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을 덮으며

by sabong posted Jan 01,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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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을 덮으며

↑ 해바라기(꽃말: 기다림) - 백만송이의 해바라기를 드립니다.(강원도 태백 해바라기 축제)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를 기억하세요?(도덕경 1장)
넉 달 전에 도덕경을 펼치면서 처음 읽었던 도덕경의 첫 구절 말입니다.
도를 말로 설명하면 그건 이미 진짜 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말장난이지만 왜 말이 힘드는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지난 토요일은 가족에게 서비스(봉사)하는 날이라
현대 서비스(A/S) 센터 옆에 있는 스테이크 집에 갔었는데 
서비스(친절)가 정말 엉망이더군요.
그래도 비싼 커피를 서비스(공짜)로 주는 게 신통했지요.
어쨋거나 외식하고 나면 마누라 서비스(애교)가 짱이 되는 게 신기해요.

도덕경은 마지막 장에서도 역시 말에 관한 얘기로 끝을 맺습니다.
신언불미(信言不美) 미언불신(美言不信)이라고 했습니다.(도덕경 81장)
믿을 수 있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고,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은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입만 번지르한 사람은 진실하기 힘드니 믿지 말라고 하잖아요.

이제 노자 선생님과도 작별을 할 때가 되었네요.
스승님,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자네의 말이 달콤하게 들리는 것을 보니 진심이 아닌 것 같구나.
헤어지는 마당에 자꾸 궤변을 늘어놓으실 겁니까?
농담도 못하겠네. 그래, 넉달 동안 도덕경을 읽고 얼마나 도를 깨쳤느냐?
스승님도 못 깨달은 도를 어찌 제가 넉 달만에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 뭣하러 그렇게 열심히 도덕경을 읽었느냐?
도란 인간이 깨달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잖아요.
그걸 알았다면 제법 많은 걸 깨달았구나.
깨달을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열심히 도를 닦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거기까지 생각했다면 정말 크게 깨달았구나. 됐다! 이제 하산하거라.
네. 그러잖아도 짐을 다 싸두었습니다.
하산 하면 뭘할 생각이냐?
말로 하는 것 말고 말이 덜 필요한 인문학을 해보려고요.
그게 어떤 인문학인데?
인문학적 예술 말입니다. 음악, 미술, 서예... 뭐 그런 건 말이 덜 필요하잖아요.
나도 해보고 싶었던 건데. 열심히 잘 해보도록 해라.
네, 스승님!

어렵고도 어렵다는 도덕경을 들고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도의 길을
묵묵히 함께 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사봉의 아침편지가 도덕경을 덮고 긴 여름방학에 들어갑니다.
저는 아프리카의 지붕, 킬리만자로와 생명의 놀이터, 세렝게티
그리고 상선약수(上善若水)의 현장 빅토리아 폭포를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더운 여름 행복하게 보내시고 8월 20일에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