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쵸 앞에서...
간절한 것을 마음에 품고 원한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고
티벳을 가슴에 품은 지 몇 년인가? 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삶에도 변화가 없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이 바뀐다.
왜 사는 것에는 내성이생기지 않는 걸까?
누구나 슬플때가 있는 것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외롭다는게 어떤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아무데도 갈곳이 없고,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이것이다? 라고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이 세상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으며, 삶이란건 거듭되는 과오와 참회의
연속이란 말로 위안을 삼으며, 나는 티벳의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어 떠난다.
서부 티벳지역은 아시아에서도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세계
오지 중의 오지에 속하는 야생지역이다.
티벳은 중국의 서남쪽에 위치하며 1900년대에 들어서며 외세로 인한 많은
혼란을 겪게 된다. 1904년 13대 달라이 라마가 영국의 무력침략으로 인해
몽골로 망명했는가 하면, 1910년에는 만주족의 침공으로 다시 티벳으로
돌아왔던 달라이 라마가 영국령의 인도로 망명하였다.
또 13대 달라이 라마가 죽고 이어 즉위한 14대 달라이 라마도 1950년
중국이 티벳을 무력침공하자 인도로 망명하였다
현재 티벳은 중국의 서장 자치구지만 인도에 망명정부를 가지고 있는 등
정치적으로 불안한 지역이다.
연두색 룽다를 걸고 빌어본다. 이 세상 모든 고통이 없어 지기를...
이기심과 질투로 가득 찬 소원이라 해도 그것은 살고 싶다는,
살아가야 한다는 강한 삶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신의 호흡 - 포탈라궁
포탈라궁은 중국의 제1급 보호문물 가운데 하나로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거대하고 완벽한 고대 궁전 건축물이다.
라싸와 티벳의 상징적 건축물이며 티벳 고대 건축 예술의 금자탑이다.
포탈라궁 궁전은 높이 50m에 이르는 여러 층의 티벳계 대건축물로서
방이 1000 여개가 넘는다. 아래부분은 하얗고 위쪽은 붉은 색을 띠고 있다.
지붕위에 늘어선 황금색 지붕이 중국계 건축을 표현하고 있으며 지금의
궁전은 7세기에 토번왕 송첸캄포가 축조하였다는 홍산궁전의 성에
달라이라마 5세가 17세기 중기에 건설한 것이다. 포탈라궁 내부는
모두 개방되어 있지 않고 표시되어 있는 화살표를 따라 가며 볼 수 있다.
느리게 느리게 걸으면서 야크버터 냄새와 어두컴컴한 미로속을 헤메다 보면
고산증세와 그 장엄함과 화려함과 괴기스러움에 기가 질린다.
사스의 영향으로 관광객이 줄어 70위안이던 입장료가 100위안으로 올랐는데도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10위안을 더 내야 한다.
옥상은 내부와 대조적으로 밝은 세상이어서 미로속을 탈출한 확 트인 또다른
세상이 거기 있었다. 라싸의 신.구시가지와 저 넓은 평야와 낮게 엎드린
설산이 거기 있었다. 수세기 동안 달라이라마의 지혜의 말이 흘러나오던
궁전에 누구나 여행할 수 있지만 달라이라마만은 이곳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포탈라 궁! 아픈 티벳 현대사의 산 증인이다.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한 후,
주인 없는 궁이 되었다
어떤 길을 통하든 라사 진입 후 5분 정도 후에 만나게 되는 포탈라궁의 장엄한
모습에 한번은 넋이 나가게 된다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로 꼽히는 포탈라궁은 라사전역이 내려다보이는
마르포 언덕에 세워져 있다.
포탈라궁을 바라보면 흰색궁과 붉은색궁을
볼 수 있는데 흰색궁은 1649년에 지어진 것이고, 붉은색궁은 1694년에
지어진 것이다.
하지만 흰색궁전은 원형이 아니라 20세기 초 법당을 늘리기
위해 원형을 바꾸며 개축한 모습이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내부는 사진 촬영이 허가된다 하더라도 조명없이는
촬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매우 어둡다.
몇몇 장소에서는 랜턴이 없다면 아예 불상을 보는 것이 힘들 정도다.
또한 내부에선 야크버터를 이용해 태우는 향 때문에 숨을 쉬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미로 같은 내부를 돌아나와 옥상으로 올라가면 황금색으로 장식된
궁의 지붕들과 지붕위에 얹어진 장식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앞에서 말했듯이 포탈라궁의 옥상에선 라사 전역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좁은 통로를 따라 이동하는 내부와는 달리 넓은 옥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촬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이 옥상에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게 된다.
