총 25건으로 한해 평균 2건을 약간 웃돈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올해는 23일 9시 현재 벌써 29건이나 되고 있다. 발열, 구토 등 이상 반응 신고자도 예년의 2~4배 수준이다. 사망자 대부분이 접종 후 수 시간에서 사흘 사이에 숨진 것도 예년에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현상이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백신은 안전성이 입증된 것으로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면서 과도한 공포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충고한다. 다만 사람에 따라 과민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접종 후 급성 과민반응을 보일 경우 신속히 대처하고, 기저질환자는 증상이 호전될 때까지 백신 접종을 미루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이나 고령자들은 또 다른 위험에 처할 수 있으니 독감백신 주사를 맞는 게 좋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안정성 입증을 위해 독감 국가 예방접종사업을 일주일간 중단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등 전문가 집단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 시점에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보다도 사망과 백신 간의 인과관계를 신속하게 밝혀내는 것이다. 당국은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이같은 사망사고가 왜 잇따르고 있는지 명확하게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망자의 부검을 해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숨진 고교생에 대한 1차 부검을 마친 뒤에는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아 사인이 미상”이라면서 2차 부검을 해 보아야 알 수 있다고 했다. 다시 2차 부검을 한 뒤 이 학생의 사인이 백신과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것은 질병관리청이나 부검을 담당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아닌 경찰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정보공개가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정부가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인위적인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공개만이 국민의 불안을 씻어낼 수 있다. 당국은 지난 9월 백신 상온 노출 당시에도 “48만명 분을 수거했고 상온 노출 백신을 맞은 국민은 한 명도 없다"고 했지만 수천명이 상온 노출 백신을 접종한 것으로 드러났다. 백색 침전물이 발견됐을 때도 이미 1만8000명이 접종을 한 뒤에야 뒤늦게 발표를 해 빈축을 샀다. 이번에도 10대 청소년 첫 사망 사실을 사흘 뒤에야 공개했고 백신의 종류가 무엇인지는 다시 이틀 뒤에 공개했다. 사건 관련 브리핑을 고집스레 미루기도 했다.
백신에 대한 불신은 접종 기피로 이어진다. 이는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창궐하는 ‘트윈데믹’(twindemic)을 유발할 수 있다. 지금이 기로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면피성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백신 제조나 유통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 지 철저히 조사해 모든 것을 사실대로 공개해야 한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