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대학 시인교실

by sabong posted Jan 01,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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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대학 시인교실

혹시 노인대학이라는 곳에 가보신적 있으세요?
저는 지난 토요일 처음으로 노인대학이라는 곳에 가서 "사봉의 시인교실" 교수 노릇을 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토요일마다 어르신들께 점심 한 끼 대접하려고 하다가 아예 노인대학이라는 간판을 내 걸게 되었습니다. 제게 맡겨진 시간은 30분이었고, 제 임무는 어르신들을 다시 문학청년 시절로 돌아가게 하여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나오신 어르신들은 대략 200명쯤 되셨고, 대부분은 할머니들이셨습니다. 200명 할머니 학생들의 표정을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인생을 정의하는 철학일 것이고, 그 표정을 한 장에 그릴 수 있아면 그 그림의 제목은 바로 "시인'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따로 보면 힘들게 살아온 세월만 보일 뿐 시와 문학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 어르신들을 다시 시인으로 돌아가게하여 드릴까 생각하면서 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누구나 시인이었습니다. 농부도 시인이었기에 밭에 나가 일하면서 시을 읊었습니다. 군인들도 시인이었기에 이순신 장군같은 분이 전쟁을 하면서 "한산섬 달 밝은 밤에..."하면서 시를 읊었습니다. 집에서 살림하는 아기 엄마들도 시인이었기에 "꼬꼬닭아 울지 마라, 멍멍개야 짖지마라"하고 자장가를 읊었습니다. 어르신들도 예전에는 분명히 시인이셨습니다. 그런데 살아온 세상 풍파가 모질었고, 그나마 조금 잠잠한 시간이면 TV가 모든 것을 가로채었습니다. 이제는 시와 내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계십니다. 오늘 여기 오신 모든 어르신들은 시 한편을 외우고 다시 시인이 되어 돌아 가시게 될 것입니다. 계란을 품으면 병아리가 나오고, 뱀알을 품으면 뱀이 나오듯이 시인의 마음을 품으면 행복이 나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 장콕토라는 분이 지은 제목이 "뱀"이라는 시는 세상에서 제일 짧은 시입니다. 단 넉자 "너~무~길~다~" 다 외우실 수 있으시죠?

넉자로 된 장콕토의 시를 외우신 어르신들은 놀랍게도 그 길고 긴 세월의 강을 건너 뛰어 모두 시인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깔깔 거리면서 웃는 웃음소리조차 분명 문학청년 시절의 그것이었습니다. 눈이 반짝반짝하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김상용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소개하여드리고 외워보시게 했습니다. 물론 다 외우시는 분은 없었습니다. 한 줄을 외우시기만 해도 곱게 포장을 해 간 향기나는 비누를 하나씪 드렸습니다. 다 드릴 수는 없었지만 못 받으신 분들도 박수를 치면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30분 강의 시간이 끝날 때는 마지막 연을 모두 합창으로 암송할 수 있게 되셨습니다.

"왜 사냐건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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