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은(31회) 평화의 지루함을 느끼려면

by 사무처 posted May 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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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지루함을 느끼려면

  • 출처: 페로타임즈


 
김해은 한사랑의원 원장(도봉구 의사회 부회장)
김해은 한사랑의원 원장(도봉구 의사회 부회장)

정상인의 피부 1㎠에는 천에서 만마리 정도의 세균이 살고 있다. 습하고 더운 환경에서 십만 마리까지 증식하기도 한다. 샤워를 하면 세균의 90%가 씻겨나가고 약 8시간이 경과하면 다시 원상태의 개체수로 회복된다.

오랫동안 씻지 않아도 질병이 생기지 않는 것은 피부의 피지선에서 나오는 지방산이 다른 종류의 세균들이 증식하는 것을 억제한다.

피부, 소화기관, 호흡기, 비뇨생식 기같이 바깥 환경에 노출되는 기관에는 약 200여종의 세균들이 모여서 정상 세균총(Normal Flora)을 형성한다.

이 정상 세균총은 외부로부터 병원성 세균의 침입을 막는다. 우리 몸은 이들과 균형을 유지하고 정상 세균총에 대해서 항체를 만들게 해서 면역을 획득하도록 한다.

정상세균총의 일종인 장내세균은 비타민을 합성하고 장내면역에 관여하는 면역체의 생성을 자극한다. 출산도중 무균상태의 신생아는 어머니의 산도를 지나면서 처음 세균에 노출된다.

이후 외부 환경에서 세균을 접하면서 24시간이 경과하면 정상 세균총이 자리를 잡는다. 생후 일주일이 지나면 일생을 함께할 모든 정상 세균총이 제자리를 잡는다.

반면에 외부환경에 노출되지 않는 내부기관, 신경계, 혈액, 근육 등 폐쇄된 공간에 있는 기관들은 절대 무균상태를 유지하여야 한다. 정상 세균총이라 할지라도 이들 기관에서 균이 증식하면 숙주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한다.

숙주에게 무해한 균일지라도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금기의 선을 넘어 내부 깊숙이 침입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항생제를 남용하게 되면 정상 세균총의 세균이 죽어 분포가 달라지며 혼돈 속에서 초대하지 않은 병원성 세균들이나 곰팡이에 노출되어 병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균형 속에서 조화를 이룬 숲이나 호수 같은 자연환경을 보고 평화를 느낀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공동묘지나 생명이 살지 못하는 달 표면을 보고 평화롭다 말하지 않는다. 평화는 전쟁의 반대 개념이 아니다. 끝없는 전쟁 속에서 나의 상대와 균형을 이루면서 내부의 중요한 부분을 지켜내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숙주에 해당하는 이선균의 가족은 기생하는 부류에게 “선을 넘지 마라”고 경고한다.

반대로송강호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과도하게 억압하는 숙주의 행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횡포이다. 숙주와 기생 체의 절묘한 균형이 평화를 유지하는 열쇠였다. 적당한 도전은 우리를 항상 외부환경에 민감한 상태로 유지하고 큰 도전이 다가올 때 혼란 없이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을 배양시킨다.

‘로마 쇠망사’를 저술한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가 망한 것은 사치나 게르만족의 침입 때문이 아니라 로마가 상무(尙武)의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했다. 전쟁을 준비하는 자만이 평화의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로마는 그들의 장점인 항상 전쟁에 대비하는 능력을 상실해 버렸을 때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스스로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을 개인은 면역력, 국가는 국력이라 하고 성숙된 시민의식, 과학, 경제력, 국방력에 해당하는 복합적 시스템이다.

우리는 자연계의 한 개체로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가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하건 간에 외부의 수많은 적들과 끊임없이 조우하고 있다. 늘 자각하고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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