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 오월은 부처님 오신 달이다.
음력 초파일은 양력으로 오월 가운데 어느 날이며,
그때 쯤 되면 절과 불자들은 초파일 준비로 아주 바빠지기에...
오월은 부처님 오신 달이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고요한 밝음(寂光)이라 하니..
대낮에 태양이 비추듯 온 세상을 밝힌다는 뜻으로 보통 새기는데,
한편으로는 햇빛 속에 사물이 뚜렷하게 보이듯
평화(寂) 속에 모든 것을 환히(光) 보고 있다는 뜻이 된다고 한다.
불교를 지혜의 종교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세상은 많은 어둠과 그늘이 존재한다.
원죄(原罪)든 업보(業報)든 인간은 무명(無明) 속에 태어나기 때문이리라. 왜 무면 속에 태어나는 걸까?
“왜 사느냐?” 는 질문에 과연 몇이나 시원하고 확실한 대답을 하리요만은,
참 불자(佛子)라면 “무명(無明)에서 벗어나려고” 라는 뜻의 답이 나올 듯 같다.
봄이 시작하는 3월이 오면 절은 봉축 행사 준비로 바빠진다.
4월이 되면 절 안에는 여기 저기 분홍 연꽃과 사이사이 하얀 연꽃이 수줍다는 듯 자리하곤 다소곳이 우리를 반긴다.
그러다 5월이 되면 절은 온통 연꽃으로 화사하게 피어나며 아이들과 나비는 연꽃을 따려는 듯 두 손을 들고 춤추며 뛰어다닌다.
웃음은 온통 절 안을 밝히고...
평소 우리는 공기의 고마움을, 물의 고마움을 잊고 지낸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으니.. 당연히 그렇게 있는 줄 알아 별 고마움 없이 숨을 쉬고 물을 마신다. 그러니 자연 보호자들의 공기와 물의 소중함을 알고 아껴 쓰자는 간절한 캠페인을 보면서도 덤덤해 할 뿐이다.
만일 공기나 물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지면?.......
매년 되풀이 되는 봉축 행사이다 보니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어떤 때는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초파일 행사 준비를 한다. 부처님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무엇이 고마운 것이냐고 물으면 마땅한 대답을 잊어 웃음으로 대신 답할 때가 있다.
우리 어머니가 우리 할머니가 그러하셨듯이.
부처님에 대한 고마움이 무엇인지 손 꼽아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무지(無知)를 벗겨 낼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 길조차 잃어버리고 부처님이 오셨다는 사월 초파일이 되어도 단지 행사를 위한 행사를 준비하는 불자들이 적지 않다.
수행자였던 고타마가 보리수 아래에서 부처님으로 깨어나실 때 보았던 것은 모든 괴로움이 무지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것은 그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발견했고, 바로 당신 스스로 그 길을 걸어 부처님이 되신 것이다.
따라서 깨침이란 곧 부처님이요, 부처님이란 곧 깨침이 된다.
사성제(四聖諦)란 보리수 아래서 깨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요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사성제는 참으로 간단하게 보이니, 곧
괴로움(苦)은 욕심과 무지가 주인이 되어 배를 불리기(集) 때문이며,
욕심을 떨치고 괴로움을 없애는 길(道)인 팔정도를 실천하면
괴로움을 멸(滅)해 부처님이 된다는 것이다.
세 살 먹은 아이도 이해할 수 있고, 팔십 먹은 노인네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은 사성제를 2500 여 년 전에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었건만, 아직도 세상은 괴로움이 넘쳐나는 걸 보면 팔정도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초파일 밤이 되면 (요새는 초파일 전후 토요일 또는 일요일 밤에) 탑을 돌며 ‘석가모니 불’ 염불(念佛)을 하는데, 그 때 대부분의 불자는 ‘가족의 건강’ 또는 ‘남북통일’ 등을 자기 염불 속에 실려 보낸다.
그러나 당신이 석가모니 부처님 제자이기를 바라는 불자라면,
그런 기도 외에 무명(無明)을 없애는 팔정도를 바르게 이해해 실천하겠다는 원(願)을 염불 속에 실어 보내야 하지 않을까.
올 초파일도 한걸음 두걸음 가까이 다가온다.
