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의 시대를 넘는 의사 결정
저주의 시대에서 지혜로운 의사 결정으로
지금 우리의 시대는 어느 누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타협과 소통이 없는 막무가내 식 사회에 살고 있다. 국가의 지도자나, 교수, 시민단체, 정당, 기업 어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자기 주장에만 매달려 있다.
소통과 참여, 통합, 이해, 민주사회를 바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절차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고 막나가는 천박한 시대인 것이다. 바로 우리 사회 의사 결정 과정이 고장 난 것이다. 대증적인 요법으로는 불가능한 프레임 전체를 바꿔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6·15 남북 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 강연에서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지 말자.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살아나고 있고, 빈부 격차가 사상 최악으로 심해졌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이 돼 자유·서민경제·남북관계를 지키는 데 모두 들고 일어나야 한다. 피 맺힌 심정으로 말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惡)의 편”이라고 발언했다.
김동길 명예교수는 ‘6.25에 나는 통곡합니다' 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남한에서 북으로 간 달러가 북의 핵무기 개발을 도운 것이라면 그 돈을 가져다 준 사람은 마땅히 투신자살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목한 것은 저주에 가깝다. 경제 회복, 민주 사회 이전에 언어의 웰빙이 시급히 요청된다.
그렇지 않아도 극심한 경제난으로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많은 국민들에게 외치는 소리인가? 2040년이 되면 정당이 없어질 것이라는 미래학자의 예측이 하루속히 오기만을 기다리는 심정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이란 끝없는 등장하게 되는 의사를 올바로 결정해야 하는 과정이다.
개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 잠자리 들기까지 의사 결정을 해야 하며, 기업들은 개인측면보다 한 단계 진일보하여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좀 더 치밀하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자본시장에서 부자가 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올바른 결정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부자들은 주식 값이 쌀 때 리스크를 감당하면서도 기회를 쟁취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주식 값이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안전하다는 생각으로 주식을 사지 않은가? 또 기업 가치가 오르는 기업을 주목하기 보다는 가격이 많이 떨어진 싸구려 기업에 관심을 가지기에 보통 사람들은 늘 부자들의 뒷북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업 CEO의 경우도 잘못된 결정을 하여 기업을 치명적인 위기로 몰아넣게 되는 사례가 많다. 쌍용 그룹의 경우 재벌 2세란 사람이 자신의 취미인 자동차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자동차 산업에 잘못 들어와 결국 기업이 공중 분해되는 수치를 겪게 되었다.
인구 500만 여명의 핀란드의 ‘노키아’는 장기적인 안목과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제지, 펄프, PC 등 기존 주력 사업의 대부분을 매각하고 유럽 휴대폰 2위 업체인 영국의 ‘테크노 폰’을 인수하면서 전 세계의 판매거점을 확보하는 등 글로벌화를 추진한 것이다. 휴대폰 사업시작 8년 만에 휴대폰 업계 1위에 오르는 성공을 하였다 반면 일본의 ‘코닥’은 당시 카메라 업계의 최강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제품의 등장으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던 필름, 카메라 시장이 잠식되고 있었음에도 기존 사업의 질적 향상에만 몰두하였다. 디지털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코닥은 뉴 패러다임인 디지털화에 대한 준비가 소홀했고 소극적인 대응해 결국 올림푸스에게 시장을 내 주는 실패한 기업이 된 것이다.
국가의 올바른 의사 결정은 어떠한가?
국가 지도자들의 의사 결정 여하에 따라서 국가의 운명이 바꿔진다. 2차 세계 대전 후 독립한 국가 중에서 오늘 날 발전을 이룬 나라는 우리나라와 대만 정도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6,25 전란으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된 지금 아프리카의 최빈국 수준에서 세계 13위 국가로 된 것은 국가 지도자의 올바른 의사 결정, 국민들의 정직과 열정 그리고 열심히 일한 결과가 아닐까?
