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3세로 결혼 한 지 오래 10년째 되는 주부입니다. 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 니다. 제게는 참으로 인자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가 게십니다.
첫 직장생활한 지 한 달만에 생일을 맞게 됐는데 회사로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 하는 내 딸아, 너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라고 생일축하 엽서를 보내주셨던 아버 지. 이 엽서로 인해 동료들이 내 생일을 앍게 됐고 부모님은 시골에 계셨지만 참으로 행복한 생일을 맞았고, 그 이후로는 동료들도 더욱더 저에게 잘 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그후로도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씩 꼭 회사로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내가 자취하던 곳으로 보내도 될 걸 회사로 보낸 이유는 내 집 식구 귀하게 생각해 야 다른 사람들도 귀히 본다는 거였습니다.
결혼하고도 한 달쯤 지났을 때도 아버지는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그때도 처음 시작 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딸아였죠. 끝엔 늘 이서방 우리 딸 아끼며 많 이많이 사랑하며 살게였고요. 그래서 남편은 지금도 아이들이 내 말을 안 들을 때면 할아버지한테 이를 테다 라며 으름장을 놓죠.
그런 제가 올해로 결혼 10년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크신 기대에 많이 어긋나 힘 겹게 살다보니 전 아버지께 소홀했고 아버지도 저에게 많이 실망했으리라 생각이 들기에 연락도 자주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휴가에 시골에 다녀왔습니다. 참으로 몇 년 만에 간 고향, 조금은 어 색하기까 지 했죠. 가족들과 해수욕장에 갔는데 너무 무방비로 살을 태워서 집에 왔을 땐 거 의 화상 을 입어 물집이 한두 개씩 나고 있었습니다.
너무 따가워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아버지는 어디선가 알로애를 구해오셨고 전 아 이들에 게 발라주기에 여념이 없는데 아버지는 제 어깨며 다리에 계속 바르고 계시는 거예 요. 제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아이들이 떠드니까 엄마 자는데 조용히 하라며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어 요. 전 괜찮았지만 그냥 자는 시늉을 했습니다 눈물이 많이 났어요.
전 그동안 모든 게 남편이 우선이었고 아이들이 먼저였습니다. 날 돌봐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각했어요. 이처럼 내가 처음인 것이 얼마만인지… 전 참으로 귀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달에 환갑이신 아버지, 서울에선 너무도 젊어 보이는 연세지만 저희 아버지는 너무도 여위시고 늙으셨더군요. 앙상한 무릎과 팔, 이제야 아버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 니다. 전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고 조급해집니다. 아버지와 함께 맛있는 것도 먹으로 가고 싶 고, 좋은 곳 구경도 시켜드리고 싶고, 이젠 자주 편지도 써야하고…늘 생각합니다. 아빠가 서울에 오 시면 뭐 맛있는 걸 해드려야 하나, 어디를 모시고 가야하나, 어떤 얘기를 해드려야 하나…
아버지 자주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은 당신 사랑의 힘으로 참으로 열심히 즐겁게 살겠습니다. 이젠 제 사랑의 크기를 아버지께 보여드릴게요.
첫 직장생활한 지 한 달만에 생일을 맞게 됐는데 회사로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 하는 내 딸아, 너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라고 생일축하 엽서를 보내주셨던 아버 지. 이 엽서로 인해 동료들이 내 생일을 앍게 됐고 부모님은 시골에 계셨지만 참으로 행복한 생일을 맞았고, 그 이후로는 동료들도 더욱더 저에게 잘 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그후로도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씩 꼭 회사로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내가 자취하던 곳으로 보내도 될 걸 회사로 보낸 이유는 내 집 식구 귀하게 생각해 야 다른 사람들도 귀히 본다는 거였습니다.
결혼하고도 한 달쯤 지났을 때도 아버지는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그때도 처음 시작 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딸아였죠. 끝엔 늘 이서방 우리 딸 아끼며 많 이많이 사랑하며 살게였고요. 그래서 남편은 지금도 아이들이 내 말을 안 들을 때면 할아버지한테 이를 테다 라며 으름장을 놓죠.
그런 제가 올해로 결혼 10년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크신 기대에 많이 어긋나 힘 겹게 살다보니 전 아버지께 소홀했고 아버지도 저에게 많이 실망했으리라 생각이 들기에 연락도 자주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휴가에 시골에 다녀왔습니다. 참으로 몇 년 만에 간 고향, 조금은 어 색하기까 지 했죠. 가족들과 해수욕장에 갔는데 너무 무방비로 살을 태워서 집에 왔을 땐 거 의 화상 을 입어 물집이 한두 개씩 나고 있었습니다.
너무 따가워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아버지는 어디선가 알로애를 구해오셨고 전 아 이들에 게 발라주기에 여념이 없는데 아버지는 제 어깨며 다리에 계속 바르고 계시는 거예 요. 제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아이들이 떠드니까 엄마 자는데 조용히 하라며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어 요. 전 괜찮았지만 그냥 자는 시늉을 했습니다 눈물이 많이 났어요.
전 그동안 모든 게 남편이 우선이었고 아이들이 먼저였습니다. 날 돌봐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각했어요. 이처럼 내가 처음인 것이 얼마만인지… 전 참으로 귀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달에 환갑이신 아버지, 서울에선 너무도 젊어 보이는 연세지만 저희 아버지는 너무도 여위시고 늙으셨더군요. 앙상한 무릎과 팔, 이제야 아버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 니다. 전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고 조급해집니다. 아버지와 함께 맛있는 것도 먹으로 가고 싶 고, 좋은 곳 구경도 시켜드리고 싶고, 이젠 자주 편지도 써야하고…늘 생각합니다. 아빠가 서울에 오 시면 뭐 맛있는 걸 해드려야 하나, 어디를 모시고 가야하나, 어떤 얘기를 해드려야 하나…
아버지 자주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은 당신 사랑의 힘으로 참으로 열심히 즐겁게 살겠습니다. 이젠 제 사랑의 크기를 아버지께 보여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