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어쩌면
저자 : 박순정
출처 : 스토리문학관(www.storye.com)
기타 : 2001년 10월 ,`이 달의 소설` 선정작
처음부터 그녀를 보려 한 건 아니었다.
그녀는 어쩌다 내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그래, 어쩌다가.
발이 참 못 생겼다고 생각했다. 부채살처럼 넓게 퍼진 발,앞이 뾰족한 구두는 절대 신을 수 없는 발. 볼이 좁은 신을 신고 하루를 걸으면 필히 티눈이 되살아나버리는 발. 초록색 이태리 타월로 발가락 사이사이를 뽀도독 소리가 나도록 밀면서 나는 어릴 적 내 발을 습관처럼 보듬어주지 않은 친정엄마를 탓했다. 언니의 손과 발은 참으로 예뻐. 엄마는 언니의 손과 발의 모양을 잡아주려 습관처럼 그렇게 보듬었었다고 했다. 그런데 내겐 왜 그리하지 않았을까. 왜. 생각들이 발가락 사이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눈앞의 거울은 수증기로 희미하게 덮여가고 있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그러하듯 목욕탕엔 사람이 없었다. 늘 가던 목욕탕이 내부수리 운운하며 휴업에 들어가버려서 하는 수 없이 나는 이곳 목욕탕으로 기어들었다. 실내는 좀더 넓었지만 시설이 노후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습식 사우나실도 없이 건식 사우나실 하나만 있었지만 그마저도 허리에 분홍색 비닐을 둘러 입은 아줌마부대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네들은 한번 들어가면 좀체 나올 줄을 몰랐다. 입구에서부터 푹 퍼진 몸뚱이가 자릴 차지하고 있으니 비집고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몇 번인가 기회를 넘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번번이 분홍색 비닐들에 의해 밀려났다.
여자는 내게서 일 미터 정도 떨어진 오른 편에 자릴 잡고 있었다. 긴 생머리를 풀어 내린 그대로 그녀는 샤워기로 몸 구석구석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빈약한 가슴이 샤워기를 들어올리는 팔 사이로 살짝 드러났다 사라지곤 했다. 정말이지 나는 그녀를 보려고 한 건 아니었다. 텅 빈 목욕탕엔 나와 그녀 그리고 내 왼편에서 조금 떨어져 계집아이의 머릴 감기고 있는 삼십 대 중반의 여인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내 눈에 그녀가 들어오는 것은 당연했다. 손에 쥐어진 동전의 앞 뒷면을 한번씩 들여다보는 일처럼.
그녀는 오랫동안 양치질을 했다. 입안 가득 거품을 물고 쪼그리고 앉은 채 칫솔을 입안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빼내었다를 반복하며 오래도록. 계집아이가 인형을 들고 내 뒤를 왔다갔다하고 있다. 인형의 옷이 벗겨져 있었다. 아이는 내 눈치를 살피며 인형을 탕에 담갔다 꺼냈다를 반복했다. 아이의 동글동글한 엉덩이가 탱탱했다. 문득 나는 소녀의 엉덩이가 솜털 부성한 복숭아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샤워기로 씻어내리는 머리에서 거품이 밀려 떨어졌다. 그녀의 입에선 여전히 거품이 맴돌고있었다.
약간 따갑다고 생각했다. 등을 밀어주는 여인이 무안해하지 않도록 나는 애써 참는다. 그러나 언제까지 참아낼 순 없을 것 같다. 다행히 여인의 손길이 움직임을 멈췄다. 미지근한 물이 등줄기를 덮어내렸다. 비누칠을 해드릴까요. 여인이 묻는다. 나는 비누칠은 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녀가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그리곤 탕에서 그때까지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던 계집아이를 부른다. 아이는 세게 밀지 말라며 여인에게 등을 맡긴다. 내 팔에서 회색빛 각질이 덩어리를 지더니 떨어져내린다. 여자는 아직도 칫솔질을 하고 있다. 어쩌면 여자는
지난 밤 원치 않는 섹스를 했는지도 몰랐다. 상대가 여자의 남편이거나 아니면 애인이었거나 그도 아니면 잠시 들렀다 가는 남자들 중 하나였는지도. 이 동네엔 소읍小邑치곤 다방이 많았다. 과수밭이 많아서이겠지만 대부분이 배달을 위주로 했다. 머리에 물들인 아가씨들이 가슴과 허벅지를 허옇게 드러내고 오토바이나 자동차에 올라 커피를 들고 가는 모습은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나는 속으로 저 여자도 어쩌면 그런 여자들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고 멋대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몸매가 이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얼굴이 이쁜 것도 아닌데 나는 그 여자의 직업을 그렇게 멋대로 정해버렸다. 몽롱한 의식 속으로 그녀가 들어왔다.
