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인 우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그리며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 왔다.
처음 생각한 꿈속에는 배고픔 없고 물질적인 풍요만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에 살면서 자유와 평화, 공존이 그 꿈속에 녹아 있음을 깨쳤다.
한가한 날 공원에 가면 생김새나 옷차림이 전혀 다르면서도 이웃 삼아 사이좋게 어울려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아프리카 흑인, 백인, 아시아, 남미 어린이들이 멋대로 어울려 신나게 놀고있다.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이런 것이 아닐까?
이 나라 저 나라의 도시를 여행하는 이들도 이구동성으로 뉴욕처럼 세계 사람이 별 차별 없이 공존하는 곳은 없다고 한다. 바로 그런 점이 미국의 매력이요, 뉴욕커의 프라이드라 여긴다.
그런 미국에 이상한 구름이 드리워져 가고 있다.
배시언 목사는 `석유 시장`이라는 제목의 글(뉴욕 중앙일보 3/19/03)의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다.
`필자는 일생을 성서 예언 연구에 가까이한 성경학도로서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세계를 제패할 맹주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발판을 공고히 하게 됨을 의심치 않는다.
미국은 성서 예언상의 마지막 패권 국가니까.`
패권 국가란 무력이나 경제적인 힘으로 다른 나라를 정복하려는 국가다. 대표적인 예로 로마 제국을 자주 인용한다. 로마 제국과 현 미국의 한 단면을 비교해 보면,
로마 시대는 대중 교육과 매스컴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기에, 로마 시민이라 해도 정확한 많은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고 있었다. 해서 로마 군대에 의해 저 변방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상처를 입고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소문만 나돌았을 뿐이다.
지금은 어떤가.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동 시간대에 전 세계에 영상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을 위시한 적지 않은 정부가 미국 정부의 군사 정책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 나라의 정치적 경제적인 사정 때문으로 그곳 시민들은 거침없이 반전(NO WAR!) 구호를 외치며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훗세인 정부는 물러가야 하는 게 이라크는 물론 이웃 나라를 위해서 백 번 타당하다고 하나, 미국이 무력을 앞세운 강제적인 방법에는 분명히 노우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자기 이익에 별 관계없이 보이는 미 공격에 저토록 반대를 표시하는 건가. 우리가 보는 아메리칸 드림인 자유와 평화, 공존을 그들 또한 자기 나라와 세계에서 바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제 시민이란 한 나라의 시민이자 곧 세계의 시민이다.
쿠웨이트를 침공한 훗세인 군대에 대한 미국의 맹공격에 대해 당시 세계 시민은 거의 침묵을 지켰다. 폭력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찬성하지는 않지만, 이웃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강제하려던 훗세인의 방법을 묵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배 목사의 지적처럼 이번 전쟁은 석유 이권을 거머쥐려는 속셈으로 부시 정부가 일으킨 것이라면, 필연이라 해도 그에 동조하는 것이 과연 아메리칸 드림에 부합하는 일일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고 외치던 미국의 건국 선조들에게 자유란 영국인의 입장이 아닌 식민지하에 있던 미국인 입장에서의 자유였다. 그처럼 이라크의 자유란 이라크인 입장에서 자유여야 한다.
미국에 사는 나는 미국이 앞으로도 세계의 강국으로 올바른 면모를 지켜가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뉴욕의 시민으로 대접한다면 기쁘게 받아들이겠지만, 패권국가의 시민으로 눈 대접받을 생각은 전혀 없다.
처음 생각한 꿈속에는 배고픔 없고 물질적인 풍요만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에 살면서 자유와 평화, 공존이 그 꿈속에 녹아 있음을 깨쳤다.
한가한 날 공원에 가면 생김새나 옷차림이 전혀 다르면서도 이웃 삼아 사이좋게 어울려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아프리카 흑인, 백인, 아시아, 남미 어린이들이 멋대로 어울려 신나게 놀고있다.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이런 것이 아닐까?
이 나라 저 나라의 도시를 여행하는 이들도 이구동성으로 뉴욕처럼 세계 사람이 별 차별 없이 공존하는 곳은 없다고 한다. 바로 그런 점이 미국의 매력이요, 뉴욕커의 프라이드라 여긴다.
그런 미국에 이상한 구름이 드리워져 가고 있다.
배시언 목사는 `석유 시장`이라는 제목의 글(뉴욕 중앙일보 3/19/03)의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다.
`필자는 일생을 성서 예언 연구에 가까이한 성경학도로서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세계를 제패할 맹주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발판을 공고히 하게 됨을 의심치 않는다.
미국은 성서 예언상의 마지막 패권 국가니까.`
패권 국가란 무력이나 경제적인 힘으로 다른 나라를 정복하려는 국가다. 대표적인 예로 로마 제국을 자주 인용한다. 로마 제국과 현 미국의 한 단면을 비교해 보면,
로마 시대는 대중 교육과 매스컴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기에, 로마 시민이라 해도 정확한 많은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고 있었다. 해서 로마 군대에 의해 저 변방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상처를 입고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소문만 나돌았을 뿐이다.
지금은 어떤가.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동 시간대에 전 세계에 영상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을 위시한 적지 않은 정부가 미국 정부의 군사 정책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 나라의 정치적 경제적인 사정 때문으로 그곳 시민들은 거침없이 반전(NO WAR!) 구호를 외치며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훗세인 정부는 물러가야 하는 게 이라크는 물론 이웃 나라를 위해서 백 번 타당하다고 하나, 미국이 무력을 앞세운 강제적인 방법에는 분명히 노우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자기 이익에 별 관계없이 보이는 미 공격에 저토록 반대를 표시하는 건가. 우리가 보는 아메리칸 드림인 자유와 평화, 공존을 그들 또한 자기 나라와 세계에서 바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제 시민이란 한 나라의 시민이자 곧 세계의 시민이다.
쿠웨이트를 침공한 훗세인 군대에 대한 미국의 맹공격에 대해 당시 세계 시민은 거의 침묵을 지켰다. 폭력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찬성하지는 않지만, 이웃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강제하려던 훗세인의 방법을 묵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배 목사의 지적처럼 이번 전쟁은 석유 이권을 거머쥐려는 속셈으로 부시 정부가 일으킨 것이라면, 필연이라 해도 그에 동조하는 것이 과연 아메리칸 드림에 부합하는 일일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고 외치던 미국의 건국 선조들에게 자유란 영국인의 입장이 아닌 식민지하에 있던 미국인 입장에서의 자유였다. 그처럼 이라크의 자유란 이라크인 입장에서 자유여야 한다.
미국에 사는 나는 미국이 앞으로도 세계의 강국으로 올바른 면모를 지켜가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뉴욕의 시민으로 대접한다면 기쁘게 받아들이겠지만, 패권국가의 시민으로 눈 대접받을 생각은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