음력 초파일은 양력으로 오월 가운데 어느 날이며,
그때 쯤 되면 절과 불자들은 초파일 준비로 아주 바빠지기에...
오월은 부처님 오신 달이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고요한 밝음(寂光)이라 하니..
대낮에 태양이 비추듯 온 세상을 밝힌다는 뜻으로 보통 새기는데,
한편으로는 햇빛 속에 사물이 뚜렷하게 보이듯
평화(寂) 속에 모든 것을 환히(光) 보고 있다는 뜻이 된다고 한다.
불교를 지혜의 종교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세상은 많은 어둠과 그늘이 존재한다.
원죄(原罪)든 업보(業報)든 인간은 무명(無明) 속에 태어나기 때문이리라. 왜 무면 속에 태어나는 걸까?
“왜 사느냐?” 는 질문에 과연 몇이나 시원하고 확실한 대답을 하리요만은,
참 불자(佛子)라면 “무명(無明)에서 벗어나려고” 라는 뜻의 답이 나올 듯 같다.
봄이 시작하는 3월이 오면 절은 봉축 행사 준비로 바빠진다.
4월이 되면 절 안에는 여기 저기 분홍 연꽃과 사이사이 하얀 연꽃이 수줍다는 듯 자리하곤 다소곳이 우리를 반긴다.
그러다 5월이 되면 절은 온통 연꽃으로 화사하게 피어나며 아이들과 나비는 연꽃을 따려는 듯 두 손을 들고 춤추며 뛰어다닌다.
웃음은 온통 절 안을 밝히고...
평소 우리는 공기의 고마움을, 물의 고마움을 잊고 지낸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으니.. 당연히 그렇게 있는 줄 알아 별 고마움 없이 숨을 쉬고 물을 마신다. 그러니 자연 보호자들의 공기와 물의 소중함을 알고 아껴 쓰자는 간절한 캠페인을 보면서도 덤덤해 할 뿐이다.
만일 공기나 물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지면?.......
매년 되풀이 되는 봉축 행사이다 보니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어떤 때는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초파일 행사 준비를 한다. 부처님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무엇이 고마운 것이냐고 물으면 마땅한 대답을 잊어 웃음으로 대신 답할 때가 있다.
우리 어머니가 우리 할머니가 그러하셨듯이.
부처님에 대한 고마움이 무엇인지 손 꼽아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무지(無知)를 벗겨 낼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 길조차 잃어버리고 부처님이 오셨다는 사월 초파일이 되어도 단지 행사를 위한 행사를 준비하는 불자들이 적지 않다.
수행자였던 고타마가 보리수 아래에서 부처님으로 깨어나실 때 보았던 것은 모든 괴로움이 무지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것은 그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발견했고, 바로 당신 스스로 그 길을 걸어 부처님이 되신 것이다.
따라서 깨침이란 곧 부처님이요, 부처님이란 곧 깨침이 된다.
사성제(四聖諦)란 보리수 아래서 깨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요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사성제는 참으로 간단하게 보이니, 곧
괴로움(苦)은 욕심과 무지가 주인이 되어 배를 불리기(集) 때문이며,
욕심을 떨치고 괴로움을 없애는 길(道)인 팔정도를 실천하면
괴로움을 멸(滅)해 부처님이 된다는 것이다.
세 살 먹은 아이도 이해할 수 있고, 팔십 먹은 노인네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은 사성제를 2500 여 년 전에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었건만, 아직도 세상은 괴로움이 넘쳐나는 걸 보면 팔정도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초파일 밤이 되면 (요새는 초파일 전후 토요일 또는 일요일 밤에) 탑을 돌며 ‘석가모니 불’ 염불(念佛)을 하는데, 그 때 대부분의 불자는 ‘가족의 건강’ 또는 ‘남북통일’ 등을 자기 염불 속에 실려 보낸다.
그러나 당신이 석가모니 부처님 제자이기를 바라는 불자라면,
그런 기도 외에 무명(無明)을 없애는 팔정도를 바르게 이해해 실천하겠다는 원(願)을 염불 속에 실어 보내야 하지 않을까.
올 초파일도 한걸음 두걸음 가까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