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숲산
성백엽
이건 눈이야기야.
시골 토방에 앉아
뜰 안 가득히 송이 송이
훨훨
내려앉는 희고 여린 손님에
황홀감을 느끼던 어느 해 겨울
아버진 쇠잔한 모습으로 누워계셨지.
마른 풀밭 담배밭
어느 새 희뿌연해진 앞산
또 먼 신작로에도 아버지의 돌산에도
나직히 춤추며 흩날리며 찾아왔지.
가슴 속에 잠긴 기억의 창고 안
파고드는 속삭임으로
살며시 찾아와서
지난날 얘기까지
살금 살금 끄집어내던 반가운 손님
북어 한 마리 수건 한 장 허리춤에 꽂고
칠흑의 밤에 벗과 태백산을 오르셨다는 아버지는
건강한 웃음, 바람처럼 빠른 걸음으로
30년 족히 남보다 앞서 사셨건만
이제 병상에서
흰눈 속에
고단한 생의 마감을 예감하며...
자식들을 축복하시던 깊은 눈
누구는 부친의 모습이 항공모함이라지만
내겐 산 같아
그날
온 산을 평화로 감싸던 하늘의 너울
해마다 먼 산의 눈이
이렇게 가까울 줄은 ... 나의 기억 한가운데
살아계신 내 아버지 때문이야.
<엄마의 보석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