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적인 모시 조각보를 만들어
본 사람 만이
삶의 생성과 긍정의 맛을 느낄수 있다
모시 조각보는
일명 조각보 패치워크(crazy patchwork)
를 말한다
예전의 우리들의 어머니들이
고요한 밤에 홀로
너덜너덜하고 땟자국이 선명한
모시 천 조각을 담은
바구니에서 천조각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베개잎을 만들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마치 퍼즐 조각들처럼
천 조각들을 옮기고 다시 맞춰보고 ,
다시 가만히 살펴본다음
떼었다가 붙이기를 반복하면서 인내심을
시험이라도 하듯이 가위를 사용하지 않고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천조각을 잡아 당겨
배치를 바꿔 나갔다,,
이처럼 무형의 천 조각들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방법은 거의 무한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미국의 짧은 이민의 역사속에서
퀼트의 역사를 살표보면
자수가 지배적이던 양식(소위 보통 퀼트)으로부터
패취워크 양식( 응용퀼트 와 특히 헝겁을 덧댄 퀼트)
으로 이행해 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17세기 최초의 이주민들은 보통 퀼트, 즉 화려하게
수를 놓은 홈이 패인 공간을 갖고 있으나
17세기 말 섬유가 부족하고 그리고 인디안들의
면제품들이 유행하면서 점차 패취워크 기술이
발달 하였다
근래에 들어서는 다소 체계화되어
미국, 일본 등지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그 바람이 해외 여행자들을 통해서 국내에도
불기 시작하고 있으나
오래전부터 우리의 모시 조각보가
독특한 패취워크 방식인것이다
우리 한번 전통적인 직물과 유목민의 펠트
그리고 퀼트와 패취워크의 공간을 살표보자
첫째로
직물은 씨실과 날실을 이용한 짜기에서부터
바구니짜기, 편물 세공등 대바늘과 뜨개질
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직물은 원칙적으로 홈이 패인 공간으로
규정될수 있다
직물은 길이는 무한하더라도 폭이 날실의 틀에
의해 한정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제한되며
적어도 한쪽은 닫힌다
이러한 공간은 반드시 앞면과 뒷면을 갖고 있다
과거 왕권시대에 사람들을 통치하고
국가 장치를 운용하기 위한 기술의
패러다임으로서
직조술을 모델로 삼은 것이 아닐까
둘째로
유목민들이 펠트는 어떠한가
펠트는 직물과 같은 씨실과 날실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펠트에서는 개별적인 실이나 교차를 전혀
찾아 볼수 없으며 압축에 의해 얻어지는
섬유의 얽힘만이 있을 뿐이다
아주 작은 천 조각들이 서로 얽히는 것이다
펠트는 무한하며 모든 방향으로
열려 있어 한계를 갖지 않으며
앞면과 뒷면이 또 중심이 없다
고정적인 것과 유동적인 것의 구별도 없으며
오히려 연속적 변주를 분배한다
물론 펠트와 직물사이의 수많은
교착상태나 혼합형태를 찾아 볼 수 있다
셋째로
자수 (보통 퀼트)는 중심테마와 모티브를 갖고 있다
분명히 자수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그리고 고정된 것과 유동적인 것을 갖고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매끄러운 공간인
패취워크는
나름대로 자수에 가까운 테마나 대칭성
공명을 보여 줄 수 있다
하지만 공간방식은 상이하다
패취워크 공간은 매끈한 공간이다
이매끈하다는 것은 등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무형의 무정형의 공간으로서
옵 아트를 예시하고 있다
패치워크는 중심이 없으며 기본 모티브는
단일한 요소로 구성된다
이 요소의 회귀는 자수와의 화음과는 구별되는
단일한 리듬적 가치를 해방시킨다
크기, 형태 색상이 서로 다른 천조각을
이리저리 이어서 하나의 직물의 짜임을
만들어 낸다
매끄러운 공간은 추상적인 선이 만들어 낸다
이공간은 유목민적인 공간으로서
수많은 연결 공간을 만들어 낸다
패취워크처럼
그것은 생성의 다양체 또는 변형되는 다양체이지
요소들을 셀수 있고 관계들이 질서 잡힌
다양체가 아니다 퍼지 집합이지 정확한 집합이 아니다
패취워크는 모호하지만 엄미한 유목적인 본질이
강렬함의 연속체 또는 상수와 변수들 모두 넘어선
연속적 변주도 새겨진다
홈이 패인 공간을 가로질러 구성되는 매끈한
공간이 새겨진다
우리는 세 개의 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들 절단하고
우리에게 등질적인 공간의 홈파기를 강요하는
절편적인 선이 있다
우리자신의 미세한 구멍들을 운반하는
분자적인 선들이 있다
끝으로 자신의 창조적인 잠재력을 포기함으로써
죽음의 선으로 돌변해 순수하고
단순한 파괴의 선 (파시즘)으로
돌아설 위험을 항상 간직하고 있는