의사결정은 미래와 꿈 그리고 성장과 발전을 위한 중요한 요소이다. 더욱이 우리가 피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사 결정의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의사 결정이라는 과정을 너무 소홀히 대접한 것이 아닐까? 9.11 테러나 최근의 세계 금융위기, 우리나라의 보수진보의 이념 갈등, 대학 입시의 난맥상, 북한의 미사일 위협, 국회의 파행적인 운행 등 모두 잘못된 의사 결정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행복하지 않고, 미래가 불투명하게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개인이나 사회의 집단적 의사의 물꼬가 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이 자신의 오래된 타성과 선입관으로 자기 스타일을 밀어 붙이거나,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참여자들의 진정성과 참여를 이끌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할지라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의사 결정을 함에 있어 거쳐야 할 몇 가지 원칙과 올바른 의사결정의 비법을 찾아본다.
의사 결정의 첫 번째 단계는 ‘오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모든 것에는 때와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고대의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은 앞 머리카락만 있고 뒤쪽은 대머리로 반들반들하여 앞으로 오는 기회를 잡지 않으면 결코 뒤에서는 잡을 수 없다고 한다.
변화 속에 기회가 있다. change의 g 글자를 c로 바꾸어 Chance로 만들어야 한다.
둘째 단계는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해야 한다.’
건물 한 구석에 깨진 유리창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심코 지저분한 물건들을 그곳에 던지다 보면 건물 전체가 못쓰게 된다는 소위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명심하여 최선을 다하면서도 사소한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셋째, ‘최적의 목적과 목표를 가져야 한다.’
모든 일에는 역경과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분명한 목표 의식이 있다면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만 목표가 없다면 어려운 상황만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두꺼운 구름이 덥혀도 태양 빛은 뚫을 수 있다.
넷째, ‘구체적인 실행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선택을 할 수 있는 복수의 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로는 ‘선택의 올바른 기준으로 반드시 지키는 각오와 함께 끈질긴 경영으로 나아가는 실행 정신이다.’
올바른 의사 결정이 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자발적이고 긍정적인 참여를 유도하라.
지난 정권을 참여 정부라고 한다. 서민의 어려움과 부조리를 타파하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끌어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정치의 아마추어리즘을 벗어 버리지 못한 채 부익부빈익빈의 고착, 보수와 진보, 부자와 빈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나이든 사람과 어린 사람 들 간의 갈등을 부축인 격이 된 것이다. 늘 권력이 가진 자들의 축제에서 벗어나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의 희망이기를 바랐던 참여의 진정한 정신이 꽃 봉우리 조차 피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것이다.
둘째,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라.
결과적으로 볼 때에는 실제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지각되는 수준의 차이가 날 수 있다. 이것은 참여의 근거와 쟁점, 의사 결정, 환경 등의 질적인 차이로 인한 것이다. 전문가들의 지식과 전문성이 이러한 괴리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셋째, 사랑의 마음이다. “증오는 인생을 혼란시키지만 사랑은 인생을 조화시킨다.”(마틴 루터 킹 목사) 사랑한다는 것이 뭐 별거인가. 행복을 느끼며 남과 자신을 동일 시 하면서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겠지만 인간의 본성을 모두 귀하고 동일한 것이 아닐까?
넷째, 의사결정자들이 스스로의 부족함과 한계를 느껴라.
과소평가나 과대평가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수시로 참여자들의 허심탄회한 이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고객(국민)을 자신의 물건을 사주는 사람으로만 착각해서는 결코 올바른 의사결정의 맥을 발견할 수 없다.
하루 광고가 15,000개 이상 노출되고 1,000여권의 책이 출판되지만 사실 기억나는 것이 없다.
이는 마케팅이 광고주 입장에서, 사장의 생각과 자신들이 원하는 일방적인 생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이에 대한 헌신이 바로 성공의 요체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사결정 시 자신만을 위한 언어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하고, 성공의 길로 나갈 수 있는 경청과 배려 그리고 사랑이 담긴 진정성이 있을 때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