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금>
1
지하철 6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탔다. 6시 58분 강변역 도착 예정이다. 동서울 터미널에 먼저 도착한 총무와 통화를 했다. 차는 7시 출발 시각이 되면 출발을 할 것이라고 한다. 강변역을 급히 빠져나와 역 건물 맞은편에 있는 주유소에서 백무동행 버스를 기다렸다. 5분 후에 차가 와서 내 앞에 멈춰섰다. 차 안에서 심총무와 이헌태 동지가 반갑게 맞았다. 1진은 우리 셋 뿐이다.
어제 새 대통령 탄생을 보며 철야근무를 하고 잠은 두어시간도 못 잤다. 팩소주를 마시고 눈을 붙였다가 떠보니 차는 벌써 함양땅을 들어서고 있었다. 함양에서 열 두어명의 손님이 내리고 우리 셋만 남았다. 지리산을 능선 북쪽으로 `안지리’ 바다쪽으로는 `바깥지리’로 나누기도 하는데 버스는 어둠을 뚫고 안지리 깊숙이 자리잡은 마천면 강청리 백무동(白武洞)까지 들어가 우리를 내려 놓았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이 맑다. 열이레 달빛의 위용에 별들은 모두 주눅이 들어 있고 어둠에 파묻힌 백무동 골짜기는 하늘까지 울리는 물소리 뿐이다. 이곳이 바로 玄牝之門(현빈지문)일까. 세상사 인연에 얽매이지 않고 자급자족하며 사는 삶의 틀을 깨닫는 것을 부처는 해탈이라고 하였고, 노자 할아방은 ‘현빈’이라 하였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신이 죽지 않는 골짜기가 있으니 이를 현빈이라 하며 현빈으로 가는 문은 천지의 뿌리이다)
세상사 복잡한 인연을 떨치고 함양땅 지리산으로 들어온 우리는 이미 현빈지문을 들어선 것일까.
미리 예약해둔 민박집에 짐을 풀고 급한 골짜기의 물살소리를 옆에 둔 정원에서 한밤중 가든파티를 차렸다. 삽겹살에 김치와 싱건지가 전부였는데 싱건지 맛은 우리 모두의 찬탄을 자아냈다. 무와 물과 소금의 공간적 결합이 적절한 시간을 거치는 가운데 절묘한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시공을 초월한 오묘한 맛을 내고 있다. 우리 3인은 이 싱건지를 더 퍼다 마시며 속세에서 이리저리 왜곡된 속을 깨끗하게 평정하였다.
“백무동 싱건지여, 너를 잊지 않으마.”

2
<12월 21일>
지리산의 정기가 듬뿍 담긴 시레기국과 반찬에 밥을 한 그릇씩 다 비우고 입산을 시작하였다. 9시이다. 늦은 출발이다. 지난 10월 27일에 갔었던 천왕봉~장터목 구간을 이어 장터목에서 이어가기를 진행하여 세석평전을 거쳐 벽소령까지가 오늘 가야 할 구간이다. 벽소령에서 밤 10시경에 2진과 합류하고 이튿날 새벽 2시경에 3진과 합류한 다음 지리산 구간을 계속하여 성삼재까지 가는 것이 이번 3회차 한걸음의 행보다.
백무동에서 장터목으로 오르는 5.8km 구간은 땅기운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오르며 만난 바위는 하동바위와 망바위 둘뿐이었다. 두텁게 쌓인 흙을 밟으며 오르는 등산로 양편은 나무들의 전시장과도 같았다. 진주산업대학에서 나무들에 이름표를 붙였는데 이헌태 동지가 기자 출신답게 이를 하나하나 수첩에 적었다. 이를 들여다 보니,
노각나무, 개비자나무, 개옻나무, 고광나무, 당단풍나무, 서어나무, 고로쇠나무, 박달나무, 까치박달나무, 들메나무, 신갈나무, 느티나무, 산벚나무, 옻참나무, 물푸레나무, 두릅나무, 사스래나무, 나래회나무, 부게꽃나무, 피나무, 팥배나무, 숫명다래나무, 생강나무, 개회나무, 쪽동백나무, 비목나무, 호랑버들나무, 거제수나무, 참회나무, 박쥐나무, 노린재나무, 바위말발도리나무, 귀룽나무, 철쭉나무, 진달래나무, 함박꽃나무, 마가목나무, 찰피나무, 국수나무, 병꽃나무, 조선까치밥나무, 싸리나무, 참개암나무, 시닥나무, 야광나무.........
