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술보

by sabong posted Jan 01,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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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보

보통 사람들은 오장육부를 가지고 있는데 놀부는 오장칠부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놀부에게는 심술이 가득 들어 있는 '심사부(心思腑)'라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이 왼쪽 갈비뼈 아래 달려 있어 밖에서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요즘은 흥부보다 놀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같은 산업사회에서 흥부처럼 욕심없이 사는 것은 경쟁을 포기하는 것이며 무능력한 가난뱅이가 되는 첩경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제비다리를 치료해주고 얻은 박씨로 인하여 일확천금을 하는 것은 땀흘려 일하지 않고 일순간에 부자가 되는 것이니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먹여 살릴 수도 없는 처지에 애까지 많이 낳은 것도 무책임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한 면만 보면 그럴듯한 논리라서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는 은근히 놀부처럼 사는 것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놀부의 심술보가 하던 일과 흥부의 하던 일을 기억해봅니다. 놀부의 심술보가 하던 일은 초상난 데 노래하고, 역신 든데 개잡기와 남의 노적에 불지르고, 가뭄 농사 물꼬 베기, 불붙은 데 부채질, 길 가운데 허방 놓고, 외상 술값 억지 쓰기, 소경 의복에 똥칠하기, 배 앓이 난 놈 살구 주고, 잠든 놈에 뜸질하기, 닫는 놈에 발 내치고, 곱사등이 잦혀놓기, 맺은 호박 덩굴 끊고, 패는 곡식 모가지 뽑기...  흥부가 하던 일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존경하며, 인리간에 화목하고, 친구에게 신의 있어, 굶어 죽게 된 사람에게 먹던 밥을 덜어 주고, 얼어서 병든 사람 입었던 옷 벗어주기, 늙은이의 짊어진 짐 자정하여 저다 주기...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니 왼쪽 갈비뼈 아래 놀부의 '심사부'가 하나씩 달려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간간히 보입니다. 아마 요즘 사람들의 '심사부'는 크기는 놀부의 것과 같게 보이지만 과학, 의학이 발달되었으니 휠씬 업그레이드된 심술보일 것이 틀림없겠지요. 놀부가 다시 태어나면 부러워하며 형님이라고 부를 테지요.

사봉의 아침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