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신호대기에 걸렸습니다.
무심코 옆의 한길을 보는데
보도블럭을 뚫고
꽤 높게 자란
꽃 한송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먼지를 쓴채로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보는데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너 참 장하구나`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감옥에서는
요리책과 여행기가 인기라고 합니다.
듣고보니
아하! 그렇겠구나 하고 이해가 가더군요.
우린 그렇게
지금 내게 없는 것
당장은 아무리 애써도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것들에
애착을 갖곤 합니다.
그런 애착도 없다면
희망 또한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일까요?
희망에 관해서 이야기하다가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는 지난 몇년간
말할 수 없는
생의 간난신고를 겪은 사람입니다.
그가 아는 사람 중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이 엄마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나빠질 때마다
그는 그 젊은 엄마를
떠 올린다고 합니다.
`내 절망이 아무리 크다 한들,
아직 어린 두아이의 손을 놓고
영원히 눈을 감아야 했던 사람의
그것에 비할까하는 생각을 하면
정말 마음이 아파
그러면서 내게 주어진 삶에 대해
숙연해지곤 해`
그 친구의 말입니다.
어떤 주부는 승진 못하는 무능력한 남편,
공부 안하고 속만 썩이는 아이들 때문에
사는게 너무 불행하다고 한탄하곤 했습니다.
참지 못하고 화만 냈더니
남편이고 아이들이고
자기를 무슨 마녀 보듯 한다고도 했습니다.
전 그에게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들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만 낮추어 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말대로 했더니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지더라고 했습니다.
우선 자기가 화를 덜내니
남편도 아이들도 명랑해지고
집안 분위기도 밝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청소를 하다가 창가에 서 있는데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왔다고 합니다.
그 순간 깨달았답니다.
`이렇게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는 걸요.
더 이상 욕심내고 바라는 건
사치일 뿐이라는 것도요`
전 이따금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선택권이 있다면
그건 주어진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안에서 주님의 평안과 위로를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하고요.
그러면 언젠가
하느님께서는
연약한 모습 그대로
살아 오느라 애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시지 않을까요?
`너 참 장하구나, 참 잘 견디며 살아 왔구나`
내가 당신이 필요할 때
내게로 와주는 당신이 고맙습니다
서울 주보 (연중 제20주일) 에서
☆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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