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천 피씨 ]
1> 시조 : 피위종[皮謂宗]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홍천(洪川)은 강원도 중서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벌력천현인데,
신라 때는 녹효로 고쳐 삭주의 영현이 되었다가 1018년에 홍천이라 개칭하였고,
1413년(태종13)에 홍천현이 되었다가 1895년에 춘천부 홍천군이 되었다.
홍천피씨(洪川皮氏)의 시조는 원나라에서 금오위 상장군을 지낸
피위종(皮謂宗)으로 전한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고려 충렬왕때 동국 안렴사로
우리나라에 왔다가 풍물에 정이 들어 귀화하게 되었는데, 충렬왕이 크게
기뻐하여 병부시랑을 제수하였고, 뒤에 좌사의대부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맏아들 인선(寅善)이 정당문학. 좌복야 등을 지낸후 홍천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홍천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잇게 되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인선(寅善)의 아들 맹문(孟文)이 승지를 지냈고,
손자 원휴(元休)는 한림학사를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으며,
고려 말에 순창 현령으로 나간 원량(元亮)은 재임기간 동안 왜구(倭寇)
방비에 힘썼다.
조선 헌종때 학자로 유명한 병추(秉樞)는 학문이 깊고 문장에 뛰어나
명망이 높았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홍천피씨(洪川皮氏)는
남한에 총 312가구, 1,26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괴산 피씨 ]
1> 시조 : 피득창[皮得昌]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괴산(槐山)은 충청북도 중앙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지대에는
잉근내군이라 하였으며, 신라시대에는 괴양군, 고려시대에는 괴주군으로
개칭하였다.
1403년(태종3)에 괴주지사로 고쳤으며, 1413년에 분리하여
괴산군이라 고쳐 불렀다.
홍천피씨에서 분적된 계통으로 알려진 괴산피씨(槐山皮氏)는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병조판서와 전라 감사 등을 지낸 시조
피득창(皮得昌)이 괴산에 정착세거하면서 후손들이 괴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득창(得昌)의 아들 강지(康芝)가 장령을 지냈으며,
손자 정(釘)이 진사를 증손 소(燒)는 목사를 역임하여,
판서에 오른 후손 홍군(洪君), 통덕랑 경송(卿松), 방어사 동현(洞鉉) 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그외 통정대부 종남(宗南)과 판관 세만(世萬), 통사랑 세담(世淡)이 유명했으며,
효자로 향민의 칭송을 받은 운손(雲遜), 통덕랑 경우(景祐), 참봉 봉준(鳳俊)
등이 가문을 빛낸 후손들이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괴산피씨(槐山皮氏)는
남한에 총 588가구, 2,41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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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이러하거늘~~~~'쏴~~~ㅅ!'해서 얻은 거라면 올매나 섭하겄시유?
더구나 피천득 교수님 아들인 피세영님은 우리 선배님이신디요 .
덕재 후배님 빠따 30대는 따 놓은 당상이유....하하하 ^^ 각설하고.....
하루에 수 십개의 글을 거침 없이 올려 놓는 후배라 여태껏 인사도 못했는데
암튼 반갑습니다. 이걸로 인사에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