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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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깝고도 먼 일본, 그리고 가슴 아픈 이야기

                                                                                              구 자 문

   일본 수상인 아베 신조와 그 내각의 극우적인 성향이 한국과 중국을 주축으로 한 동북아의 불안을 조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한국계라고 할 만한 근거가 적지 않다. 물론 한국인인 필자의 경우에도 700여년 전 몽골족의 흥기를 피해 이주해온 북중국 장수가 선조로 되어있으니, 수백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며 누가 중국계이고 한국계인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냥 재미로 자료를 뒤져보았더니,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는 일본의 제56, 57대 총리대신을 역임했으며, 그의 친동생인 사토 에이사쿠도 제61, 62, 63대 총리대신이었다. 그런데 사토 에이사쿠는 자신이 한국출신임을 숨기려 하지 않았고, 임진왜란 이후인 300여년 전 건너간 일족임을 언급했음이 임진왜란때 끌려간 유명한 도공 심수관의 14세손과의 대화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아베총리의 부친인 아베 신따로는 야마구치현에서 11차례 중의원을 역임하고 1980년대 일본 외무상을 역임했다. 2006106일자 슈칸아사히는 그가 오래전 한반도 발해지역에서 건너온 한국인의 후손임을 밝히고 있었음을 이 집안의 오랜 가정부였던 분의 증언을 통해 기사화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그토록 미워하는 일본인들도 따지고 보면 우리 한국인과 혈연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민족임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서로 미워하고 싸워가며 살아온 것이다.

 

   오늘은 일본과의 소소한듯하면서도 가슴 아픈 얘기들을 해보고자 한다. 필자가 포항에 와서 알게 된 한분은 부산에서 태어났는데, 부친이 일본에서 태어나 동경제대까지 졸업하고 교사로 재직하다가 해방된 조국을 크게 꿈꾸며 약혼녀도 놓아둔 채 잠시 귀국했는데, 한일간의 관계악화 등으로 일본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부산에 눌러 살게 되었다고 했다. 부산에는 잠시 들렀다가 돌아가지 못한, 한국말이 서툰 재일교포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분의 부친은 조부의 고향인 경북 의성의 한 규수와 결혼하여 아들 둘, 딸 둘을 두었는데, 한이 맺혀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녀들 교육에 열심이었다고 했다. 이제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자식들은 발전된 한국 땅에 살고 있지만, 주위에 이 같은 슬픈 사연을 지닌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재일학도위용군의 이야기이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642명의 재일교포학생들이 조국을 위해 전선에 뛰어 들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겨우 3일 훈련을 받고 유엔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한 이들은 그 후 323명이 3.1대대로 창설되고, 200명이 한국군에 편입되고, 30명은 육군종합학교에 입교하여 초급장교가 되었다. 이들은 원산, 혜산진, 백마고지 등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135명이 전사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242명이 일본으로 되돌아가고자 했으나, 일본정부는 이들의 입국을 거부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가족들과 생이별하게 되고, 한국말이 서툰 이들은 한국에서 생계를 잇기 어려운 삶을 이어 갔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 이외에도 한일 사이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독도문제 등 해결되지 못한 사안들이 많이 있다. 더구나 요즈음은 일부 극우단체들이 한국인 물러가라는 격한 데모까지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고 가슴이 아프다.

 

   필자는 1980년대부터 일본에 자주 가보았고, 1월에도 들른바 있다. 그러나 입국수속시 좀 깐깐하다는 것 이외에는 크게 어려움이나 차별을 느껴본 적은 없다. 지금은 한국인과 일본인간에 개인 대 개인으로서 어떠한 감정이나 콤플렉스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일본에서도 재일동포를 포함한 외국인 거주자들이 예전보다 나은 대우를 받고 있음도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의 정부며 사회조직을 떠받치는 일부 남아 있는 군국주의적인 이념들이다.

 

   동아시아는 왜 유럽의 경우같이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는가? 하지만 생각해보면,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누구도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를 긍정적으로만 장담하기는 힘들 것이다. 남의 잘못을 고쳐줌도 중요하겠지만, 우리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서는 경제, 사회, 문화, 정치, 외교 등에 걸친 총체적인 힘을 키워감이 더욱 중요한 포석일 것 같다.

 

201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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