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박현채 주필 | 다주택 고위공직자를 향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이들의 주택 매각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중앙부처는 물론, 지방자치단체 다주택 고위공직자 모두에게 주택을 매각하라고 지시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도 “민주당 총선 후보들이 2년 안에 실거주 외 주택을 처분하기로 한 서약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전제하고 “의원총회에서 이런 내용을 공유하고 신속하게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노영민 비서실장도 충북 청주 집을 이미 매각했으나 “지역구를 버리고 서울의 ‘똘똘한 한 채’를 지키려 한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서울 반포의 아파트마저 팔기로 하는 등 청와대 다주택 참모들을 향한 처분 압박도 커지고 있다.

정 총리는 특히 “고위공직자가 여러 채의 집을 갖고 있으면 어떤 정책을 내놔도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상황은 심각한 상황이고 고위 공직자들의 솔선수범이 필요한 시기인데, 사실 그 시기가 이미 지났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중앙부처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들은 3명 중 1명이 2주택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이는 국민 평균 다주택자 비중 15.6%의 2배나 된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 3월 관보를 통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재산이 공개된 중앙부처 재직자 750명 중 33.1%인 248명이 다주택자였다. 경실련에 따르면 21대 국회의원 300명중에서도 다주택 의원이 88명으로 29.3%나 된다. 청와대도 참모 41명 중 12명이 다주택자이다.
 
물론 공직자라고 해서 반드시 1주택자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정책 입안이나 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지도층 인사 상당수가 다주택자라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불리한 정책을 입안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전혀 집을 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데 어느 누가 정부정책을 신뢰하고 집값이 안정될 것으로 생각하겠는가.

다주택 고위 공직자 대다수는 매각 지시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러나 “다주택 고위 공직자가 집을 내놓는다고 부동산 가격이 잡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웃기는 일”이라고 노골적으로 반발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또한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반 헌법적 발상”이라며 “다주택자들을 집값 불안 주범으로 몰아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최고 목표로 두고 있는데 고위 공직자가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은 백번 비판받아 마땅하다. 중앙부처 차관을 지낸 한 인사는 “과거에는 고위 공직자의 경우 1가구 1주택이 기본원칙 이었다”고 술회한다. “부처 국장이 되려면 자기 명의 토지가 없어야 하고 집도 자기 명의 1채여야 했다”며 “이건 불문율 같은 거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쩌다 이렇게 다주택 공직자가 많아졌는지 모르겠다”고 개탄했다.
 
지도층 인사는 모름지기 국가나 사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그들을 존경하고 따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인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로마는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수많은 전투에 귀족들이 직접 참여해 희생되는 바람에 한 때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줄기도 했다. 그 결과,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할 수 있었다.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도덕의식은 계층간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제1, 2차 세계대전 중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영국 이튼칼리지 출신이 2,000여 명이나 전사했다. 포클랜드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당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참전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이 6·25전쟁에 참전한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신 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그러나 한국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청문회를 할 때마다 드러나는 것이지만 사회지도층 일수록 일탈이 더 심하다고 느껴진다. 부동산 투기, 불법증여 및 탈세, 병역면제, 이중국적, 전과 등 의혹도 가지가지다. ‘부의 끝은 권력이고 권력의 끝은 부‘라는 말이 젊은이들에게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이것이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한국 특권층의 면모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필자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