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뜻을 행하는 지천명

by 思峯 posted Jan 01, 197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하늘의 뜻을 행하는 지천명(知天命)

날씨가 맑겠다더니 장마 구름이 나머지 비를 뿌리고 있는 아침입니다. 각종 관측기구를 동원해도 하늘의 뜻을 잘 몰라서 헛 짚는 일기예보가 나옵니다. 하물며 인간의 일에 관한 하늘의 뜻이야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어제 옛 전우들 20여명이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가끔 보았던 친구도 있었지만 그 중에는 32년만에 처음 만난 친구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공통점은 ROTC 장교라는 것, 병과가 포병이라는 것 그리고 통역장교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30년의 세월을 한순간에 훌쩍 뛰어 넘기에 충분한 공통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또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감색 양복에 흰색 긴팔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평생 유니폼인 셈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런 유니폼을 입고 모두들 현역에서 사회 이곳 저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식사를 하는 모습에 아직 청년 장교의 기상이 살아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서 KBS 1TV의 '퀴즈 대한민국' 프로그램에서 '퀴즈 영웅'이 되어 5천6백만원의 상금을 받은 아줌마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가십난이 아니라 사설에서 쉰다섯의 주부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최종 학력은 여상(女商) 야간부, 직업은 속옷가게, 통닭집을 하다 그것도 여의치 않아 요즘은 간병인을 하고 있다더군요. '내 나이 쉰다섯, 내 인생의 황금기는 바로 지금'이라는 그녀의 말에 공감이 갔습니다. 지금까지 최 고령의 우승자는 쉰 두 살의 열쇠수리공이었다고 합니다. 그 역시 중학교 졸업 후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대를 나온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퀴즈왕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후, 엊저녁 자랑스럽던 친구들의 모습이 조금은 빛이 바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대로 대학을 나온 통역장교 출신의 친구들이니 하늘의 뜻을 좇아 열심히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에 친구들을 만나면 이렇게 이야기를 할 겁니다.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知天命)'이 아니고, 하늘의 뜻을 행하는 지천명이 되자."
이름도 없고 빛도 없지만, '사오정', '오륙도'에 주눅들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 지천명들이 어디 한 둘인가요? 행동하는 지천명들의 분투에 박수를 보냅니다.  

사봉의 아침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