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인고 할아버지
이른 아침, 불암산 자락에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니 오늘도 숨막히는 더위가 계속될 것 같습니다. 동해 바닷가도 며칠째 열대야가 계속된다는 소식을 들으니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이 제일 가는 피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핑계 김에 올해는 사무실에서 '자린고비 피서'로 대신할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실은 '자린고비'가 저희 할아버지 중에 한 분입니다. 제가 한양조씨 25세인데 16세 할아버지 중에 조륵(1649~1714, 륵은 王변에 力을 씀)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이 할아버지의 호가 '자인고(慈仁考)'였고 '자린고비'의 원조였습니다. '자인고 할아버지'는 지나치게 인색하게 사신 덕분에 주위에서 욕을 많이 먹었다고 합니다. 물론 평생 구두쇠로 사신 덕분에 재물을 아주 많이 모았던 모양입니다. 재물이 많다고 존경받는 것은 아니지요. 할아버지는 말년에 3년간 가뭄으로 기근에 시달리던 영호남 1만여 가구에 구휼미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그 정신을 높이 사서 정3품에 해당하는 가자(加資) 벼슬을 내렸으나 이를 사양하였다고 합니다. 장례 또한 검소하게 지내라는 유언을 남기도 돌아가셔서죽은 후에도 자린고비 정신을 실천하였다고 합니다. 그 때 경상도 절라도 현감들이 '자인고비(慈仁考碑)'라는 송덕비를 세운데서 유래가 되어 '자인고 할아버지'를 '자린고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인고 할아버지'가 태어난 음성에 가시면 물론 '자인고비(慈仁考碑)'라고 새겨진 비석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제게 조카벌 되는 성필(成弼)씨가 매년 시제를 올리고 있구요. 음성군에서는 자인고 할아버지의 절약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자린고비 상'까지 제정하였다고 하네요. 지나치게 소비가 얼어붙으면 경제가 얼어붙는다고 하지만 글세요, 요즘 같은 불황을 이겨나가는 길은 전 국민이 자린고비 정신으로 난국을 헤어나가는 길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나라 전체가 자린고비가 되면 부자 나라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너무 주눅 들지 마시고 '자린고비 피서' 계획 세워 산으로 바다로 다녀오세요. 건강해야 풍성한 가을맞이를 하실 수가 있으니까요. 사봉의 아침편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