도주선 들 그자체가 있다
본 사람 만이
삶의 생성과 긍정의 맛을 느낄수 있다
모시 조각보는
일명 조각보 패치워크(crazy patchwork)
를 말한다
예전의 우리들의 어머니들이
고요한 밤에 홀로
너덜너덜하고 땟자국이 선명한
모시 천 조각을 담은
바구니에서 천조각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베개잎을 만들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마치 퍼즐 조각들처럼
천 조각들을 옮기고 다시 맞춰보고 ,
다시 가만히 살펴본다음
떼었다가 붙이기를 반복하면서 인내심을
시험이라도 하듯이 가위를 사용하지 않고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천조각을 잡아 당겨
배치를 바꿔 나갔다,,
이처럼 무형의 천 조각들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방법은 거의 무한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미국의 짧은 이민의 역사속에서
퀼트의 역사를 살표보면
자수가 지배적이던 양식(소위 보통 퀼트)으로부터
패취워크 양식( 응용퀼트 와 특히 헝겁을 덧댄 퀼트)
으로 이행해 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17세기 최초의 이주민들은 보통 퀼트, 즉 화려하게
수를 놓은 홈이 패인 공간을 갖고 있으나
17세기 말 섬유가 부족하고 그리고 인디안들의
면제품들이 유행하면서 점차 패취워크 기술이
발달 하였다
근래에 들어서는 다소 체계화되어
미국, 일본 등지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그 바람이 해외 여행자들을 통해서 국내에도
불기 시작하고 있으나
오래전부터 우리의 모시 조각보가
독특한 패취워크 방식인것이다
우리 한번 전통적인 직물과 유목민의 펠트
그리고 퀼트와 패취워크의 공간을 살표보자
첫째로
직물은 씨실과 날실을 이용한 짜기에서부터
바구니짜기, 편물 세공등 대바늘과 뜨개질
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직물은 원칙적으로 홈이 패인 공간으로
규정될수 있다
직물은 길이는 무한하더라도 폭이 날실의 틀에
의해 한정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제한되며
적어도 한쪽은 닫힌다
이러한 공간은 반드시 앞면과 뒷면을 갖고 있다
과거 왕권시대에 사람들을 통치하고
국가 장치를 운용하기 위한 기술의
패러다임으로서
직조술을 모델로 삼은 것이 아닐까
둘째로
유목민들이 펠트는 어떠한가
펠트는 직물과 같은 씨실과 날실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펠트에서는 개별적인 실이나 교차를 전혀
찾아 볼수 없으며 압축에 의해 얻어지는
섬유의 얽힘만이 있을 뿐이다
아주 작은 천 조각들이 서로 얽히는 것이다
펠트는 무한하며 모든 방향으로
열려 있어 한계를 갖지 않으며
앞면과 뒷면이 또 중심이 없다
고정적인 것과 유동적인 것의 구별도 없으며
오히려 연속적 변주를 분배한다
물론 펠트와 직물사이의 수많은
교착상태나 혼합형태를 찾아 볼 수 있다
셋째로
자수 (보통 퀼트)는 중심테마와 모티브를 갖고 있다
분명히 자수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그리고 고정된 것과 유동적인 것을 갖고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매끄러운 공간인
패취워크는
나름대로 자수에 가까운 테마나 대칭성
공명을 보여 줄 수 있다
하지만 공간방식은 상이하다
패취워크 공간은 매끈한 공간이다
이매끈하다는 것은 등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무형의 무정형의 공간으로서
옵 아트를 예시하고 있다
패치워크는 중심이 없으며 기본 모티브는
단일한 요소로 구성된다
이 요소의 회귀는 자수와의 화음과는 구별되는
단일한 리듬적 가치를 해방시킨다
크기, 형태 색상이 서로 다른 천조각을
이리저리 이어서 하나의 직물의 짜임을
만들어 낸다
매끄러운 공간은 추상적인 선이 만들어 낸다
이공간은 유목민적인 공간으로서
수많은 연결 공간을 만들어 낸다
패취워크처럼
그것은 생성의 다양체 또는 변형되는 다양체이지
요소들을 셀수 있고 관계들이 질서 잡힌
다양체가 아니다 퍼지 집합이지 정확한 집합이 아니다
패취워크는 모호하지만 엄미한 유목적인 본질이
강렬함의 연속체 또는 상수와 변수들 모두 넘어선
연속적 변주도 새겨진다
홈이 패인 공간을 가로질러 구성되는 매끈한
공간이 새겨진다
우리는 세 개의 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들 절단하고
우리에게 등질적인 공간의 홈파기를 강요하는
절편적인 선이 있다
우리자신의 미세한 구멍들을 운반하는
분자적인 선들이 있다
끝으로 자신의 창조적인 잠재력을 포기함으로써
죽음의 선으로 돌변해 순수하고
단순한 파괴의 선 (파시즘)으로
돌아설 위험을 항상 간직하고 있는
도주선 들 그자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