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잘 나 보일 때

by sabong posted Jan 01,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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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잘 나 보일 때 


↑ 아내 - 친구들이 나보다 잘 나 보일 땐 훌쩍 산으로 떠난다. 아내와 함께... (태백산)

여기 저기서 송년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한참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송년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늘 우울합니다.
비어 있는 경노석을 흘끔 보며 지하철 손잡이에 매달려 눈을 감습니다.
'제비꽃이 어찌 장미꽃을 부러워하랴.'
그리고 정희성님의 시, '민지의 꽃'을 떠 올려봅니다.

<민지의 꽃>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 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 비비고 일어나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모두 나보다 훌륭하게 보이는 날
이날은 꽃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하고 논다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 '아내를 위하여'를 이렇게 살짝 비틀어 봅니다.

친구들이 모두 나보다 훌륭해보이는 날
이날은 배낭을 꾸려 아내와 함께 훌쩍 산으로 떠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산으로 가는 날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이러다가 아예 출가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임진년 시작하기 전에 다시 마음을 추스려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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