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나라에서 위대한 사회로
위대한 사회란 모든 사람이 자기 역할에 대해서 깊이 사색하고 있는 사회다 (화이트헤드)
‘이렇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 일까’ 라는 의문이 종종 생기는 혼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때라고 안전하고 편안한 시기가 있을 수 없었겠지만 작금의 불경기 심화, 실업 증가 , 자산가치 감소, 사회 안전망 붕괴 등의 흉흉한 소식이 절망으로 다가 온다.
모두가 합창으로 바라고 외치는 경제 회복만 된다고 과연 삶의 질이 좋아질 것인가? 잘 사는 것이 단지 잘 먹고, 마음껏 소비하고, 대접 받으며, 부자로 사는 것인가?
우리는 경제 규모면에서 세계 13위로 긍지와 자랑스러움을 가질 자격이 있다. 그 반면에 행복의 지수는 얼마나 개선이 되었는가. 인생이란 끝없는 여정이다. 죽는다고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바로 삶과 죽음은 동일 연장선으로 현재 진행형일 뿐이다.
故 김수환 추기경은 잘 살지 못한다면,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지만 영원히 살지 못한다면, 잘 산다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분명하고 위대한 삶에 대한 지혜로운 가르침이다. 사람이 영혼이 있다는 것을 믿을 때, 비로소 잘 살려고 노력과 즐거운 여정이 되지 않을까? 물질, 찰라 주의의 동굴에서 나와 자유로운 사색과 여유로움을 느끼는 경제적으로 잘 사는 사회를 뛰어 넘어 위대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행복을 자신의 두 손안에 꽉 잡고 있을 때는 그 행복이 항상 작아 보이지만, 그것을 풀어준 후에야 비로소 그 행복이 얼마나 크고 귀중했던지 알 수 있다” (막심 고르키)
위대한 사회란 배불리 먹고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고, 좋은 집에서 편하게 사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다. 약자와 가난한 자 병든 자 모두 함께하며 모든 계층의 사람을 사랑과 감사로 묶여 주는 사회이다.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높게 여기는 섬김의 리더십이 흐르고 공의가 하수처럼 흐르는 사회인 것이다.
대접 받기보다 봉사하는 모습을 귀히 여기는 미래 지향적인 사회이다.
과제가 중심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에서 개방적이고 이타적인 사회,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상호 정보 공유가 되는 사회가 위대한 사회이다. 자신의 안위나 행복만을 추구하는 저급한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변혁적 리더십과 추종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변혁적 리더십이란 번즈(Burns, J. M)가 설명하기를 거래적 수준을 넘어 추종자들에게 공포 욕심, 질투 미움과 같은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 정의 평화 평등 인간주의 등과 같은 고차원의 이념과 도덕적 가치에 호소함으로써 보다 높은 영향력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불행, 죽은 사회라고 혹평한다. 우리나라의 부패지수는 세계 40-50위에 해당되며 고소 고발 사건이 선진국에 비해 수 십 배 많고, 토론과 건전한 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못했다. 위대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리더 그룹과 팔로워가 하나 되는 통합으로 지역, 계급, 나이, 이념 ,직업 등을 뛰어 넘는 조건이 있다.
위대한 나라가 되기 위한 중요한 몇 가지 키워드를 제시해 본다. 첫째 교육을 바로 세워야 한다.
유대인의 성공 비결은 교육을 중시하는데 있다. 유대인들은 세계 인구의 0.2%밖에 되지 않아도 노벨상의 30%를 휩쓴다. 우리나라도 교육의 열풍은 대단하다. 하지만 유대인들과의 차이점은 교육의 목적과 방향 그리고 질적인 차이점에 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본인은 모범을 보이지 않은 채 학교 다녀오면 성적과 무엇을 배웠는지에 관심이 있다. 일류 대학 진학만이 목표이다. 그 반면 유대인들은 오늘 무엇을 질문했는지를 살펴보고, 즐거운 학습이 되도록 여건을 만들어 준다. 교육이 남을 짓밟고 출세하는 도구로 쓰여 질 때 위대한 사회는 요원한 일이다..
톰 슐만의 소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교육 현장을 고발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 한다.
1959년 뉴잉글랜드주에 있는 명문고 웰튼 아카데미에 신임 영어교사 존 키팅이 전근해 온다. 이 학교의 교장은 매년 아이비리그 명문대학 진학율이 70% 이상이라고 강조하면서 입을 열 때마다 늘 공부만 하라고 한다. 그러나 키팅은 시가 흐르는 교실을 만들자고 외치면서 자신이 시를 읽고 자유롭게 인생을 토론한다. 전통과 규율에 도전하고 자유정신을 강조하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강조한다. 이는 라틴어로 ‘오늘을 붙잡아라, 오늘을 즐겨라 ,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라’의 뜻이다. 종전의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수업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키팅의 교육 방법을 싫어했던 학교에서는 닐이란 학생이 부모가 강요하는 의사의 길을 버리고 자살을 택하게 되는 책임을 물어 해임을 한다는 소설이다.
둘째, 편리함보다 명예를 존중하는 사회가 위대한 사회이다.
