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제: 당나귀의 삶 그리고 비틀즈 >
당나귀!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변강쇠처럼 아주 힘이 센 동물
낙타처럼 겸손하고 고통과 아픔을 참아내는 우직한 동물
아폴론처럼 배고픈 경우도 진리를 추구하며
현실이 힘들더라도 그 현실을 사랑하는 동물!
그러나 당나귀는 우리의 무거운 짐을 견뎌내고 있지만
자신을 스스로 노예와 같이 만들지는 않았을까?
당나귀는 등에 실려있는 짐에만 민감하다
단지 견디며 그대로 묵묵히 자신을 떠맡을 뿐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당나귀는 `아니오`인 모든 것에 대하여 `예`라고 말하기 때문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마치 낙타가 그에게 짐이 지워지자마자
사막을 향해 서둘러 가듯이
낙타의 삶은 이제 그에게 사막처럼 보인다
`원기 왕성하고 인내심 있는 정신` 바로 너 당나귀 !
당나귀와 같이 인정으로서 생각되어지는
- 있는 그대로를 - 긍정하는 방식은 잘못된 긍정이 아닐까?
그러면 도대체 긍정하는 것이란 무엇일까 ?
가치 평가하는 것이다 !
스스로에게 생기를 불어넣은 이러한 삶에 대립하는 아픔을 고통스러워하는 대신에
기존의 때묻은 가치를 툭툭 털어내고
삶에 있어 자신의 차이를 즐기는 욕망(힘)에의 의지로부터 새롭게
가치평가 하는 것이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춤 !
삶을 긍정한다는 것은 삶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며
현재 존재하는 것의 짐을 떠맡는 것이 아니라
짐을 풀어주는 것이며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생생하게 존재하는 것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다
질 들뢰즈처럼 새로운 가치와 개념을 창조하는 것이다
탈주선에서의 창안과 창조 !
우리는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하는가?
우리는 그래야만 한다 ! 그래야만 한다 !
현실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현실 속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는 결국 따져 들어가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는 문제로
귀착되지 않을까 ?
아마도.....
인간은 항상 타자와의 관계를 통하여 존재할 수밖에 없다
늘 어떤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결코 사회 문화적으로 자기 혼자서
살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비틀즈의 노래 `Let It Be`의 처음 한 구절을 흥얼거려 보자
When I find myself in the times of trouble ,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여기서 `find myself`(나 자신을 발견) 라는 표현을 살펴보면
우리가 늘 문득 고개를 들어 보면 항상 특정한 상황에 처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나와너가 없는 더불어 사는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타자와의 관계,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순간 또 다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세계, 자연, 우주는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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