1000개의 방에 빼곡히 안치되어있는 제각기 다른 수천개의 불상들.
태양열을 이용해 물덮히는 무공해 장치
정치와 사회전반의 행사를 주관하던 백궁은 아래에 있고, 종교적인 행사를
진행하던 홍궁은 위층에 설계하여 그들의 정신세계를 더욱 중요시 함을
알수 있었다.
한국어 공부에 열심인 노블링카 사원 스님
우리도 육이오때 이랬어요
엉덩이가 예뻐요
쉐튼절 축제 한마당
Shotun절 축제는
티벳력 7월 첫째주(양력 8-9월)초하루에 시작되는데 마침 15일에
라사에 있었음으로 어렵사리 구경할수 있었다.
새벽 5시에 조캉 바코르광장을 한바퀴 도는데 그때 길거리는
쉐툰절 축제에 참석하기위해 온 가족이 깨끗한 옷을 입고
손에 손 잡고 드레풍 사원에 걸리는 거대한 `탕가` 를 보기위해
가득 메운 인파를 중국 공안원이 사납게 제지하는 모습이
일제 치하에서 우리 선조들의 모습으로 오버랩된다.
아가와 함께 드레풍 사원으로 가는 젊은부부
일명 야쿠르트 축제로 드레풍에서 시작하고 길을 따라 이동하여
노블링카에서 끝난다. 라마와 승려들의 참춤과 오페라 등 다채로운
거리행사를 볼 수 있다
산정상에는 어김없이 룽다가 나부끼고...
8원(1원-150원)을 주고 흩날리는 빗속에 릭샤를 타니 바싹 마르고
외소한 기사의 발놀림이 힘겹다. 그의 삶이 힘겹다
반적반백의 구름이 신비로움을 간직한 채 아침을 열고 있다.
20여분을 달리니 산 중턱에 역대 달라이라마의 모사인 하얀 드레풍 사원이
시야에 들어온다.
우리에게 불교는 종교이기에 앞서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농축된 우리의 삶이요
역사가 아닌가 싶다. 전국 방방곡곡 사찰을 뺀 유적지가 몇 곳이나 될까
헤아려 보면 대답은 자명하다.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곳곳에서 만나는 붉은 복, 황금색 의 승려나 탱화,
부처님(우리와는 분위기가 달라 좀 더 풍만하고 귀족적이지만)은
낯설지 않아 좋다.
드레풍사원은 사원의 규모만으로도 충분한 방문 가치가 있지만,
그보다도 2, 3, 4대 달라이 라마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에 더욱 방문할
가치를 가지게 된다. 한 때 만 명에 달했을 정도로 번성했다는 이 사원은
다른 유적들과는 달리 시내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고소에
적응이 안 된 시기에 무리해서 찾기 보다는 라사에 도착해 어느 정도 고소에
도착한 후 찾는 것이 좋다.
산중턱에 걸리는 거대한 탕가를 보기위해 맞은편 쑥냄새 자욱한 산등성이로
힘겹게 한발 한발 올라갔다.
Thangka(탕카)라는 말의 어원은 티벳어인 `Thang yig`에서 기원한 것으로
그 뜻은 `쓴 기록`이다. 초기에 둘둘 말려진 이 그림들은 귀중한
예술품으로써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기록으로 쓰였다.
인도에서 기원한 탕카는 처음에는 `Wheel of Life`를 그렸으며 이후에는
티벳 불교를 정신적으로 표현하는 쪽으로 발전하였다.
티벳 유목민족의 종교적인 행사에 사용되기 위해 운반을 하며 이동 되다보니
티벳 전체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일가족의 탕가를 향한 염원이 꼭 이루어 지길 빌어본다.
세라사원의 뒷 마당에 있는 불상들. 바위를 깎아 조각을 하고
색을 칠해 완성했다.
賢앎

1970.01.01 09:33
타르쵸!! (티베트 2부)
조회 수 846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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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길을 찿아 떠난 여정에 너무 많은 선물이 있었읍니다. 고맙습니다. 향기님
여기 들렀다가 아래 1부에 가서 2번 보고 다시 와서 2번 보고 리플달고 나가다가 컴이 말썽을 일으켜서 다시 들어와서 또 보고 날아간 것 대신 또 다른 리플을 달게 되었네요.
누리가 보기에는 누추해보이고 힘겨워 보이지만 이네들이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다고 들었습니다. 행복은 환경에 있는 게 아니고 마음에 있는 게 확실한가 봅니다
선배님 여행기들을 책으로 내셔도 좋을 것 같아요. 2부에서 끝난 것 같지가 않은 데 언제 3부가 올라올지 기다려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