편리함만을 추구하다 보니 오히려 불편함의 총량이 줄어들지 못하는 편리함의 노예가 돼 버린다. 인간은 편리함의 중독자가 되어 무엇이 진정한 명예와 전통인지도 모른 채 어리석은 헛똑똑이들만 양산하는 꼴이 된다. 미국의 최고의 리더십 학교로 불리는 웨스트 포인트에서는 “타고난 리더는 없다. 오직 리더로 단련될 뿐이다”
“지난 150여 년 동안 웨스트 포인트 생도들만큼 불모지였던 미 대륙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만드는 데 완벽하게 기여했던 사람들은 없었다” (토마스 플레밍).
웨스트 포인트에서 가르치는 리더십의 4단계 관문은, 첫째, 조직을 굳건히 만드는 단결력을 어떻게 강화하는지 보여 준다. 둘째, 관문은 조직체 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도와주는 단계이다. 셋째, 관문은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들을 지도하기 위해 필요한 자신감과 리더십을 가르친다. 넷째, 관문은 조직의 상부 경영층에서 발생하는 경영자적인 리더십을 익히는 단계이다.
웨스트 포인트 리더십이 역사를 이해하고 명예와 전통을 존중하는 위대한 사회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셋째, 희망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조선일보 올해 1월 3일자 기사에서 대장암 말기 환자인 연세대 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이희대(李羲大 .56. 외과)소장을 소개했다. 그는 사람 죽이는 건 암세포가 아니라 절망이라고 한다. 그의 암은 집요하여 11번 재발했지만 희망을 갖고 자신이 받았던 처방을 환자들에게 그대로 처방하는 희망 치료를 한다.
인생의 모든 고난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입니다. 언젠가는 끝이 있고 나가는 출구가 있죠. 그 고행을 이기면 예전보다 더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희망이 나를 이렇게 버티게 해줬지요.
암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갖는 절망 때문에 죽는 거죠. 저는 암에 걸리기 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작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됐고, 가족과의 정도 더 깊어졌기 때문이죠.
그는 암과 요즘의 경제난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이 둘은 예측할 수 없이 다가온다는 것과 참기 어려운 고통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사실 저도 괴로울 때가 있죠.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죽음의 두려움이 밀려올 때마다 내가 나아서 행복해지는 꿈을 꾸고 그것을 미리 당겨다 갖다 놓습니다. 미래의 기쁨을 빌려와서 지금 누리는 거죠.
그렇다 암도, 경제도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이 너그럽게 하자.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감사와 봉사를 많이 하자.
넷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정관념이란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처럼 단순 경직된 사고로 매우 위험하다. 굳어버린 생각은 경직된 사고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제약할 수밖에 없다. 틀에 박힌 공식 에서 벗어나지 못해 새로운 세계가 들어 올 수가 없다.
또한 고정된 시각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보기에 다양성과 창의성이 부족하다. 편견, 부정적 사고, 흑백논리, 수직적 사고에 서 벗어나야 한다. 고정관념이 습관이 되어 버리면 본질보다 수단을 ,내용보다 포장에 더 가치를 부여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고정관념이 나쁜 것은 아니다.
많은 경험과 시간, 지식의 생각들을 축적하고 발효시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듯이 재창조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옛 기억을 살리고 느림과 희생의 가치를 되새기게 만들은 영화 워낭소리는 100만명 관객의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중ㆍ장년층은 이러한 농경문화를 기억한다. 70대 할아버지 할머니와 마흔 살 소가 함께 만들어 가는 농촌의 일상에서 희미해진 우리사회의 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돈만 벌면 좋은 영화', '영화만 좋으면 만사형통 ‘ ‘비싼 영화=좋은 영화’ 라는 고정 관념과 단순 논리를 일시에 없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미소 짓는 사회이다.
미소는 다른 사람에게 가장 큰 경의의 표현이다. 미소는 당신과 함께 성공의 파이를 나누겠다는 의사 표시이다. 미소는 닫힌 문을 열고 신선함을 주는 것이다.
하루에 최소 다섯 번씩이라도 약으로 생각하고 미소를 지어보자. 당신의 인생은 놀라울 만큼 변할 것이고 미래가 밝을 것이다.
하루에 다섯 번씩 미소 지으십시오. 서로서로 미소를 지으십시오.
그것은 반드시 쉽지만은 않습니다. 때때로 나는 나의 자매 수녀들에게 조차도 미소 짓기가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런 때에는 기도해야 합니다. 평화는 미소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이 전연 미소 짓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하루에 다섯 번씩 미소 지으십시오.
평화를 위해서 그렇게 하십시오.(마더 테레사)
위대한 국민이 위대한 국가를 만든다. 경제 대국인 일본이 위대한 나라로 대접 받지 못하는 것은 국제 사회가 요구하는 희생과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희망과 위대함을 노래하자. 이웃을 생각하고 먹고 사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희망이 있는 한 우린 위대한 사회로 나갈 수 있다.
희망은 잠자고 있지 않는 인간의 꿈이다.
인간의 꿈이 있는 한 이 세상은 도전해 볼만하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꿈을 잃지 말자. 꿈을 꾸자.
꿈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에겐 선물로 주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