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문이 열리면
하늘 나라의 꽃길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 모르겠습니다. 벚꽃과 목련이 함께 하늘을 수놓고, 개나리, 진달래가 꽃병풍을 둘렀으며, 연보라빛 제비꽃과 길가의 하얀 냉이꽃, 노란 꽃다지까지 온통 꽃의 축제가 열리고 있는 꽃길에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벚꽃이파리가 주단되어 깔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넉넉 잡아 열흘이 지나면 모두 사라질 꽃들입니다. 깊은 상념에 사로 잡혔습니다. 나무들은 꽃을 피우기 위해 세상에 나왔을까 아니면 열매를 맺기 위해 세상에 나왔을까? 어떤 이는 열매를 맺기 위해 꽃들이 색깔로, 향기로, 화밀(花蜜)로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과학적인 이론을 전개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울고, 먹구름 속에서 천둥도 울었다고 시를 썼습니다.
모레가 크리스챤들의 최대의 명절인 부활절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죽지 않으면 부활이 없습니다. 꽃이 죽어 열매로 부활하고, 한 알의 열매가 죽지 않으면 또 다시 꽃을 피워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꽃길을 걸으면서 시인이 되어 생각했습니다. `나`라는 이 완고한 돌문을 열리게 하옵시고, 당신의 음성이 불길이 되어 저를 태워 주십시오.
박목월님의 `부활절 아침의 기도`를 들어 보세요.
주여 저에게 이름을 주옵소서 당신의 부르심을 입어 저도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태어나기 전의 이 혼돈과 어둠의 세계에서 새로운 탄생의 빛을 보게 하시고 진실로 혼매한 심령에 눈동자를 베풀어 주십시오 '나'라는 완고한 돌문을 열리게 하옵시고 당신의 음성이 불길이 되어 저를 태워 주십시오 그리하여 바람과 동굴의 저의 잎에 신앙의 신선한 열매를 물리게 하옵시고 당신의 부르심을 입어 저도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주여 간절한 새벽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에게 이름을 주옵소서
↓ `노루귀`의 부활 - 아직 얼음이 채 녹지 않은 천마산 돌판샘 근처에선 낙엽을 헤치고 노루귀 하나가 꽃을로 부활하고 있었습니다. (2006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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