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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2002년 05월 11일 (토) 11:24

한나라당 이회창,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다른 점이 참으로 많다.성장 배경과 정치적 성향이 확연히 다를 뿐 아니라 두 사람을 떠받치고 있는 핵심참모와 지지계층도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이 때문인듯 주요 국가정책에 대한 두 후보의 시각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국민일보는 건전한 선거문화 정착을 위해 대통령 후보를 철저하게 검증해온 방침에 따라 두 후보의 성장배경과 정책 등을 심층비교,분석했다.

◇성장배경=이후보와 노후보는 똑같이 법조인 정치인이지만 개인사는 뚜렷하게 대비된다.이후보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가 출신으로 화려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반면 노후보는 가난 속에서 상고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했다.이후보는 화려하게 정치에 입문한 뒤 당 총재로서 확고한 기반을 구축했으나 노후보는 주요 선거에서 네번이나 낙선하는 쓰라린 경험 속에 뚜렷한 지지세력 없이 활동했다.

이후보는 1935년 황해 서흥에서 태어났다.검사인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옮겨다녔지만 본적은 선영이 있는 충남 예산이다.이후보의 형제와 삼촌들은 모두 학계 법조계에서 두각을 나타냈고,외삼촌 3명이 모두 국회의원을 지냈을 정도로 외가쪽도 명문이다.경기고를 거쳐 서울법대에 입학한 그는 대학 4학년때 고시에 합격했다.졸업 후 공군법무관으로 근무했고,이후 30여년간 사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후보가 정치와 인연을 가진 것은 1993년 문민정부 출범 때 감사원장을 맡으면서다.이후보는 국방부 율곡사업에 대한 전면감사로 국민들의 갈채를 받았다.그해 12월 총리로 전격발탁됐으나,김영삼 대통령과 의견이 맞지 않아 4개월만에 그만뒀다.본격적인 정치활동은 1996년 4·11 총선을 앞두고 신한국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입당하면서 시작됐다.이후보는 2001년 재산공개때 12억4500여만원을 신고했다.세금은 소득세 560여만원을 냈다.

노후보는 1946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집안이 어려웠던 그는 중학교 입학금을 마련하지 못해 고생했고,장학금을 받으려고 부산상고에 진학했다.고교 졸업 후 부산과 울산 등지에서 막노동도 했다.노후보의 인생이 크게 바뀐 것은 법대를 졸업한 큰형을 따라 사법고시 준비를 하면서부터다.

육군 사병으로 군대에 다녀와 고시준비중에 결혼했다.1975년 마침내 사법고시에 합격,대전지법 판사로 임용됐고 곧바로 변호사로 나섰다.노후보는 1981년 부산대 양서조합사건(부림사건) 변론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가 됐다.독재정권에 맞서다 고문당한 학생들을 만나면서 사회문제에 눈을 뜬 그는 공해문제연구소,부산민주시민협의회,국민운동 부산본부 등에서 적극 활동했다.

1988년 국회의원에 당선돼 5공비리 청문회에서 ‘청문회 스타’로 전국적인 인물이 됐다.이후 노후보는 낙선을 거듭하면서도 야권통합과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노력해왔다.2001년 재산공개 때 7억9800만원을 신고했고 세금은 163만원을 냈다.

◇국정운영 경험=이 역시 판이하게 다르다.이후보가 사법부 요직을 거쳐 감사원장 국무총리 등을 지낸 반면 노후보는 해양수산부 장관을 잠시 지낸 경력뿐이다.일하는 스타일도 이후보는 원칙을 중시하며 꼼꼼하고 치밀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노후보는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실용적 취향을 보이며 현장을 강조한다.

이후보는 1960년 판사로 임관한 뒤 1993년 대법관을 그만둘 때까지 2년여동안 변호사 생활을 제외하고는 30년 넘게 사법부에서 근무했다.사법부를 떠난 뒤에는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지냈다.인생의 절반을 공직자로 보낸 것이다.집권 여당의 총선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정치에 입문한 뒤 총재와 대통령 후보를 거쳤고 1997년 대선 이후에는 원내 제1당의 총재로 수많은 도전세력을 물리치고 기반을 다져왔다.

30여년의 판사생활을 통해 이후보는 법과 원칙을 지키고 꼼꼼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을 확립했다.그러나 이후보는 국무총리 재직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총리 권한문제로 갈등을 빚자 미련없이 총리직을 내던지는 등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을 용납하지 않는 과감함을 보이기도 했다.대법관 시절 누구보다 많은 소수의견을 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노후보는 사법연수원 졸업 직후 판사생활 9개월과 2000년 8월 시작한 해양부 장관 8개월이 공직생활의 전부다.1988년 정치에 입문했지만 정작 국회의원 생활은 13대 4년,1998년 보궐선거 당선 이후 1년 10개월밖에 못했다.노후보에게 국정수행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따라다니는 이유다.그러나 노후보는 짧은 장관 재임기간 이런 의구심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다.

부하직원과 끊임없는 토론과 E메일 교환을 통해 의사소통을 이루고,불필요한 격식과 의전을 과감히 없애 공무원들이 스스로 업무에 책임지도록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특히 노후보는 이해가 상충하는 당사자들에게 타협안을 제시하고 설득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이는 그가 지역과 계층통합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참모 및 지지계층=핵심 참모그룹과 지지계층의 대비도 뚜렷하다.이후보는 지난 3년 9개월 동안 당 총재를 지낸 만큼 당의 모든 공조직이 친위세력이다.국회의원으로는 박관용 김용환 강재섭 등 중진과 서청원 김무성 등 민주계,남경필 오세훈 등 신진그룹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윤여준 고흥길 이원창 의원과 이병기 박진 양휘부 이종구 특보,유승민 전 여의도연구소장 등이 그림자 보좌를 하고 있다.