이들은 모두 잎들을 떨어뜨리고 홀홀 서있는 낙엽수들이다. 지구상에서 이러한 낙엽수림의 분포지역은 그리 넓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는 소나무가 아니고 참나무라고 한 어느 식물학자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땅에 떨어져 쌓인 낙엽은 땅을 기름지게 만들 것이다. 우리 땅의 생산력이 높음을 이제 알겠다. 장터목까지 오르는 동안 소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거제수나무라는 아주 특별한 나무를 만났다. 이 나무는 대패밥보다도 얇게 껍질이 한겹씩 벗겨지는데 이 껍질은 물의 접근을 전혀 허용치 않아 물 속에 담갔다가 꺼내어도 불에 붙는다고 한다.
중턱쯤 올라 목이 마른 차에 샘을 만났다. 참샘이라는 아주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물맛이 꿀맛처럼 달고 시원했다. 온갖 나무들과 풀뿌리를 적시고 지하에 괴어 있다가 분출되는 것이어서 문자 그대로 약수일 터이다.
해발 1,312미터의 소지봉에 도달했다.
`종이를 태우는 봉우리라는 뜻인데.... 백무동 골짜기에서 백일기도를 마친 무당이 본시 천왕봉에 올라 소지를 해야 마땅하나 여기가지만 와서 소지를 한 것일까`
백무동은 옛날에 백무동(百巫洞)으로도 불렸다. 이성부 시인의 시를 읽어보자.
내 어린 시절 짝사랑했던 가시내가
커서 당골네가 되었다는 소문을 떠올리며
백무동 골짜기 내려간다
이리저리 차이는 돌밭길에 거친 인생에
발가락 아픈 것도 잊어버린 채
문득 우리 할매도 당골네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내려간다
됫박에 쌀 담아들고
놋그릇에 쏟아부어
삼베로 감싸 내 아픈 배 문질러주시던 할매
쌍칼을 들고 늬 뱃자국을
1
지하철 6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탔다. 6시 58분 강변역 도착 예정이다. 동서울 터미널에 먼저 도착한 총무와 통화를 했다. 차는 7시 출발 시각이 되면 출발을 할 것이라고 한다. 강변역을 급히 빠져나와 역 건물 맞은편에 있는 주유소에서 백무동행 버스를 기다렸다. 5분 후에 차가 와서 내 앞에 멈춰섰다. 차 안에서 심총무와 이헌태 동지가 반갑게 맞았다. 1진은 우리 셋 뿐이다.
어제 새 대통령 탄생을 보며 철야근무를 하고 잠은 두어시간도 못 잤다. 팩소주를 마시고 눈을 붙였다가 떠보니 차는 벌써 함양땅을 들어서고 있었다. 함양에서 열 두어명의 손님이 내리고 우리 셋만 남았다. 지리산을 능선 북쪽으로 `안지리’ 바다쪽으로는 `바깥지리’로 나누기도 하는데 버스는 어둠을 뚫고 안지리 깊숙이 자리잡은 마천면 강청리 백무동(白武洞)까지 들어가 우리를 내려 놓았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이 맑다. 열이레 달빛의 위용에 별들은 모두 주눅이 들어 있고 어둠에 파묻힌 백무동 골짜기는 하늘까지 울리는 물소리 뿐이다. 이곳이 바로 玄牝之門(현빈지문)일까. 세상사 인연에 얽매이지 않고 자급자족하며 사는 삶의 틀을 깨닫는 것을 부처는 해탈이라고 하였고, 노자 할아방은 ‘현빈’이라 하였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신이 죽지 않는 골짜기가 있으니 이를 현빈이라 하며 현빈으로 가는 문은 천지의 뿌리이다)
세상사 복잡한 인연을 떨치고 함양땅 지리산으로 들어온 우리는 이미 현빈지문을 들어선 것일까.
