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지진과 쓰나미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마을들이 파괴되었다. 말로만 듣던 쓰나미의 무서움을 여러 화면을 통해 직접 접할 수 있음으로 인해 사람들의 쇼크가 더 컸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지진이며 쓰나미가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일어났고 희생도 컸었지만, 그 장면들이 이렇게 방송이나 개인의 카메라를 통해서 찍혀졌던 적은 별로 없었다.
어떻게 해일이 저렇게 마을을 덥칠 수 있으며, 집들이 그렇게 쉽게 부서지고 떠내려가는지... 사망자 및 실종자수가 1만명에서 11만명에 이를 수 있으며 아직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도 없다니 안타까움 뿐이다. 우리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구조대와 성금이 답지하고는 있지만 이들의 가슴을 얼마나 어루만져 줄 수 있을지...
이번 지진과 쓰나미에서 더욱 걱정이 되는 것은 이미 미디어를 통해 잘 알려진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유출이다. 일본정부로서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체르노빌원전사고’의 여파를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한국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리는 없겠지만, 원전 주변의 일본인들을 생각할 때 안타까움이 큰 것이고, 2차세계대전 당시의 참혹하던 원자탄과 그 방사능의 피해가 또 다른 형태로 인간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음에 놀라움과 두려움이 큰 것이다. 원자력이 크린에너지 내지 대체에너지로서 활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로서는 안타까움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많은 이들의 의로운 죽음과 행동이 보도되고 있다. 쓰나미가 몰려오니 피신하라고 마을사람들에게 지속적인 육성방송을 하다 죽어간 25세의 여사무원, 죽음을 무릅쓰고 원전에 남아 조치를 취하고 있던 50명의 전문가들. 그후 투입된 400여명의 도쿄전력 직원, 자위대원, 경찰들... 이들은 방사능 허용 피폭량 상한선을 넘어서 탈진하고 쓰러지면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이러한 의로운 죽음들이 인류사 곳곳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911 쌍둥이 빌딩 폭발전 죽음을 무릅쓰고 빌딩에 오르다 산화한 수백명에 이르는 뉴욕소방관들... 이러한 희생이 백마고지 전투 등 우리 한국전쟁에서도, 짜빈동전투 등 월남전에서도 혁혁한 전공으로 빛을 발했음을 우리는 듣고 보아왔었다.
우리 한국에서 정부를 위시하여 많은 사람들이 성금보내기에 동참하고 있다. 포스코를 비롯한 많은 기업들, 젊은 연예인들, 그리고 수 많은 시민들, 심지어 과거 정신대로 끌려갔던 생존 할머니들도 성금을 보내고 있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도 교수와 학생들 수천명이 운동장에 모여 흰 바탕에 붉은색 하트의 카드섹션으로 ‘일본인들 힘내세요’라는 동영상을 만들에 유튜브를 통해 일본에 보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인도적인 차원에서도, 두 나라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일본인들의 모습, 가족들이 죽고 행방불명이 된 상황에서도 무서울 정도의 침착함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생존자들이 영하의 날씨에 노숙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침착한 모습으로 행방을 모르는 가족을 찾아 나서거나 조용히 구호품을 기다리고 있다. AP통신은 대혼란 속에서도 약탈과 절도가 거의 없고 화내거나 불친절한 일본인을 볼 수 없는 것에 서양기자들이 놀라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인간의 속마음은 다 같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가족을 잃고 집을 잃은 슬픔에 울고 있을 것인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가슴을 조이며 원전 방사능을 걱정하고 있을까? 한국인 누구나처럼 좀 격정적인 성격의 나도 텔레비전화면을 보면서 안타까워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일본인들, 우리 한국인과 인종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가장 가까운 민족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의 뼈저린 역사와 함께 이들을 미워함도 사실이다. 물론 개인을 미워한다기보다는 그 나라, 군군국주의 일본의 만행을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한국인들은 이러한 미움을 넘어서서 인류애적인 사랑으로 이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