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뺑뺑이 됨을 기뻐하자!
<비뺑뺑이>는 자기자신만을 중시하기 쉬워
타인을 이해하거나 수용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이 아닐까?
즉 `나`의 존재는 `나`만을 위한 것이라고
요즈음의 화두는
흙, 식물, 동물, 인간 등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계내-존재임을 알고
이를 생생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적, 공동체적, 인격적 만남을 통하여
타자에 대한 배려와 `타자 수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의
가치와 존엄 그리고 권리를 인정하자!
우리는
`나`라는 하나의 존재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 나와 너, 그와 그녀
그리고 하찮아 보이는 돌, 잡초
동물 등도 중요시해야 한다
<비뱅뱅이>는 이것을 자주 망각하고
있지나 않은가?
그들은 너무나 자기(에고)를 중시한다
더불어 모든 존재를 생각하고 행동함을
잊어버리고
`나`라는 자기는 하나뿐이므로
결국 자기`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비뺑뺑이>는 나무형태와 같은 이항적
원형적, 절편적 체계를 형성한다
그경우 모든 다양체가 <하나>에 종속
되어있다
<비뺑뺑이>는 이것을 혹시 모르는 것일까?
뺑뺑이는 잡초다!
사선은 해방되거나 끊어지거나 비틀린다
이 선은 윤곽을 만들지 않으며 대신 사물들
사이를, 점들 사이를 지나간다
이 선이 구성하는 다양체는 이제
<하나>에 종속되지 않으며
그 자체로서 고름(even)을 획득한다
이것은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다양체가 아니다
군중이나 무리, 잡초와 같은 것이다
무질서가 아닌
비질서의 다양체이다
그것은 생성의 다양체 또는 변형되는 다양체이다
<비뺑뺑이>들과 같이 요소들을 셀 수 있고
관계들이 질서 잡힌 다양체가 아니다
뺑뺑이의 집합은 퍼지 집합이지
정확한 집합이 아니다,
차리리 비정확한 집합이다
<비뺑뺑이>는 이분적인
나무형태의 다양체에 불과하다
뺑뺑이는 얼굴형태를 갖고 있다
누런벽-검은구멍인 `얼굴`이 되자
얼굴 안에 배분되어 있는 검은 구멍들이
함께 공명하기 시작할 때
또는 잡초나 땅속 감자줄기들이 공간을
사방으로 홈을 파서 이공간을
비교가능하고 분할 가능하며
등질적인 것으로 만들 때
바로 이것이
뺑뺑이의 특징이다
다만, 이것만을 마음속에 새기자
뺑뺑이는 자신의 창조적인 잠재력을
포기함으로써 죽음의 선으로 돌변해
순수하고 단순한 파괴의 선(파시즘)으로 돌아설
위험을 항상 간직하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도주선이 되자
뺑뺑이는 잡초로서
비뺑뺑이의 나무구조에서
멈추지 않고 빠져 나오며
뺑뺑이는
군중과 흐름은 끊임없이 벗어나고
나무에서 나무로 도약하며 뿌리에서
벗어나는 연결접속들을 끊임없이
발명해 낸다
뺑뺑이의 선은
사실상 이 선들을
절편화하고 심지어 지층화하는
나무의 선들을 탈취하는 도주선이나
단절선 사이에서 오간다
그러나 뺑뺑이는 아주 신중해야한다
너무 갑작스러운 잡초화는 자살적인
것이나 암적인 것이 될 위험이 크다
즉 카오스, 공허, 파괴에 빠지든지
아니면 점점 더 강하게 경화되어
가는 지층에 다시 갇혀 일정한
다양성, 분화, 유동성마저 잃어버리고
마는 위험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시간의 선을 따라 더 많이
관용을 베풀고 ,`나`를 버리게 되었다
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 기쁨의 선을 만나고 싶다
<비뺑뺑이>는 자기자신만을 중시하기 쉬워
타인을 이해하거나 수용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이 아닐까?
즉 `나`의 존재는 `나`만을 위한 것이라고
요즈음의 화두는
흙, 식물, 동물, 인간 등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계내-존재임을 알고
이를 생생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적, 공동체적, 인격적 만남을 통하여
타자에 대한 배려와 `타자 수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의
가치와 존엄 그리고 권리를 인정하자!
우리는
`나`라는 하나의 존재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 나와 너, 그와 그녀
그리고 하찮아 보이는 돌, 잡초
동물 등도 중요시해야 한다
<비뱅뱅이>는 이것을 자주 망각하고
있지나 않은가?
그들은 너무나 자기(에고)를 중시한다
더불어 모든 존재를 생각하고 행동함을
잊어버리고
`나`라는 자기는 하나뿐이므로
결국 자기`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비뺑뺑이>는 나무형태와 같은 이항적
원형적, 절편적 체계를 형성한다
그경우 모든 다양체가 <하나>에 종속
되어있다
<비뺑뺑이>는 이것을 혹시 모르는 것일까?
뺑뺑이는 잡초다!
사선은 해방되거나 끊어지거나 비틀린다
이 선은 윤곽을 만들지 않으며 대신 사물들
사이를, 점들 사이를 지나간다
이 선이 구성하는 다양체는 이제
<하나>에 종속되지 않으며
그 자체로서 고름(even)을 획득한다
이것은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다양체가 아니다
군중이나 무리, 잡초와 같은 것이다
무질서가 아닌
비질서의 다양체이다
그것은 생성의 다양체 또는 변형되는 다양체이다
<비뺑뺑이>들과 같이 요소들을 셀 수 있고
관계들이 질서 잡힌 다양체가 아니다
뺑뺑이의 집합은 퍼지 집합이지
정확한 집합이 아니다,
차리리 비정확한 집합이다
<비뺑뺑이>는 이분적인
나무형태의 다양체에 불과하다
뺑뺑이는 얼굴형태를 갖고 있다
누런벽-검은구멍인 `얼굴`이 되자
얼굴 안에 배분되어 있는 검은 구멍들이
함께 공명하기 시작할 때
또는 잡초나 땅속 감자줄기들이 공간을
사방으로 홈을 파서 이공간을
비교가능하고 분할 가능하며
등질적인 것으로 만들 때
바로 이것이
뺑뺑이의 특징이다
다만, 이것만을 마음속에 새기자
뺑뺑이는 자신의 창조적인 잠재력을
포기함으로써 죽음의 선으로 돌변해
순수하고 단순한 파괴의 선(파시즘)으로 돌아설
위험을 항상 간직하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도주선이 되자
뺑뺑이는 잡초로서
비뺑뺑이의 나무구조에서
멈추지 않고 빠져 나오며
뺑뺑이는
군중과 흐름은 끊임없이 벗어나고
나무에서 나무로 도약하며 뿌리에서
벗어나는 연결접속들을 끊임없이
발명해 낸다
뺑뺑이의 선은
사실상 이 선들을
절편화하고 심지어 지층화하는
나무의 선들을 탈취하는 도주선이나
단절선 사이에서 오간다
그러나 뺑뺑이는 아주 신중해야한다
너무 갑작스러운 잡초화는 자살적인
것이나 암적인 것이 될 위험이 크다
즉 카오스, 공허, 파괴에 빠지든지
아니면 점점 더 강하게 경화되어
가는 지층에 다시 갇혀 일정한
다양성, 분화, 유동성마저 잃어버리고
마는 위험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시간의 선을 따라 더 많이
관용을 베풀고 ,`나`를 버리게 되었다
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 기쁨의 선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