미리 예약해둔 민박집에 짐을 풀고 급한 골짜기의 물살소리를 옆에 둔 정원에서 한밤중 가든파티를 차렸다. 삽겹살에 김치와 싱건지가 전부였는데 싱건지 맛은 우리 모두의 찬탄을 자아냈다. 무와 물과 소금의 공간적 결합이 적절한 시간을 거치는 가운데 절묘한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시공을 초월한 오묘한 맛을 내고 있다. 우리 3인은 이 싱건지를 더 퍼다 마시며 속세에서 이리저리 왜곡된 속을 깨끗하게 평정하였다.
“백무동 싱건지여, 너를 잊지 않으마.”

2
<12월 21일>
지리산의 정기가 듬뿍 담긴 시레기국과 반찬에 밥을 한 그릇씩 다 비우고 입산을 시작하였다. 9시이다. 늦은 출발이다. 지난 10월 27일에 갔었던 천왕봉~장터목 구간을 이어 장터목에서 이어가기를 진행하여 세석평전을 거쳐 벽소령까지가 오늘 가야 할 구간이다. 벽소령에서 밤 10시경에 2진과 합류하고 이튿날 새벽 2시경에 3진과 합류한 다음 지리산 구간을 계속하여 성삼재까지 가는 것이 이번 3회차 한걸음의 행보다.
백무동에서 장터목으로 오르는 5.8km 구간은 땅기운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오르며 만난 바위는 하동바위와 망바위 둘뿐이었다. 두텁게 쌓인 흙을 밟으며 오르는 등산로 양편은 나무들의 전시장과도 같았다. 진주산업대학에서 나무들에 이름표를 붙였는데 이헌태 동지가 기자 출신답게 이를 하나하나 수첩에 적었다. 이를 들여다 보니,
노각나무, 개비자나무, 개옻나무, 고광나무, 당단풍나무, 서어나무, 고로쇠나무, 박달나무, 까치박달나무, 들메나무, 신갈나무, 느티나무, 산벚나무, 옻참나무, 물푸레나무, 두릅나무, 사스래나무, 나래회나무, 부게꽃나무, 피나무, 팥배나무, 숫명다래나무, 생강나무, 개회나무, 쪽동백나무, 비목나무, 호랑버들나무, 거제수나무, 참회나무, 박쥐나무, 노린재나무, 바위말발도리나무, 귀룽나무, 철쭉나무, 진달래나무, 함박꽃나무, 마가목나무, 찰피나무, 국수나무, 병꽃나무, 조선까치밥나무, 싸리나무, 참개암나무, 시닥나무, 야광나무.........
이들은 모두 잎들을 떨어뜨리고 홀홀 서있는 낙엽수들이다. 지구상에서 이러한 낙엽수림의 분포지역은 그리 넓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는 소나무가 아니고 참나무라고 한 어느 식물학자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땅에 떨어져 쌓인 낙엽은 땅을 기름지게 만들 것이다. 우리 땅의 생산력이 높음을 이제 알겠다. 장터목까지 오르는 동안 소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거제수나무라는 아주 특별한 나무를 만났다. 이 나무는 대패밥보다도 얇게 껍질이 한겹씩 벗겨지는데 이 껍질은 물의 접근을 전혀 허용치 않아 물 속에 담갔다가 꺼내어도 불에 붙는다고 한다.
중턱쯤 올라 목이 마른 차에 샘을 만났다. 참샘이라는 아주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물맛이 꿀맛처럼 달고 시원했다. 온갖 나무들과 풀뿌리를 적시고 지하에 괴어 있다가 분출되는 것이어서 문자 그대로 약수일 터이다.
해발 1,312미터의 소지봉에 도달했다.
`종이를 태우는 봉우리라는 뜻인데.... 백무동 골짜기에서 백일기도를 마친 무당이 본시 천왕봉에 올라 소지를 해야 마땅하나 여기가지만 와서 소지를 한 것일까`
백무동은 옛날에 백무동(百巫洞)으로도 불렸다. 이성부 시인의 시를 읽어보자.
내 어린 시절 짝사랑했던 가시내가
커서 당골네가 되었다는 소문을 떠올리며
백무동 골짜기 내려간다
이리저리 차이는 돌밭길에 거친 인생에
발가락 아픈 것도 잊어버린 채
문득 우리 할매도 당골네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내려간다
됫박에 쌀 담아들고
놋그릇에 쏟아부어
삼베로 감싸 내 아픈 배 문질러주시던 할매
쌍칼을 들고 늬 뱃자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