남자는 손아귀에 물큰하게 잡혀오는 젖가슴을 원했지만 여자의 가슴은 빈약했다. 누워있으면 도무지 여자의 가슴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여자의 그것은 빈약함을 떠나 차라리 없다고 하는 편이 나았다. 그나마 앉아있을 때의 그녀의 가슴을 애무하는 것도 그에겐 흥미가 없었다. 손아귀에 들어오는 가슴은 막 솟아오르기 시작한 열세 살 소녀의 가슴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처음 여자를 만났을 때 남자는 그녀가 상처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써 태연한 척하며 그녀의 가슴을 정성껏 만지고 빨았다. 그러나 이젠 그마저도 싫어졌다. 그런데도 남자가 여자의 몸을 한번씩 찾아드는 이유는 여자의 질 속에 가득한 애액 때문이었다. 축축히 젖어있는 여자의 아랫도리를 더듬고 있으면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흥분이 되었고 야릇한 쾌감을 맛보았다. 자신의 성기가 그 속으로 들어가면 그 쾌감은 더했다. 매끄러운 성기의 움직임이 그는 좋았다. 그러다 그는 좀더 욕심을 부리기로 했다. 여자는 당황했다. 그리곤 짧게 거부의 말을 내뱉았다. 남자는 여자를 달래고 얼르고 설득한다. 여자는 완고했다. 그럴 거면 그냥 가라고 한다. 남자는 화가 난다. 그렇지만 선뜻 자릴 박차고 나가질 못한다. 만약 그가 이대로 나가버리면 다시는 이 여자를 만날 수 없을 것임이 분명하므로. 치솟는 화를 억누르며 끈질기게 여자를 설득한다. 그래도 여의치 않자 그의 손이 여자의 뺨을 후려친다. 곧이어 발길질을 하기 시작한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려 했지만 문 앞을 막아선 남자를 이겨내지 못한다. 그렇게 여자는 남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역겨움 때문에 구역질이 나려는 걸 참는다. 토악질이 나려는 걸 참는다. 눈을 질끈 감고 여자는 남자가 절정에 이를 때까지 혀를 놀렸다. 그는 다시는 이 여자를 찾지 못할 것이다. 다시는.
아마도 여자의 지난 밤은 그러했으리라. 아마도. 내가 다리의 때를 다 밀어낼 때까지도 여자는 칫솔질을 멈추지 않았다. 저러다 이란 이는 죄다 문드러지는 거나 아닌지 몰라. 쪼그리고 앉은 여자의 몸뚱이는 내 상상 속 인물의 그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엔 여자는 너무나 순결해보였다. 너무나 순박해보였다. 그런데 난 왜 그런 상상을 하였을까. 아마도 지나치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여자의 양치질 때문이리라. 그렇게 오랫동안 자신의 입안을 씻어내야 하는 여자는 분명 내가 상상한 일을 겪은 그런 여자들뿐이리라. 막무가내로 만들어낸 그녀에 대한 상상이 짐짓 미안해진 나는 그렇게라도 자신을 변명하려 했다. 내 상상을 정당화하려 했다. 그러기에 사람이 많은 목욕탕 같은 데선 그리 오래 양치질을 하는 것이 아니지. 당신도 일면 책임이 있는 거야. 당신은 내게 충분히 그럴 만한 이야깃거릴 제공해 주었다구. 그러니 이젠 그 양치질 좀 그만두는 게 어때.
몸에 남은 물기를 닦아내고 물건을 챙기며 흘낏 훔쳐본 그녀는 샤워기의 물로 입안을 헹구어내고 있었다. 밀려드는 물줄기에 밀려 입안 가득했던 거품이 물에 녹아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여자는 여전히 쪼그려 앉은 채로였다.
