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를 낮추면 까만색 좋아하세요? 어둡다는 생각 때문에 무겁고 힘든 색깔이라고 하지만, 까만색은 '순수'라는 매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모든 빛을 받아드리고, 뱉어내지 않는다는 매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싸구려 염료로 물들이면 다른 색이 끼어들어 까만색의 '순수'가 깨어집니다. 또한 노란색 원단이 맘에 안든다고 그 위에 까만 염료를 먹여 재활용하는 까만 원단도 순수한 까만색이 아닙니다. 그래서 '순수'의 매력을 가진 까만색은 그리 쉽고 간단한 색깔이 아닙니다.
지난 주에는 구두 전문 인터넷 쇼핑몰에 실릴 3D 입체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분명히 까만색 구두를 찍었는데 컴퓨터 화면에는 영락없는 갈색 구두가 나타난 것입니다. 배운대로 화이트 밸런스도 이리저리 조절을 하여보았고, 조명과 조리개도 조절하여 보았습니다만 헛일이었습니다. 별 수 없이 작가 선생님에게 전화를 해서 문의를 했습니다. 컴퓨터로 제 사진을 본 선생님은 제게 용기를 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잘 찍으셨네요. 거의 푸로급인 걸요.` `별 말씀을요. 그런데 까만 구두를 찍었는데도 자꾸 갈색 구두가 되네요.` `아, 그건 그 구두가 까맣게 보이기는 해도 원래 순수하게 까만색이 아닌 것이지요. 구두 색깔에 갈색이 들어 있는 것이라 그런 것이니 너무 걱정마세요.` `그럼 어떻게 하죠? 까맣게 찍을 수는 없나요?` `한 스톱 혹은 반 스톱 쯤 낮추어 찍어보세요. 조금 어둡게 찍으면 훨씬 까맣게 보일 겁니다. 조명이 너무 밝아서 까만색 속에 숨어있는 갈색이 드러났기 때문에 갈색 구두로 보이는 것이지요.`
조명을 절반으로 줄이고, 간접조명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찍은 구두는 실물처럼 까만색으로 보이는 사진이 되었습니다. 순수하게 까만색이 아니라고 구두를 탓하지 않고, 절제가 무슨 의미인지 깨달을 때마다 사봉의 사진 솜씨가 조금씩 조금씩 늘어 가겠지요. 인생의 맛도 깊어 갈 것이구요. 오늘은 사봉의 어록에 이런 말 하나 추가하렵니다. `불꽃을 높이면 진리가 보이고, 심지를 낮추면 아름다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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