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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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으로 희망을 쏘아 올린 칭기스칸 리더십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자 나는 칭기즈칸이 되었다.


 


징기스칸은 97년 4월 뉴욕 타임즈에서 선정한 세계를 움직인 가장 역사적인 인물  중 첫 번째로 뽑혔으며, 워싱턴포스트지가 선정한 과거 천 년간 인류사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 바로 칭기즈칸이다. 


당시 몽골 인구은 100만~200만 명으로, 변변한 문자도 없었던 야만 국가였지만, 중국의 원나라를 세웠고, 주변 2억여 명 인구의 국가들을  무려 150여년  동안 거느렸다. 그가 지배했던 땅은 777만 평방 킬로미터로 알렉산더 대왕과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차지한 땅을 합친 것보다 넓었다. 800여 년 전에 살았던 인물이지만 오늘날의  글로벌 리더십을 이미 발휘했던 것이다.


 


그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꿈과 희망을 접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현재 진행형 격인  불멸의 메시지를 전한다. “꿈을  키우라”, “변화와 역경을 두려워 말라”, “상상력과 열정으로 추종자가 아닌 리더가 되라“


칭기스칸의 성공 비결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역경과 고난의 환경 속에서도 비전과 꿈을 갖고 승리로 이끈 위기 극복 리더십의 전형인 것이다.


 


 


12~13세기 칭기스칸의 삶은 비참했다. 그가 속했던 부족은 작고 힘도 없었으며, 어린 시절 부친도 없이 자라  글도 배우지 못한 초라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그가 꿈꾸는 세상은   원대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끊임없는 전쟁과 약탈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처음에는 몽골을 통일한 후, 타국의 침략을 받지 않는 위대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품은 것이다.


 


“신은 역경을 종종 주지만 동시에 이것을 이길 힘도 주시는 것이다. ”. “자연은 신이 만들었지만 운명은 각자의 의지에 따라 달러진다. ”


칭기스칸의 위대한 리더십을 통해 우리는 행복할 것을 선택하고 창조적인 삶으로  위기를 극복했으면 한다.


 


첫째, 분명한 목표 의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어린 7살의 소년 테무진은 이웃 타타르족의 습격으로 아버지를 잃게 되고 그의 부족들은 흩어지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흩어진 부족을 되찾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라는 목표를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부족들을 뭉쳐 통일 국가로 만든 후에는 다른 나라를 정복하겠다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끊임없는 전진, 영토 확장만이 오직 살 길이라 생각하고 중국을 포함한 주변 모든  땅들을 정복하였다. 


 


둘째, 국민들에게  정당한 명분을 심어 주었다.


 


그 당시 몽골 유목민은  메르키트, 케레이트, 나이만, 타타르, 몽골, 다섯 부족들의 끝없는 싸움의 소모 전쟁이었다. 황폐했던 지역에서의 먹고 살기 위한 전쟁이었지만 목초지, 가축, 땅을 서로 차지하겠다는 일정한 파이를 두고 싸우는 제로섬 전쟁인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몽고를 가난과 전쟁의 공포에서 해방시키는 길은 몽골 고원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길뿐이다.


고원 안에서 아귀다툼할 게 아니라 고원 밖으로 나가서 모두가 배불리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 칭기즈칸의 목표인 것이다. 물론 일반 국민들이 전쟁을 좋아 할 리가 없다. 그렇다고 그들의 협조 없이는 전쟁을 일으킬 수 도 없다.


각 부족들에게 승리에 대한 명예를 중시하고, 장래 후손들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명분을 심어 준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무릎 꿇게 하는 민족 자긍심과 승리의 화신 역할을 보여줌으로써 주민들의 협조를 이끌 수 있었다.


그 당시 여진족(후에 청나라를 세움)이었던 금나라 100만 대군을 칠 때에는 ‘불효한 놈들이 천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거창한 명분과  피지배국 국민들에게는 소위 해방 전쟁이라는 의식을 심어 주었다. 일단 승리한 뒤에는 패자국의 문화나 종교 사회 등에 관계하지 않았으며, 일반인들의 땅을 약탈하지 않고 지배 계층들의 소유와 권력만을 빼앗았다.


 


셋째, 안락함을 배격하였다.


 


몽골의 환경은 매우 척박하다. 항상 가뭄과 강추위로 먹을 것이 제대로 없다. 서로 싸우면서도 최고 가치는 오직 살아남는 강인함뿐이었다.


이는 자연과 주변에 맞서는 생존 본능 의식을 몽골의 성인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가장 추운 날을 골라 소년들에게 왕복 80km에 이르는 눈보라 길을 다녀 오게 하는 것이다. 고삐를 놓쳐 말에서 떨어지거나 동상에 걸리는 등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가르친다.


칭기스칸은 이렇게 경고했다. “내 자손들이 비단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이 망할 것이다.”  그렇다. 세상의 아무리 큰 국가라 할지라도 고난을 잊고 편안함에 젖어 변화하지 못한다면 망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즉,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몽골제국의 후대 지도자들은 이러한 충고를 되새기지 못하고 소수 인구의 약점 때문에 다수의 피정복민을 지배한다는 명목으로 정착을 하면서부터 그들의 생존 비결인 속도와 유목 마인드, 야만성, 정체성 등이 상실되어 칭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칸이 세운 원나라는 100여 년 만에 쇠퇴를 맞았다. 


 


넷째, 속도·스피드를 중시했다.


