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령에서 삿갓재 대피소까지
백두대간을 시작한지 꼭 한 돌이 되는 2008년 5월.
겨울철에 이어 봄철 산불방지 기간까지 무려 다섯달을 쉬고서 10일과 11일 이틀을 빌려 새로이 시작하는 덕유산권 7,8구간입니다.
두 구간을 한꺼번에 마치려고 이번에 처음으로 삿갓재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유하게 되었는데
시작부터 비상사태가 발생하여 대략난감한 일이 생겼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대피소의 숙박 예약 접수건인데 이곳도 성수기라고 사람이 넘쳐나는 바람에
무슨 명절날 기차표예매 보다도 더 힘들어가지고는 한사람당 네명밖에는 예약이 안 되는데다
지정한 날 10시에 신청을 받는다고 하여
후배님들 몇이서 조를 짜가지고 컴퓨터앞에 지키고 있다가
5.4.3.2.1 땡~! 잽싸게 클릭을..
아뿔사~
34회 조준환 후배만 성공을 했다네요.
그럼 그 나머지는 워찌 한답니까요 글쎄.
뾰족한 답은 없고 다들 속수무책.
일단은 대피소엘 가 봐야만 무슨 수가 생기던지 우짜던지
하여간에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야영(비박 bivouac)에 필요한 장비를 각자 준비토록 하엿든바
침낭에 매트리스와 이틀분의 식량만으로도 버거운 배낭무게에 여자들은 허거걱~
뒤에서 누가 잡아 땡기는것 같다고들 하는디..절때 엄살이 아님돠.
하물며
텐트며 버너 코펠까지 준비한 남자 후배들의 배낭은 이러구 저러구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지요.
크기도 크기려니와 제대로 들어 올리지도 못하는 무게에 그저 벌어진 입이 안 다물어 집니다.
늘 그렇습니다.
도움은 커녕 내 앞가림 하기만도 급급한 최고참 누나들이니
그저 미안코 고맙고...
후배님들의 희생과 봉사를 생각하면 코끝이 찡~ 해 옵니다.
버스 속 풍경입니다.
뺄수 있는데까지 하나라도 더 빼서 무게를 줄여보려고 배낭속을 홀카닥 뒤집어 먼지까지 탈탈~
별 수를 다 써 봅니다만 말짱 도루묵 헛일인거지요.
요것조것 많이 가져 온 희숙에게 웬만한건 다 빼고 니꺼만 챙겨 남 생각은 말고
절대 무거우면 못가니까 최소로 꼭 필요한것만 더 뺄것도 없는데...어휴 그래도 무겁네
석가탄일까지 겹친 황금연휴에 차라는 차는 모두 밖으로 나온 모양
서울을 빠져 나가는데 많은 시간을 저당잡히고 초장부터 삐딱선을 타기 시작해서
10시 30분부터 산행을 하려던 계획은 일찌감치 물건너 가버려 육십령 휴게소에서 점심까지 먹은후
오후 1시 가까이나 되서야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삿갓재까지 10.5키로.
할미봉도 넘어야하고 서봉(1492m)도 올라야 하고
그 사이사이 오르락 내리락을 수도없이 해야하는 고갯마루와
위험한 암릉구간은 또 언제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 우릴 히껍하게 할지..
예정 산행시간은 7시간이지만 그게 재대로 지켜질런지..원~
그래도
해 떨어지기 전에 전원 대피소에 도착하면 좋겠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서
등짐을 잔뜩 짊어진 산꾼들 열여섯명(남자 9 여자 7)은 각오도 새롭게 힘찬 출발을 하였습니다.
낼 모래면 칠십을 바라보는 우리 늙다리들에게 대간길은
[무한 도전] 아니져~[무모한 도전] 맞습니다.
가다가 쉬다가..
잠시 내려놓았던 배낭을 다시 메고 일어서려면 끙긍거리기 일쑤이니 뭐하러 이 고생을 하누 집에서 편하게 있지
사둔 남 말 하시네 하하 호호 ^^
서로 실없는 야그에 웃기도 하면서..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입니다.
나중에는 거친 숨소리만 식~식~ 아무도 말이 없습니다.
그나마 날씨가 도와주니 고마운 일입지요.
햇살은 따갑지만 간간히 불어주는 바람은 어찌나 시원하지 청량제가 따로 없으니
♪ 산위에서 부는 바람 고마운 바람
갈수록 무뎌지는 발걸음이지만 할미봉도 넘었고 진달래가 무리지어 반겨주는 서봉에도 올라섰습니다.
희숙이가 아직 안 보이네요.
오기전에 몸살끼도 있었고 그동안 산에도 통 못 올랐다고 걱정이 태산이더만..걱정이 현실로.
평소에는 아주 가비얍게 산을 잘 타는 친구인데
오늘은 배낭무게에 눌려 그런가 무척이나 힘이 드나 봅니다.
힘을 나누어 줄 수 도 없고 짐 하나도 덜어 줄 수 없는..
오로지 자기몫의 고통을 안고 가야만 하는 대간길이라서 바라만 봐야 하는 안타까움에 마음만 동동 거립니다.
어느덧 해는 서산마루로 기울고
급한 마음에 발길을 재촉하지만 모래주머니를 매단양 발걸음은 천근만근.
양쪽 어깨쭉지는 결리고 저리고..코에서는 황소콧김같은 쇳소리에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
짝퉁 삿갓재를 몇개나 넘었을라나요.서쪽 하늘을 붉게 물드리던 햇님도 한순간 꼴까닥~
그때 눈에 들어 온 이정표[삿갓봉 0.3키로 삿갓재대피소 0.9키로]
오메~ 반가운거..
그 팻말을 보는 순간 이제 끝이 나는구나 싶어서 없던 힘도 솟아난다지요.
랜턴 대신에 눈에 불을 키고 도착한 삿갓재대피소.
그때 시각이 저녁 8시. 산중의 5월은 한겨울처럼 춥고 쌩쌩 칼바람이 불어댑니다.
다행스러운건 걱정했던일이 쉽게 해결 되었다는 것이지요.
운이 좋았던가..이게 웬 떡! 여자들은 내실 2층에서..남자들은 복도에서..
어쨋든 용쓰며 힘들게 이고 지고 간 침구들을 깔고 덮고서
아래 윗층 줄잡아 오십명?쯤 되는 남녀 산꾼들의 드르렁 코골이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자장가 삼아
물젖은 솜처럼 피곤에 지친 몸을 뉘일 수가 있었습니다.
길고도 기~~~인 하루가 꿈속처럼 아득하더라지요.
맹워리가

