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문이 열리려고 합니다. 이틀 남은 8월을 섭섭지 않게 잘 정리하여 보내야 하겠네요.
고산(孤山) 윤선도의 다섯 벗이 수(水), 석(石), 송(松), 죽(竹)과 달(月)이라고 했는데 욕심 많은 사봉은 고산의 다섯 벗이 넘치는 산(山)까지 벗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강원도 삼척에 환선굴이라는 유명한 동굴이 있습니다. 그 동굴 뒤로 덕항산(1071m)과 지각산(1085m)이 어깨를 나란히하고 서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 두 산이 이루는 절벽과 계곡이 그랜드캐년보다 더 멋지다고 과장 섞인 예찬을 하기도 합니다. 지난 토요일 그 산에 다녀왔습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하여 부지런을 떨었더니 점심 무렵에 산행을 마치고 환선굴까지 구경할 수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워낙 가파른 경사였지만 굵은 동아줄과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고, 곳곳에 철계단이 마련되어 있어 1천미터가 넘는 산치고는 별로 힘들지 않게 오를 수가 있었습니다. 땀을 식힐 때마다 연신 그랜드캐년이 어디서 나타날까 두리번 거리면서 산을 올랐습니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도록 그랜드캐년 비슷한 모습도 볼 수 없었습니다. '친구에게 실망이 큰 것은 바라는 것이 많기 때문'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보잘 것 없는 덕항산 정상을 밟고 실망을 가득 안은 채 지각산을 거쳐 하산하다가 놀라운 풍경을 보고 입이 벌어졌습니다. 정말 그랜드캐년을 방불케하는 덕항산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덕항산에서 보고 실망한 것은 지각산의 모습이었습니다. 지각산에서 보아야 진정한 덕항산의 자태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왜 못 깨달았을까요? 덕항산을 밟고 서서 덕항산의 모습을 보려한 사봉의 어리석음이여! 내 발 아래 행복의 항아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 준 덕항산이 어찌 `으뜸 친구`가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