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주소체계 변경
얼마 전 집주소 변경에 관한 통지서가 배달되었다. 2011년 7월 '도로명 주소' 체계 전면시행을 앞두고, 새로 바뀔 주소와 함께 통지서를 보내온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의견을 보내라고 하지만 얼떨떨한 가운데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정부에서 하라는대로 따르다보면 익숙해지겠지라는 긍정적이면서도 좀 체념적인 생각과 함께, 지금까지 좀 불편하다하더라도 익숙하게 잘 써오고 있는 것을 왜 바꾸나 하는 의구심도 크다. 그렇다면 지난 수십년간 써오던 우편번호도 폐지되는 것인지, 동이름과 아파트이름을 한시적으로 맨 끝 가로 안에 표시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새롭게 바꾸어버리는 것이 꼭 편리한 것인지 궁금증이 가시지 않는다.
도로명 위주의 주소 개편은 종래의 지번(地番)주소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행정동과 법정동이 맞지 않는데다, 주소의 연속성이 결여되고, 특정지점을 표현하기 어려워 위치와 경로 안내기능이 떨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이라고 한다. 그에 비해 새로운 도로명 주소는 길을 찾기 쉽고, 물류비가 절감되며, 응급상황 발생시 빠른 대처가 가능한데다, 국제적 주소체계 사용으로 국가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다는 게 행정안전부의 설명이다.
관련 싸이트를 보면, 많은 이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왜 신경을 쓰느냐. 이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고 그 비용이 매우 클 것이다. 역사성을 가진 동네명칭이나 골목길 이름들이 사라진다. 우리나라 마을들은 미국 등의 것들과는 달리 무체계적으로 성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도로명 중심의 주소체계가 맞지 않을뿐더러, 이미 동단위 그리고 아파트단위로 커뮤니티가 알려지고 안정화되었는데 왜 이것을 흩뜨려 놓느냐 등 반발이 많다.
정부는 주소체계를 바꿈으로 인해 외국인의 길찾기 비용, 택배업체의 배달시간과 운행비 같은 물류비 등 사회경제적 비용 절감효과가 연간 4조 3,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하지만 필자로서는 이러한 발생이익(Benefit)뿐만 아니라 발생비용(Cost)에도 관심이 없을 수 없으며, 이 두 가지가 좀 더 구체적으로 산출비교 되어야 한다고 본다. 더구나 근래에는 핸드폰에도 내장된 네비게이션(Navigation) 기능으로 인해 주소찾기 효율성이 훨씬 높아진 상황에서 그만한 경비절감효과가 발생 할 것인지 의문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신문지상에서 다른 분들이 언급하는바와 같이 도로명 주소로 되어있다. 하지만 이 도로명 주소에 동네이름과 우편번호(Zip Code)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이 모두가 동원되면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도 지도책 하나만 있으면 길찾고 집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예를 들어 로스앤젤리스 북부에 위치한 훗힐블바드(Foothill Blvd.)는 유명하기도 하지만 매우 길어서 몇 개의 카운티와 수십개의 도시와 마을을 지나고 있다. 지도책 페이지들을 2-3분 살피다보면, 2500 West Foothill Blvd.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는 있지만, 이것만으로 집을 찾는 경우는 드물고 함께 있는 마을이름과 우편번호를 함께 보면서 좀 더 쉽게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잘 알려진 큰길 이외의 대부분 길들은 동네사람들 이외에는 잘 모르는 게 당연하므로...
미국 메트로폴리탄 정부의 도시계획관이었고 현재 국내대학 관련 분야 교수인 필자로서 정부의 주소체계 변경 및 시행에 대해 우려 섞인 의견이 없을 수 없다. 이왕 만들어 놓았으니 새주소체계를 과거의 동네이름 및 우편번호와 병용한다면 그나마 찬성, 새주소체계로만 간다면 반대. 새주소 체계 다 무시하고 과거체계를 약간만 보완해 쓰자고 한다고 해도 찬성. 이 사업을 위해서 정부가 이미 많은 예산을 소모했지만, 추진을 위해서는 앞으로 더욱 많은 비용이 들것이 예상되기에 필자로서도 큰 딜레마 속에 어정쩡한 의견을 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2013년 6월 15일, 한동대 구 자 문
(ps 요즈음 다시 이슈가 되기에 2년전 써놓았던 것 약간만 수정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