육십령에서 출발하며

웃고 있는 희숙이

27회 권혁란과 박옥남

텐트까지 챙겨 온 37회 조정미..배낭 크기좀 보세요 허걱~

13회 이희숙 33회 최유재 지동회

덕유산자락의 멋스런 풍광

33회 박경철 후배의 배낭은 얼마나 무거운지 잘 들지도 못하겠더라구요.

희숙아 배낭옆에 좀 서 봐봐봐

그동안 우리가 걸어 온 지리산권 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암릉절벽을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희수기..배낭만 보이넹

하늘을 배경삼아

이정표..벌써 6.8키로를 걸어 왔네요.

서봉 근처..산이 높으니 이제서야 진달래가 만발해서 우릴 반깁니다.

서봉 꼭대기에 먼저 올라 간 후배가 우뚝 서서 덕유의 정기를 받고 있습니다

서봉으로 올라 가는길에 진달래가 무더기 무더기 아름답습니다.

서봉 (1492미터)

월성재에서..삿갓재 2.9키로

삿갓재까지 2키로 입니다..조금만 더 힘을~ 아자!아자!

주위를 붉게 물들이고서 서쪽으로 기우는 저녁해

산마루에 걸터앉은 햇님입니다.

에공..골까닥~ 넘어갔군요

주위는 어두워지고 랜턴 대신에 눈을 크게 뜨고서..아~!!! 반가운 대피소 이정표

어둠속에 오두마니 서있는 삿갓재 대피소..무엇에 이 반가움을 비할꼬~

하늘에는 음력 4월 초엿새 조각달이 그린듯이 떠 있더이다.

햅반을 데우고 라면을 끓여 저녁을 먹었습니다..힘들게 지고와서 저녁까지 해 준 후배님들 고마워 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