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많은 꽃들이 피고지던 사월이 지나
- 오월의 길목을 들어서는 순간
- 화사하고 우아한 모란이 환한 얼굴로 나를 반긴다.
- 우리 집 마당에 탐스럽게 핀 모란
- 작년엔 아홉송이가 피었었는데
- 올 해는 열두송이가 피었다.
- 오월이 시작되는 날
- 나를 반기는 너의 환한 미소
- 너처럼 환한 얼굴로
- 오월의 길목을 걸어가고 싶구나.

김영랑 -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 오월 어느 날,
- 그 하루 무덥던 날,
-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 찬란한 슬픔의 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