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함께 학창시절로 돌아가서 귓속말 전하기 게임을 해보자 나란히 줄을 서자 맨 처음 내가 옆의 동문에게 전한 귓속말이 마지막 동문에게 가서는 전혀 엉뚱한 말로 변해버린다 동문 개개인의 성격이나 생각대로 처음 문장이 변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지켜보는 다른 동문들은 깔깔대며 웃는다 언어란 이와 같이 끊임없이 변화되고 변화하는 벡터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음악의 경우 `발전이 형식을 종속시킨다`라는 베토벤 피아노 변주곡의 연속적 변주의 과정과 유사하다 첫 귓속말에 해당하는 `주제`라는 멜로디가 박자, 리듬, 선율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변주의 성격에 따라 살아 움직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연속적 변주의 과정이다 언어사용의 상수와 규칙의 체계로부터 언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끝임없이 변화시키고 변형시키는 벡터 그 자체에서 그 본질을 찾아야 한다 언어에는 언제나 동사 `이다` 와 접속사 `그리고`사이의 투쟁이 있다 모든 언어는 이 둘 사이를 왔다갔다한다 `이다`는 언어 속에서 상수로 작용하며 온음계(장조)를 형성하는 반면 `그리고`는 모든 것을 변주시키며 일반화된 반음계(단조)의 선들을 구성한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변주적이면 변주적일수록 더욱 심오해진다 연속적인 변주만이 삶에 있어서 일상 뒤의 있는 본질적 요소나 실재를 끄집어 낼 수 있다 <그리고...>라는 단순한 표현은 언어 전체를 가로 지르는 강렬함의 연속적 변주가 된다 거기에는 금욕적 선들이 있을 뿐이며 약간의 풀과 맑은 물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는 하나의 접속사 라기 보다는 자신이 연속적으로 변주시키는 모든 접속사들의 비정형적 표현이다 <그리고..>는 상수로도 변수로도 환원되지 않으며 오히려 매번 상수의 값을 뺌으로써 ( n-1) 변수의 변주를 보장해준다 <그리고..>의 조직은 결연관계이다 이 접속사 안에는 <이다>라는 동사를 뒤흔들고 뿌리뽑기에 충분한 강렬함이 있다 백지 상태를 상정하는 것이나 0에서 출발하거나 다시 시작하는 것, 시작이나 기초를 찾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여행 또는 운동에 대한 거짓 개념을 함축한다 <그리고>는 시작도 하지 않고 끝나지도 않는다 언제나 중간에 있으며 사물들 사이에 있고 사이-존재이고 변주곡 이다 <그리고>는 존재론을 뒤집고, 기초를 부숴버리고 시작과 끝을 무력화 시키는 법을 알고 있다 중간에서 떠나고 중간을 통과하고 들어가고 나오되 시작하고 끝내지 않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다>와 <그리고>의 차이를 느끼자!! <이다>는 언어에서 상수을 뽑아내는 방식이고 <그리고>는 언어를 연속적 변주로 만드는 방식이다 최근 미국의 테러 사건도 <그리고>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면 미국이 시간의 선을 따라 더 많은 것을 일찍이 버리고 버렸다면 어제와 같은 슬픔의 선을 마주하지는 않았지 않을까? 자 ! 이제 브람스 , 바흐, 베토벤의 변주곡을 감상하면서 언어의 연속적 변주과정을 다시 생각해보자