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자의 민낯
 ↑ 나무 - 원래 저런 모양으로 자라고 싶었을까? 정원사 짓이 맞지?
공자가 2미터 넘는 키에 기골이 장대하였다는 사실을 아세요? 아버지가 기골이 장대한 말단 군인이었거든요. 공자의 아버지는 첫 부인에게서 딸만 아홉을 낳자 첩을 하나 얻어 아들을 낳았는데 다리를 못쓰는 장애인이었다네요. 다시 20세 되는 여인, 안(顔)씨를 얻었는데 아마도 천민이었던 것 같습니다. 안씨와 사이에 낳은 아들이 훗날 공자로 불리게 되는 공구(孔丘)였습니다. 공구가 공자의 어릴 때 이름인 것은 아시죠? 공구는 3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20세에 노나라의 말단 관리가 된 공구는 55세에 제법 높은 벼슬인 대사후 직위에 오릅니다. 그러나 1년 만에 벼슬을 버리고 노나라를 떠나 유랑길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 춘추전국시대의 왕들은 저마다 강력한 왕국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왕권을 뒷받침할 통치철학이 필요했지요. 공자는 철학을 팔기 위해 동가숙 서가식하며 70여 명의 제후를 만납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받아들이기는커녕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사기에 그렇게 돌아다니던 공자의 모습을 '상가집 개'와 같다고 한 것을 보면 얼마나 고생을 하며 떠돌아다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3년을 떠돌아다니던 공자는 말년에 노나라로 돌아가 73세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공자의 철학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인간은 모름지기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한다. 왕은 나라의 부모이니 왕에게도 충성을 해야한다. 부모에게 효도하듯 왕에게 충성한다는데 싫어할 왕이 있었을까요? 그러나 때가 아니었던 모양이라 공자는 입만 아팠습니다. 논어는 그가 쓴 것이 아니라 훗날 그의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모아 편찬한 것입니다. 공자의 유교는 훗날 중원을 통일한 한나라에 가서야 빛을 보게 됩니다. 그 후 중국 뿐만 아니라 주변 아시아 국가들까지 공자를 받들게 됩니다. 우리의 유전자 속에도 공자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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