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화

1970.01.01 09:33

김제(金堤) 풍경 2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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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의 풍경 2題

* 화포 포구

김제(金堤)란 황금빛의 벼의 땅 그리고 드넓은 평야에 물을 대줄 제방 즉 볏골제의 땅이라는 뜻이다. 그 볏골제라는 말이 변하여 지금은 벽골제(碧骨堤)라고 부른다.
평야가 사방으로 끝도 없이 너르다 보니 보이는 것은 지평선 뿐이다. 그 흔한 산도 언덕도 없다. 삼천리에 퍼져 사는 한민족을 먹여 살릴 곡식을 생산해내는 모성의 땅(Earth Mother)인 것이다. 그래서 김제는 끝도 없이 넓다는 뜻의 만경평야(萬頃平野)의 젖꼭지다. 그 젖꼭지에서 나오는 젖으로 삼천리 금수강산인(人) 모두가 배를 채우고 사는 것이다.

만경읍의 등어리 쯤에 화포포구(火浦浦口)가 있다. 끝도없이 넓은 갯펄에 핀 몸색이 붉은 수초(실은 그 풀의 이름을 지금 모른다. 나는 그것은 火草라 부르고 싶다)가 노을에 반사될 때면 불이 붙은 거 같다고 해 이름이 화포(火浦)가 아니겠냐는 동행시인의 해석이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드넓은 뻘과 그 뻘이 바닷바람에 추울까봐 촘촘히 옷을 입듯 피어 있는 화초의 조화는 장관이었다.

김제 문학의 밤에 참가하였던 우리들은 왕년의 포구 화포에 갈 행운을 얻었다. 우리는 포구뚝 중간에서 일행을 반으로 쪼게 좌우의 뚝으로 가도록 했다. 오른쪽 저 멀리 폐선 몇 척이 찬 바닷바람은 아랑곳 없이 졸고 있는 게 보였다. 발걸음을 재게 놀리며 폐선객들을 만나러 갔다. 길이가 좋히 2-30리는 됨즉한 뚝은 바로 눈 앞에 있는 듯한 배와 내 사이를 희롱했다. 거리가 쉬이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우리의 만남을 방해하겠나. 일곱 척의 작은 어선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 당당해 보이지 않는 앵커도 뻘 위에 몸을 드러내고 있었고 조타석 위의 초라한 지붕도 형태는 의연했다. 그래 바로 그곳이 왕년의 포구였으리. 그러나 지금은 무엇에 밀렸는지 포구는 간데 없고 주인 잃은 폐선 몇 척이 초겨울 바람과 성희롱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순간 한 떼의 가창오리가 폐선 위를 날으며 군무를 추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내 눈 앞 그리 멀지 않은 바닷물 위에서 유영을 하고 있는 수십만 마리는 됨직한 가창오리들을 몰라 보았건 것이다. 그렇구나 화포포구는 더 이상 배들을 위한 포구가 아니라 가창오리 등 새들을 위한 포구구나.

하늘을 나르던 몇 마리의 오리가 폐선 위 엔진부위에 내려 앉아 고개짓을 했다.
나는 그놈들이 오리회의에서 머리 좋은 오리로 뽑혀 선박을 점검하러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 이제 조금 있으면 그 오리들이 폐선의 녹이 슨 엔진을 갈고 닦아 부르릉 소리를 내며 배를 끌고 저 바다 멀리 뱃놀이를 나갈 게 분명했다. 그때 다시 와 같이 그 배에 동승하여 나드리를 해야겠다. 나는 그들에게 내 얼굴을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 낙엽 매운탕

문학축제 이틀 째 우리는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있는 망해사(望海寺)를 둘러 보았다. 매서운 초겨울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망해사는 곧 물에 잠길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라 그런지 의연함 보다는 애처롭게 보였다. 의외로 넓고 잘생긴 대웅전이 터를 잘 못 잡은 탓에 댐이 건설되면 수장될 운명이란다. 개발이 뭔지.

망해사 머리 위에 작은 식당이 있었다. 그곳에서 식사를 한다길래 매운 바람을 옷깃으로 가리고 뛰어 올라갔다. 그런데 그 추위에 식당 안에다 음식을 차린 것이 아니라 밖 길바닥 위에 휴대용 가스레인지 몇 개를 놓고 생선 매운탕을 끓이고 있는 것이다. 시장이 반찬이라던가 그 순간은 시장이 난로까지 되었다. 털썩 주저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 그런데 매운 바람에 옆에 큰 키에 의연히 서 있던 단풍나무에서 잎이 우수수 떨어져 보글보글 끓고 있는 매운탕 냄비 속으로 들어 오는 것이었다.

빨간 국물위로 내려 앉는 빨간 낙엽. 우리는 애써 낙엽을 건져내지 않고 그냥 낙엽 매운탕을 먹었다. 가을을 먹었다.


* 주 : 위의 글은 지난 11월 24, 25일 양일간 전북 김제에서 열린 <스토리문학관 김제 문학의 밤> 행사에 참여하고 둘러 본 김제의 두 곳 풍경에 대해 간단히 쓴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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