후원회인 부국팀은 회원이 15만명이나 돼 사실상 대선 외곽세력 역할을 하고 있다.이정락 변호사가 회장,이흥주 특보가 총괄책임을 맡고 있다.당내 국가혁신위와 국책자문위는 물론 외곽의 경기고-서울법대 학맥과 법조계 인맥이 이후보를 둘러싸고 있다.대선캠프에는 40대 소장파 학자와 실물경제인 등이 대거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보 지지계층은 역시 범 보수세력이 근간이다.지역적으로는 영남권,연령별로는 50대 이상 장년층에서 노후보를 압도하고 있다.

노후보는 당 장악력이 떨어지는 대신 386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실무진과 민주화운동 및 재야세력,꼬마민주당 인사들이 핵심 참모그룹을 형성하고 있다.1993년 출범한 지방자치연구원이 노후보 인맥의 모체다.정윤재 위원장(부산사상을),이광재 기획팀장,안희정 행정지원팀장,김만수 공보팀장,서갑원 정무특보,황이수 홍보정책팀장 등이 대표적 초기 멤버다.유종필 공보특보는 노후보의 입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국민대 김병준 교수는 1700여명에 달하는 온라인 정책자문단을 이끌고 있다.

당내에는 김원기 정대철 이해찬 신기남 추미애 천정배 이재정 임종석 의원이 지지세력의 축을 이루고 있다.신상우 이기택 전 의원 등 부산상고 출신 정치인과 동창회의 지원이 대단하다.자발적인 인터넷 지지모임인 노사모가 회원수를 계속 늘려 4만명을 넘어섰고,노문모(문화예술인 모임)와 노변모(변호사 모임)도 생겼다.지역적으로는 호남,연령별로는 20대와 30대에서 지지가 압도적이다.

◇주요 정책=각종 현안과 정책에 있어 두 사람간의 호·불호,찬성·반대의 입장차이가 분명한 부분도 수두룩하다.특히 남북관계,경제기조,재벌정책 등은 노선이 선명하게 구분된다.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올 대선은 적과 아군이 확실히 구분되는 선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우선 외교·국방과 남북문제를 보면 두 후보가 보수와 진보로 확 갈린다.대미관계에 대해 이후보는 한·미동맹에 기초한 긴밀한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노후보는 “사진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고 말한 데서도 나타나듯 수평적이고 대등한 협력관계를 주장하면서 자주성을 앞세운다.

햇볕정책에 대해 이후보는 현 정권의 대북지원을 퍼주기라고 비판하면서 투명성-검증-국민적 합의라는 3대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전략적 상호주의를 주장한다.이에 비해 노후보는 “햇볕정책은 민족의 생존과 번영에 절대적 조건”이라며 계승,발전을 주장한다.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보안법과 관련,이후보는 인권침해 우려를 인정하면서도 법 해석을 통해 충분히 보완이 가능하다며 개정 반대 입장이다.반면 노후보는 반민주악법이며 폐지해도 상관없고 대체입법으로 보완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경제운용 기조에 있어 이후보는 성장을,노후보는 분배에 중점을 두고 있다.이후보는 앞으로 20년간 연 6% 이상의 성장을 공약으로 내걸었다.성장이 있어야 일자리도 있고,복지에 쓸 돈도 생긴다는 것이 이후보 주장이다.노후보는 복지정책을 통한 소득분배를 강조한다.따라서 빈부격차 완화를 위한 기초생활보장제 대상자 확대,농가소득 보전,서민위주의 주택공급 등을 약속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해서는 두 후보가 모두 규제완화를 얘기하고 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시각차가 크다.출자총액 제한과 기업집단 지정제에 대해 이후보는 완화 및 궁극적 폐지를 주장하지만 노후보는 풀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노후보는 또 재벌의 횡포와 불공정,재벌세습의 시정을 강조하고 있다.

이후보는 공공부문 민영화에 대해 철저한 사전준비와 노사합의를 전제로 찬성하고 있다.그러나 노후보는 철도와 전력 등 공공성이 강한 부문의 민영화에는 부정적이다.

노사관계도 두 후보의 입장차가 선명하다.이후보는 노사관계에 법과 원칙을 강조,사용자의 불법노동 행위와 근로자의 불법파업 행위에 모두 단호히 대처한다는 입장이다.또 노사정위 폐지를 약속했다.반대로 노후보는 노사정위를 실질적인 사회협약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대통령이 되어도 노사갈등의 현장을 찾아가 현장중재를 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사교육비를 절감하고 저소득·소외계층의 교육비 지원에는 두 후보가 모두 동감하고 있다.이후보는 고교평준화의 기본틀은 유지하되 학생과 학부모에 선택의 폭을 넓히는 방안을 구상중이다.노후보는 특목고 영재학교 자립형 사립고를 활성화해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포부다.의약분업에 대해 이후보는 객관적 실태 조사와 장단기 대책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했고,노후보는 기조를 유지하되 문제점은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박주호· 고승욱기자 jh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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