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접경 러시아 땅에 위치한 맑고 깊은 호수 ‘바이칼’에 대한 여행기를 여러 차례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지도상에서 바이칼은 길쭉하고 조그맣게 보이지만, 바이칼은 2천 5백만년전 형성된 오래된 호수로서 길이 636km, 폭 27-80km의 한반도의 1/3이 넘는 광대한 호수이다.
바이칼은 깊이가 1,400미터나 되며 전세계 담수량의 1/5 정도를 담고 있는데, 이 호수의 이례적임은 물의 깨끗함 뿐만 아니라 40m에 이르는 투명도에 있다. 이는 다른 호수들 보다 10배나 높은 수치라고 한다. 바이칼에는 깨끗하고 맑은 물이 끊임없이 유입 및 유출이 되며, 다양한 동식물들의 보고가 되고 있다.
포항에 살면서 바이칼이라고 부르며 칭송하던 호수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사는 양덕동과 그리 멀지 않은 ‘천마산’ 아래의 ‘천마지’이다. 포항에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던 15년전 언젠가, 인근에 직장이 있기에 점심 후 산길을 걷고 있는데, 우거진 송림 사이로 갑자기 파랗게 펼쳐지는 것, 그것은 아름다운 바이칼이었다. 배후에는 해발 95미터의 수목 우거진 천마산이 있고, 주변은 송림과 갈대숲이 번갈아 무성함을 이룬 곳인데, 이러한 장소에 이렇게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니 참으로 감탄스러운 일이었다.
한동안 자주 이곳을 찾았었다. 따뜻한 가을 햇살에 투명하게 빛나는 푸른 물색이 마음에 들었고, 송림 우거진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가 마음에 들었고, 아무도 찾지 적막함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후 놀라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 물에는 물고기가 살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호숫물을 병에 담고 물고기를 넣어 두면 두어시간후 죽게 되고 껍질도 하얗게 벗겨진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이러한 물고기 실험을 직접 해보았다는 화학을 전공한 한 동료의 이야기로는, 이 호수 상류 쪽에 오랫동안 경작되던 대규모의 포도밭터가 있는데, 경작시 사용했던 농약잔존물들이 흘러 남겨져 이곳을 죽음의 호수로 변화시킨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었다.
포항의 역사를 읽다보니, 20세기 초반 일본인들이 포항에 거주하게 되면서 포항 각지에 많은 포도밭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곳 천마산 인근, 현재의 한동대 부지도 계단식의 포도밭터로서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 있다. 물론 천마지의 오염을 포도경작만으로만 돌릴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누구도 토양오염이며 수질오염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 터이니까...
이 아름다운 호수가 죽음의 호수라는 것이 놀라움이었고, 또한 이곳 천마지가 6.25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아군과 적군으로 12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던 전장터라는 것도 놀라움이었다. 몇 년전 이곳에서 전사자 유골발군단의 작업모습을 보고 절친한 미국인 가족들이 무엇하는 것이냐고 나에게 물어온적도 있었다.
그후 나도 천마지를 잊었고, 한동안의 세월이 흘렀다. 작년쯤 어떤 계기로 천마지에 다녀온 적이 있다. 주변에 영일만항이 있고 배후단지 공사가 진행되는 관계로 그 근처까지도 트럭이 오가며 공장들이 건설되는데, 이 천마산과 천마지 부근은 예나제나 무성한 수목과 푸른 물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호수가 북측 물가에 텐트가 쳐져있고 몇몇 낚시꾼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제 이곳에서 물고기가 살고 있고 잡힌다는 말이다. 인근에 물어보니 물고기가 제법 잡힌다는 대답이다. 지난 10여년의 세월동안 자연적으로 수질이 정화되어 원상태를 회복했다는 말이다.
이 천마지가 바이칼이 그러한 것처럼, 맑은 물에 다양한 동식물의 보고로 변화되었으면 좋겠다. 도심과 그리 멀지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인적이 드믄 이곳은 아직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포항 시가지가 넓어지고 영일만항 배후산업단지가 크게 개발된다 하더라도, 이 아름다운 천마산과 천마지가 포항의 상징적인 생태단지로 보전되었으면 좋겠다.
24회 구 자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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