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화

1970.01.01 09:33

부부는 한팀..

조회 수 73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이미지를

이미지를


폭포 앞에서 두 남녀의 미팅. 경치 이야기로 시작하다

속마음을 열어놓더니 서로 끌리는 대목까지..


절묘하게 표현되어 있다..











 


『 황진이의 첫 弘報詩와 첫 大漁 벽계수』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오지 못하나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송도의 황진이에 대한 명성은 전국에 자자했었다. 이 때, 왕가 종실(宗室)에 벽계수(碧溪水)는 '제 아무리 잘난 계집이라 해도 어차피 계집이긴 매한가지이다. 나처럼 지조있는 선비는 황진이 같은 것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며 당장 내쫓을 것이다.' 하며, 자기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황진이를 만나 그녀가 아무리 유혹해도 그것에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늘 큰 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황진이는 그를 유혹해보기로 하였다. 마침 벽계수가 송도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시켜 그를 달 밝은 가을밤에 개성 만월대(滿月臺)로 오게 하였다.

 그리고 황진이는 곱게 단장한 후, 말 고삐를 잡고 낭랑한 목소리로 이 시조를 지어 읊으며 그를 유혹하였다. 이 노래를 듣던 벽계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에 도취되어 그만 타고 온 말에서 내렸고, 이내 사랑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


이에 황진이는 왜 저를 내쫓지 않으시나이까? 하고 집에 가버리니 벽계수는 심히 부끄러워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어느날 친구 이달과 의논하여 그가 일러주는 데로 했다.


 누각에 올라 거문고를 타고 있으니 진이가 나타났다.


 취적교를 지나도 돌아보지 말라고 했으나 황진이의 낭랑한 음성에 돌아보고 말았다.


 황진이는 이는 명사가 아니고 풍류남아로고 하면서 되돌아가고 말았다.


 이에 벽계수는  황진이를 일컬어 '막힌 저수지'라 하자


 황진이는 '바닥없는 우물'이라고 화답하였다고 한다.


 


 


 


▶이 시조에서 대표적은 표현법은 중의법을 적절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벽계수'를 글자 그대로 청산 속의 '푸른 시냇물'이라는 뜻으로, '명월'을 '밝은 달'로 해석해도 자연스러운 문맥이다. 하지만, '벽계수'를 왕실 친족인 이혼원의 호로 보고, '명월(明月)'은 황진이의 기명이었으니 황진이 자신으로 보아도 글의 흐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벽계수에게 자신과 이 달 밝은 밤의 빈 산에서 어우러져 놀아보자는 유혹의 뜻이 충분히 전달되는 것이다. 한 단어를 이용하여 두 가지 흐름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청산(靑山)'은 영원히 변함이 없이 그 자리에 있는 자연을 나타낸 것이라면, '벽계수'는 순식간에 스쳐 가는 인생을 비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시내는 그대로이나 시냇물은 늘 새로운 물에 밀려 사라지는 것이니 말이다.
결국, 무한한 자연에 비하여 인생은 얼마나 덧없는가, 그럴 진대 풍류로 허망함을 달래보자고 노래한 것이다.
한편 '청산(靑山)', '벽계수(碧溪水)', '명월(明月)', '공산(空山)'이 어울려 이루는 풍류의 분위기를 유혹의 세계로 발전시켜 놓았다. 애원이나 노골적이거나 음탕한 성적 도발로서가 아니라 멋으로 남성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니, 황진이가 왜 그리도 유명한 기생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한다.
 
벽계수 이혼원은 형 주계군 이심원과 함께 종실 효령대군의 증손이다.
이들 형제는 연산군 갑자사화 때에 억울하게 살해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는 성종 말년경으로 추정된다. <최인호.황진이>


 



▶황진이가 기생이 된 까닭은?

황진이는 16세기에 활동한 우리 나라의 이름 있는 기생이다.
그녀는 개성에서 살던 황진사의 첩의 딸로 태어났다. 호는 명월이었다.
황진이는 어려서부터 수려한 용모에 서예와 가무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서..
그 소문이 각지에 퍼졌고 또 많은 일화도 남겼다.
황진이가 15세 무렵에 한동네에 살던 총각이 그녀를 짝사랑하던 나머지 상사병에 걸려 죽었는데..
총각의 상여가 황진이의 집대문앞에 이르자 말뚝처림 굳어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죽은 총각의 친구가 이를 황진이에게 알이자 황진이는 소복단장을 하고 달려나가 자기의 치마를 벗어..
관을 덮어 주었는데 그 제서야 상여가 움직이더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일로 인하여 그녀가 기생이 되었다고도 한다.
황진이는 첩의 딸로서 멸시를 받으며 규방에 묻혀 일생을 헛되이 보내기 보다는..
봉건적 윤리의 질곡 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였다.
그 결심을 실천하자면 당시 그의 신분으로서는 불가능하였으므로..
오직 길이라면 기생의 인생을 걷는 것이었다.

 




황진이 평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1. 여름 밤하늘의 별빛

    Date1970.01.01 BySkylark Views905
    Read More
  2. 활쏘기..

    Date1970.01.01 Bypanicys Views753
    Read More
  3. 라자요가 명상법 강좌 - 무료 (관상기도/긍정적 사고방식)

    Date1970.01.01 Byrajayoga Views727
    Read More
  4. Date1970.01.01 Bysook220 Views696
    Read More
  5. 두물머리 (양수리 )연꽃과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

    Date1970.01.01 BySkylark Views856
    Read More
  6. 오다가다 잘 하는 일도 있지요.^^

    Date1970.01.01 BySkylark Views1045
    Read More
  7. 프레임 ~

    Date1970.01.01 Bypanicys Views609
    Read More
  8. 선농합창 연습모임...

    Date1970.01.01 Byshk0078 Views797
    Read More
  9. 우리동네~ 한여름밤의 발레..

    Date1970.01.01 Bypanicys Views626
    Read More
  10. * 동네 유적지 탐방 / 오늘은 초복 *

    Date1970.01.01 Byyoungoggi Views791
    Read More
  11. 부부는 한팀..

    Date1970.01.01 Bypanicys Views732
    Read More
  12. 이렇게 옮겼답니다.. ^^

    Date1970.01.01 Bypanicys Views736
    Read More
  13. 날아 온 문자 메세지

    Date1970.01.01 BySkylark Views905
    Read More
  14. 황진이 ~~

    Date1970.01.01 Bypanicys Views778
    Read More
  15. 가야산 길..

    Date1970.01.01 Bypanicys Views679
    Read More
  16. ==1 분 평화문화 캠페인 ==========

    Date1970.01.01 Byrajayoga Views759
    Read More
  17. 가야산 총동문 산행..

    Date1970.01.01 Bypanicys Views850
    Read More
  18. *4백년 전에 부친 편지 思夫曲 능소화 *

    Date1970.01.01 Byyoungoggi Views1049
    Read More
  19. 서울숲 사랑..

    Date1970.01.01 Bypanicys Views692
    Read More
  20. 서울숲 장고춤 공연..

    Date1970.01.01 Bypanicys Views68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 145 Next
/ 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