 


몽골군이 공격할 때 상대국은 적어도 한 달 이상의 이동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하고 천천히 대비하는 허를 찔렀다. 몽고군은 밤새 말을 달려 몇 일만에 급습하여 무방비 상태를 활용했다. 만일 항복을 하면 살려 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자비하게 죽인다는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빠른 이동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유럽군들은 갑옷 무게만 해도 70킬로에 달했지만 그들은 7킬로의 가벼운 군장이었고 여러 말들을 교대로 타서 말을 지치게 하지 않았다. 또한 말 위에게 능란한 칼과 활솜씨로 발휘하였고, 말을 달리면서도 먹을 수 있도록 말린 고기(육포)를 준비하여 이동 시간을 최대한 줄인 것이다.


 


다섯째, 개인적 약탈을 금지 시켰다.


 


당시 전쟁의 승리자는 상대국의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이다. 칭기스칸도 동지들과 부족들을 위해 전쟁의 부산물을 가져갔지만, 전리품을 적절하게 분배하였다. 칭기스칸의 배분 원칙 이 있기 전에는 적진에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가축이든 여자든 취하는 선착순 약탈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간접적으로 전투를 도운 사람과 일반 국민들에게는 혜택이 돌아 갈 수 없었다. 칭기스칸은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고, 조직 전체 전투력과 소속감을 높일 목적으로 전리품을 공동 몫으로 두고 누가 얼마만큼 공을 세웠느냐에 따라 나눠 갖는 공동 분배제를 택했다.
물론 거친 반발도 있었지만 승리를 하게 되면 각자의 대가에 따라 분배 받을 수 있다는 윈-윈 전략과 동기 부여를 세워주었다. 숫자에서 열세인 칭기스칸 군대가 엄청나게 많은 상대방을 제압한 비결이 바로 공정성과 조직의 화합에서 비롯된다.


 


여섯째,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장수만 있다고, 숫자가 우월하다고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상호간에 신뢰감을 주고 상호 돕고, 네트워크가 잘 소통되며, 조직 간의 호환성이 발휘할 때 팡파르가 울리는 것이다.


군대 조직을 천호제라는 이름으로 명명하고 칭기스칸이 언제든지 명령만 하면 숫자를 10만에서 20만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불식시키고 모든 병사들이 기본적인 전술과 동일한 기량을 갖게 하였다.


특히 전술기량을 펼칠 때에는 상호 호환 조직을 이용하여 전쟁 중에 잡힌 적군 포로라 할지라도 바로 천호제에 편입할 수 있는 융통성을 보인 것이다. 전쟁 후에도 포로들을 포함한 전체 인력 풀을 운영하는 통합의 지혜를 보였다.


 


일곱 번째, 과학 기술과 무역을 중시했다.


 


갑옷을 가볍게 만들었고 창과 칼을 과학화했다. 적의 기술자의 경우 죽이지 않고 그들에게 좋은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을 장려했다. 
실사구시적인 정신으로 이교도를 일지라도 국익을 증시하여, 개방정책으로 선진화된 문명과 각종 과학기술을 교류시켰다. 이 전통은 칭기즈칸의 사후에도 대부분의 반대 주민을 몰살시켰지만 기술을 가진 자들 즉 공예가나 직인들은 죽이지 않고 몽고 본토로 후송하였다.


칭기즈칸은 단순히 정복을 넘어, 사람과 물자, 정보가 원활하게 유통되는 사회를 만들었다. 서방 여러 나라에서 들어오는 물건들의 교역 활동을 보장하고, 상호 소통이 잘 되도록 역참제도 두었다. 역참제란  수도를 중심으로 지배하는 전 지역에 5km마다 정보 전달자를 둔  오늘 날의 인터넷 역할인 것이다.


 


여덟 번째, 강력한 조직과 참모가 있었다.


 


칭기즈칸은 강력한 조직의 뛰어난 리더로서 늘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조직을 연구했다. 칭기즈칸은 건국공신 88명을 천호장(千戶長)에 임명하여 조직의 안정을 꾀했고 사회조직과 군재 조직을 동일 시 하여 혼란을 극소화했다. 특히 그의 주위에는 많은 인재를 두고 그들에게서 자문을 경청했다.


오늘 날 강대국 몽골제국을 발견할 수 없다. 몽고의 멸망을 통해 배우게 되는  교훈은 바로 다름아닌 ‘승리란 계속 이어질 수 없다.’ 몽고가 쇠퇴한 결정적 이유는 소모적인 후계자 경쟁과 변화의 헤게모니를 놓친 것이다.


 


후계자 경쟁이라는 내부적인 권력 싸움으로 외부의 어떤 적보다도 파괴적이고 위협적이다. 총 발견으로 활을 가지고 싸우는 몽골제국은 이길 수 없었다. 총 소리를 들은 말들은 놀라서 대오를 흐트러진 것이다.


스피드한 속도로 세계를 지배했던 몽골 제국도 더 빠른 과학 기술에 뒤져 망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겪게 되었다. 몽골제국의 자취는 많은 후계 국가들에 남겼졌는데 무굴제국이 그 대표이다. 


 


 


무굴은 힌두어로 몽골을 뜻한다. 무굴제국은 1562년 유목민인 티무르의 손자 바베르가 인도에 세운 나라로, 1858년까지 계속됐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도 후계국가라고 한다.


우리 몸속에는 칭기즈칸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 유목민의 기질로 되살려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속도와 정보화, 세계화의 리더가 되어야 할 것이다. 12세기에 이룩한 칭기즈칸의 영광을 우리가 되찾는 꿈꾸는 선구자가 되었으면 한다.


 


“모든 것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 김진혁(미래성공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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