저자 : 박순정
출처 : 스토리문학관(www.storye.com)
기타 : 2001년 10월 ,`이 달의 소설` 선정작
처음부터 그녀를 보려 한 건 아니었다.
그녀는 어쩌다 내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그래, 어쩌다가.
발이 참 못 생겼다고 생각했다. 부채살처럼 넓게 퍼진 발,앞이 뾰족한 구두는 절대 신을 수 없는 발. 볼이 좁은 신을 신고 하루를 걸으면 필히 티눈이 되살아나버리는 발. 초록색 이태리 타월로 발가락 사이사이를 뽀도독 소리가 나도록 밀면서 나는 어릴 적 내 발을 습관처럼 보듬어주지 않은 친정엄마를 탓했다. 언니의 손과 발은 참으로 예뻐. 엄마는 언니의 손과 발의 모양을 잡아주려 습관처럼 그렇게 보듬었었다고 했다. 그런데 내겐 왜 그리하지 않았을까. 왜. 생각들이 발가락 사이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눈앞의 거울은 수증기로 희미하게 덮여가고 있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그러하듯 목욕탕엔 사람이 없었다. 늘 가던 목욕탕이 내부수리 운운하며 휴업에 들어가버려서 하는 수 없이 나는 이곳 목욕탕으로 기어들었다. 실내는 좀더 넓었지만 시설이 노후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습식 사우나실도 없이 건식 사우나실 하나만 있었지만 그마저도 허리에 분홍색 비닐을 둘러 입은 아줌마부대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네들은 한번 들어가면 좀체 나올 줄을 몰랐다. 입구에서부터 푹 퍼진 몸뚱이가 자릴 차지하고 있으니 비집고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몇 번인가 기회를 넘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번번이 분홍색 비닐들에 의해 밀려났다.
여자는 내게서 일 미터 정도 떨어진 오른 편에 자릴 잡고 있었다. 긴 생머리를 풀어 내린 그대로 그녀는 샤워기로 몸 구석구석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빈약한 가슴이 샤워기를 들어올리는 팔 사이로 살짝 드러났다 사라지곤 했다. 정말이지 나는 그녀를 보려고 한 건 아니었다. 텅 빈 목욕탕엔 나와 그녀 그리고 내 왼편에서 조금 떨어져 계집아이의 머릴 감기고 있는 삼십 대 중반의 여인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내 눈에 그녀가 들어오는 것은 당연했다. 손에 쥐어진 동전의 앞 뒷면을 한번씩 들여다보는 일처럼.
그녀는 오랫동안 양치질을 했다. 입안 가득 거품을 물고 쪼그리고 앉은 채 칫솔을 입안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빼내었다를 반복하며 오래도록. 계집아이가 인형을 들고 내 뒤를 왔다갔다하고 있다. 인형의 옷이 벗겨져 있었다. 아이는 내 눈치를 살피며 인형을 탕에 담갔다 꺼냈다를 반복했다. 아이의 동글동글한 엉덩이가 탱탱했다. 문득 나는 소녀의 엉덩이가 솜털 부성한 복숭아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샤워기로 씻어내리는 머리에서 거품이 밀려 떨어졌다. 그녀의 입에선 여전히 거품이 맴돌고있었다.
약간 따갑다고 생각했다. 등을 밀어주는 여인이 무안해하지 않도록 나는 애써 참는다. 그러나 언제까지 참아낼 순 없을 것 같다. 다행히 여인의 손길이 움직임을 멈췄다. 미지근한 물이 등줄기를 덮어내렸다. 비누칠을 해드릴까요. 여인이 묻는다. 나는 비누칠은 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녀가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그리곤 탕에서 그때까지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던 계집아이를 부른다. 아이는 세게 밀지 말라며 여인에게 등을 맡긴다. 내 팔에서 회색빛 각질이 덩어리를 지더니 떨어져내린다. 여자는 아직도 칫솔질을 하고 있다. 어쩌면 여자는
지난 밤 원치 않는 섹스를 했는지도 몰랐다. 상대가 여자의 남편이거나 아니면 애인이었거나 그도 아니면 잠시 들렀다 가는 남자들 중 하나였는지도. 이 동네엔 소읍小邑치곤 다방이 많았다. 과수밭이 많아서이겠지만 대부분이 배달을 위주로 했다. 머리에 물들인 아가씨들이 가슴과 허벅지를 허옇게 드러내고 오토바이나 자동차에 올라 커피를 들고 가는 모습은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나는 속으로 저 여자도 어쩌면 그런 여자들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고 멋대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몸매가 이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얼굴이 이쁜 것도 아닌데 나는 그 여자의 직업을 그렇게 멋대로 정해버렸다. 몽롱한 의식 속으로 그녀가 들어왔다.
