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으며, 지난해를 되새기며

by ckklein posted Jan 01,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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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을 보내고 임진년 새해 2012년을 맞이하게 된다. 지난 일년 동안 필자 개인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국가적으로도 큰 어려움과 큰 사건들이 연이어졌었다.

그동안 크게 내색하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부친께서 춘추 91세에 돌아가신 충격이 컸다고 생각된다. 평소 건강하셔서 100세 장수하실거라고 믿고들 있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상경하는 차안에서도 무얼 어찌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주변 친지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못했지만, 그 슬픔으로부터 벗어나 침착함을 되찾기에 반년도 넘는 세월이 흐른듯하다.

개인생활에 영향은 물론 국가적으로 큰 어려움을 준 것은 2008년부터 지속되어온 경제불황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제자들, 88만원세대로 불리우는 청년층의 낮은 임금과 높은 실업률. 수출은 잘된다니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저조한 내수경기와 남유럽국가들로부터 시작된 재정위기의 영향이 얼마나 심하게 불어 닥칠지에 대한 조바심 속에 일년을 보낸 것 같다.

게다가 연말에 가까우며 북한의 김정일 사망소식을 접했는데, 다양한 전문가들의 논평에 앞서 일반시민들로서는 무슨 난리라도 일어나는 것이 아닌지 큰 근심 속에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직은 모든 게 평온해 보이고 우리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와 있지만, 마음 한구석의 불안감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필자의 아버지는 5형제이셨는데, 장남이 1905년생이고, 삼남인 필자의 아버지가 1921년생, 그리고 막내인 5남이 1928년생이다. 장남인 큰아버지께서는 해방도 되기 전 돌아가셨고, 둘째 큰아버지는 20년전, 삼남인 아버지께서도 반년전 돌아가셔서, 이제는 작은아버지 두 분이 생존해계신다.

새삼스럽게 아버지 형제들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이 세대가 우리 한국 근대사의 격동의 세월들을 모두 겪어낸 분들이라는 점을 다시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도 가족사와 함께 한국의 다사다난한 역사들을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많이 들려주셨는데, 제대로 경청하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큰아버지는 조선식산은행에 다니시던 전도 망망한 젊은이였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오려진 사진 한 장만이 전해질 뿐이다. 다른 형제들은 젊은 나이인 일제말기에 여러 사연 속에 만주 등으로 도망도 다녔지만, 해방 후에는 고학으로 대학도 다니고 국가고시에도 응시하는 등 꿈들이 컸었는데, 6.25를 겪으며 피난지인 고향 바닷가 마을의 치열한 사상논쟁 속에서 또한 퇴각하는 인민군들이 불태워 죽이려 수백명 가둬놓은 산림창고에서 죽다 살아나신 분들이셨다.          

아버지 형제들은 전쟁이 끝난 후 상경치 아니하시고 고향에 머물며 농사도 짓고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하셨는데, 가난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고 싶다는 의지 하나로 그 어려운 5-60년대 그리고 70년대를 본인은 굶으면서도 자식교육에 매진하셨다. 이분들은 일어서적은 물론이지만 어려운 옛한문서적들을 읽어내던 마지막 세대라고 생각된다. 엄동설한에 강물의 얼음을 깨고 몸을 담그고 찬물로 냉수욕을 하던 마지막 세대라고 생각된다.  

아버지 형제들은 고향인 시골마을에서 그 당시 불어닥친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잘 살아보자는 운동에도 열심이셨다. 암담한 일제시대를 거쳐 동족상잔의 6.25를 겪으며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던 우리 민족이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을 매우 기뻐하시던 부모님이셨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데모를 하고 감옥에도 가고 군대도 끌려가는 것을 보시며 가슴아파하시던 분들이기도 하셨다. 동네분들 모두다 선거유세 막걸리에 취해도 ‘술은 건강에 해롭다’는 한마디로 막걸리 한잔 공술을 들지 않으시던 분들이셨다.

지금 생각하면 필자는 부모님의 생각과 생활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경제적인 난국이라면서도 절약이라고는 모르는, 명품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을 보고 무어라고 말씀하실까? 비슷한 동년배인 북한의 김일성이 죽고, 이번에는 그 아들 김정일이 죽고, 그 손자인 29세 김정은이 그 권좌를 이어받는 것을 보시고 무어라고 말씀하실까?

2011년 마지막 주를 보내며, 필자는 보름 예정으로 미국에 와있다. 여름과는 달리 기온이 좀 낮기는 하지만 초목이 푸르른 로스앤젤리스이다. 경제한파의 영향으로 연말연시의 미국경기도 어느 때와는 다르다. 거리에 크리스마스 장식도 줄어들고 음악소리도 드믄 편이다. 자주 들르는 ‘브라질리언 스테이크 하우스’도 작년과는 달리 점심시간에도 한가한 편이다.

지난 1년간 미국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기도 했다지만, 남유럽발 재정위기 여파로 내년을 비롯해 당분간 미국경제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경제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어떠한 정책기조가 내수도 살리고 물가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호조를 보이던 중국경제의 침체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북한에 설마 큰일이 벌어질 리는 없겠지 무방비로 안심하고 있는데, 정말 큰일이 벌어지면 어찌 될 것인가?  
    
아버지께서 생존해 계신다 해도 큰 해답을 주시지는 못하실 것 같다. 하지만, 성실/인내/절약, 돈이 다가 아니다. 너무 욕심을 부리거나 출세에 목을 매지 말아라.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을 차려야 산다. 여전히 이런 말씀들만을 해주실 것 같다. 2012년 새해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 예측할 게제는 못되지만, 어떠한 상황이 닥쳐와도 이 같은 선친의 말씀을 잘 견지해가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2011년 12월 28일
24회 구 자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