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by sabong posted Jan 01,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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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가을이 되니 더욱 전원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시간과 돈이 허락하면 전원에 가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꽃 한송이가 앞뜰의 화단이고 화분 하나가 뒤뜰의 터밭인 도시인들에게 전원주택의 열쇠는 천국 열쇠만큼이나 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 신문에 보니 전라남도 장성에 있는 평범한 공무원 한분이 축령산 자락에 '세심원(洗心院)'이라고 이름 붙인 황토집을 하나 지어놓고 100개의 열쇠를 만들어 주변 친지들에게 무료로 하나씩 나눠주었다고 합니다.  5년이 좀 지났는데 세심원을 다녀간 사람이 5천명이 넘는다고 하네요. 나그네가 5천명이 다녀간 집이 온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세심원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니 입구에 달려 있는 현판에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라고 써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집이 멀쩡한 것을 보면 정말로 그 많은 사람들이 '아니 간 듯 다녀 온' 모양입니다. 저도 언젠가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것이 내게도 좋은 일'이라고 하며 세심원을 지어 놓은 장성의 변도해(51)님을 따라해보고 싶습니다.

몇 년 전 저의 친한 친구가 강원도 횡성에 전원주택을 마련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곳에 마련한 그림같이 아름다운 집입니다. 노후에 그곳에 가서 살 생각으로 지은 집인지라 아주 정성을 들여 지은 집입니다. 장성의 세심원과 마찬 가지로 횡성의 그 전원주택을 많은 친지들에게 무료 개방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친구를 만났더니 이제 더 이상 그 집을 무료 공개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하겠다고 했습니다. 친구 내외가 두어달 만에 가보니 여름 내내 들락날락했던 많은 사람들이 집안 이곳저곳 많이 망가뜨려 놓았더랍니다. 그곳에도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라고 간판을 걸었으면 좀 나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푸른 지구별은 우주의 전원주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구별에 사는 나그네들이지요. 날이 갈수록 푸른 지구별이 황폐하여 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되돌아 보니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마음에 두고 살아 온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이 푸른 지구별에 아니 온 듯 다녀갈 수 있도록 마음을 고쳐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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