남자는 손아귀에 물큰하게 잡혀오는 젖가슴을 원했지만 여자의 가슴은 빈약했다. 누워있으면 도무지 여자의 가슴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여자의 그것은 빈약함을 떠나 차라리 없다고 하는 편이 나았다. 그나마 앉아있을 때의 그녀의 가슴을 애무하는 것도 그에겐 흥미가 없었다. 손아귀에 들어오는 가슴은 막 솟아오르기 시작한 열세 살 소녀의 가슴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처음 여자를 만났을 때 남자는 그녀가 상처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써 태연한 척하며 그녀의 가슴을 정성껏 만지고 빨았다. 그러나 이젠 그마저도 싫어졌다. 그런데도 남자가 여자의 몸을 한번씩 찾아드는 이유는 여자의 질 속에 가득한 애액 때문이었다. 축축히 젖어있는 여자의 아랫도리를 더듬고 있으면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흥분이 되었고 야릇한 쾌감을 맛보았다. 자신의 성기가 그 속으로 들어가면 그 쾌감은 더했다. 매끄러운 성기의 움직임이 그는 좋았다. 그러다 그는 좀더 욕심을 부리기로 했다. 여자는 당황했다. 그리곤 짧게 거부의 말을 내뱉았다. 남자는 여자를 달래고 얼르고 설득한다. 여자는 완고했다. 그럴 거면 그냥 가라고 한다. 남자는 화가 난다. 그렇지만 선뜻 자릴 박차고 나가질 못한다. 만약 그가 이대로 나가버리면 다시는 이 여자를 만날 수 없을 것임이 분명하므로. 치솟는 화를 억누르며 끈질기게 여자를 설득한다. 그래도 여의치 않자 그의 손이 여자의 뺨을 후려친다. 곧이어 발길질을 하기 시작한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려 했지만 문 앞을 막아선 남자를 이겨내지 못한다. 그렇게 여자는 남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역겨움 때문에 구역질이 나려는 걸 참는다. 토악질이 나려는 걸 참는다. 눈을 질끈 감고 여자는 남자가 절정에 이를 때까지 혀를 놀렸다. 그는 다시는 이 여자를 찾지 못할 것이다. 다시는.
아마도 여자의 지난 밤은 그러했으리라. 아마도. 내가 다리의 때를 다 밀어낼 때까지도 여자는 칫솔질을 멈추지 않았다. 저러다 이란 이는 죄다 문드러지는 거나 아닌지 몰라. 쪼그리고 앉은 여자의 몸뚱이는 내 상상 속 인물의 그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엔 여자는 너무나 순결해보였다. 너무나 순박해보였다. 그런데 난 왜 그런 상상을 하였을까. 아마도 지나치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여자의 양치질 때문이리라. 그렇게 오랫동안 자신의 입안을 씻어내야 하는 여자는 분명 내가 상상한 일을 겪은 그런 여자들뿐이리라. 막무가내로 만들어낸 그녀에 대한 상상이 짐짓 미안해진 나는 그렇게라도 자신을 변명하려 했다. 내 상상을 정당화하려 했다. 그러기에 사람이 많은 목욕탕 같은 데선 그리 오래 양치질을 하는 것이 아니지. 당신도 일면 책임이 있는 거야. 당신은 내게 충분히 그럴 만한 이야깃거릴 제공해 주었다구. 그러니 이젠 그 양치질 좀 그만두는 게 어때.
몸에 남은 물기를 닦아내고 물건을 챙기며 흘낏 훔쳐본 그녀는 샤워기의 물로 입안을 헹구어내고 있었다. 밀려드는 물줄기에 밀려 입안 가득했던 거품이 물에 녹아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여자는 여전히 쪼그려 앉은 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